정부 56조·한은 65조 풀었지만…기업·가계, 투자·소비 되레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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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얼마나 늘고 어디로 흘러갔나
기업·가계 대출 108兆 늘었지만…90兆 다시 예금으로
풀린 돈 금융권서만 맴돌아…일부는 자산시장에
"규제개혁으로 실물경제 살려야 부작용 최소화"
기업·가계 대출 108兆 늘었지만…90兆 다시 예금으로
풀린 돈 금융권서만 맴돌아…일부는 자산시장에
"규제개혁으로 실물경제 살려야 부작용 최소화"
정부와 한국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최근 넉 달 동안 120조원이 넘는 자금을 시중에 공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규모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1.7배 이상 크다. 덕분에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빠른 속도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문제는 실물 부문이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있다. 자산시장은 부풀고 있는데 실물은 위축되는 양극화 현상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한은 얼마나 돈 풀었나
정부와 한은이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푼 돈은 121조원으로 집계됐다. 한은이 공급한 자금은 64조6000억원 규모다.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 198억7200만달러(약 23조8400억원)를 금융회사에 풀었고, 40조7600억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정부가 공급한 자금은 56조4000억원 정도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풀기로 한 돈 250조원 중 일부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낮추면서 시중 유동성은 더 늘어났다.
늘어난 유동성은 어디로 갔을까. 전문가들은 투자와 소비로 들어간 돈은 극히 일부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과 가계의 대차대조표상 수치만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발표하는 수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 대출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76조3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 대출 역시 32조50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늘어난 은행 예금만 90조1000억원이었다. 기업과 가계에서 늘어난 대출이 108조8000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80% 이상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 것이다.
늘어난 유동성 중 상당액이 금융권에 잠겨 있다 보니 통화유통속도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4 수준으로 파악됐다.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연간 환산액을 광의통화(M2)로 나눈 수치다. 통화유통속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0.8 수준을 나타냈다.
주가·집값만 들썩
기업·가계 금고에 쌓인 현금은 주식·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22일 2126.73에 마감하며 연중 최저점을 기록한 지난 3월 19일(1457.64)과 비교해 45.9% 뛰는 등 코로나19 직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1월과 비교해 1.4% 상승했다.
최근 자산 가격 흐름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회복세가 빠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코스피지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9월 12일(1477.92) 수준을 회복하는 데 무려 10개월(2009년 7월 20일·코스피지수 1478.51)이 걸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매매가격지수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매매가격지수 82.582) 수준을 회복하는 데 1년4개월(2010년 2월·82.676) 소요됐다. 전국은 3년이 걸렸다.
반면 실물경제 회복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시설투자 등을 공시한 기업은 LG이노텍 현대엘리베이터 SK에어가스 등 51곳으로 투자금액은 4조4281억원이다. 작년(6조2715억원)에 비해 29.3% 줄어든 규모다.
코로나19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탓이다.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월 49를 기록해 기준치인 100을 크게 밑돈 것은 물론 2009년 2월(43) 후 가장 낮았다. 소비심리도 얼어붙으면서 한은이 전망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4%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가 현실화하면 1998년(-11.9%) 후 최저치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실물경제 진작보다는 자산시장 거품만 키우고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넘치는 유동성이 실물시장을 우회해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가는 형국”이라며 “실물경제 진작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강진규/박종서 기자 lovepen@hankyung.com
정부와 한은이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푼 돈은 121조원으로 집계됐다. 한은이 공급한 자금은 64조6000억원 규모다.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 198억7200만달러(약 23조8400억원)를 금융회사에 풀었고, 40조7600억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정부가 공급한 자금은 56조4000억원 정도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풀기로 한 돈 250조원 중 일부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낮추면서 시중 유동성은 더 늘어났다.
늘어난 유동성은 어디로 갔을까. 전문가들은 투자와 소비로 들어간 돈은 극히 일부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과 가계의 대차대조표상 수치만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발표하는 수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 대출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76조3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 대출 역시 32조50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늘어난 은행 예금만 90조1000억원이었다. 기업과 가계에서 늘어난 대출이 108조8000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80% 이상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 것이다.
늘어난 유동성 중 상당액이 금융권에 잠겨 있다 보니 통화유통속도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4 수준으로 파악됐다.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연간 환산액을 광의통화(M2)로 나눈 수치다. 통화유통속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0.8 수준을 나타냈다.
주가·집값만 들썩
기업·가계 금고에 쌓인 현금은 주식·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22일 2126.73에 마감하며 연중 최저점을 기록한 지난 3월 19일(1457.64)과 비교해 45.9% 뛰는 등 코로나19 직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1월과 비교해 1.4% 상승했다.
최근 자산 가격 흐름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회복세가 빠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코스피지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9월 12일(1477.92) 수준을 회복하는 데 무려 10개월(2009년 7월 20일·코스피지수 1478.51)이 걸렸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매매가격지수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매매가격지수 82.582) 수준을 회복하는 데 1년4개월(2010년 2월·82.676) 소요됐다. 전국은 3년이 걸렸다.
반면 실물경제 회복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시설투자 등을 공시한 기업은 LG이노텍 현대엘리베이터 SK에어가스 등 51곳으로 투자금액은 4조4281억원이다. 작년(6조2715억원)에 비해 29.3% 줄어든 규모다.
코로나19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탓이다.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월 49를 기록해 기준치인 100을 크게 밑돈 것은 물론 2009년 2월(43) 후 가장 낮았다. 소비심리도 얼어붙으면서 한은이 전망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4%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가 현실화하면 1998년(-11.9%) 후 최저치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실물경제 진작보다는 자산시장 거품만 키우고 있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넘치는 유동성이 실물시장을 우회해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가는 형국”이라며 “실물경제 진작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강진규/박종서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