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에 소득증명서 내고 면접…100대 1 경쟁률 뚫어야 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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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전세 자소서' 쓰는 시대 오나
세입자가 원하기만 하면 5년이고 10년이고 같은 집에 세들어 살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세입자를 쫓아내거나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게 법으로 금지돼서다. 월세도 올릴 수 있는 상한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자기 집이 없어도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의 ‘모범 사례’로 드는 독일 사례다.
그렇다면 정말 독일이 ‘세입자들의 천국’일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과 교민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중·노년층 세입자들이 대도시 노른자위 땅에 수십년간 살고 있는 탓에 정작 주거가 절실한 신혼부부 등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어쩌다 나온 괜찮은 집에 들어가려면 소득증명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와 ‘자소서’를 집주인에게 낸 뒤 면접을 보는데,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한다. 월세를 올리지 못하니 집 주인이 집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 도배는 물론 싱크대도 직접 사서 달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공급되는 주택의 질과 양이 급감하자 임대료마저 급등했다. 2008~2018년 10년간 뮌헨(67%) 베를린(65%) 등 주요 7개도시에서 평균 57% 올랐다. 경제학자들은 임대차 3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곧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전쟁 등 비상시에 임대료 규제를 도입했다가 부작용이 속출하자 폐지한 국가들도 많다. 영국은 2차대전 때 도입한 임대료상한제를 1988년 사실상 폐지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규제를 풀었다고 해서 임대료가 오르는 일은 없었다. 공급이 그만큼 늘어서다. 임대료 규제가 폐지된지 6년 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진은 글래스고와 에딘버러의 임대주택의 공급이 늘고 종류도 다양해졌으며, 실질 임대료도 오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州)는 임대료 규제가 공급 감소, 주거환경 악화 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1995년 관련 규제를 폐지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연구에 따르면 이로 인해 주택을 증축하고 보수하는 등 주거의 질을 높이는 데 들어간 투자액이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비슷한 이유로 현재 미국 26개 주는 임대료 규제를 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임대료 규제로 주로 타격을 받는 건 신혼부부와 저소득층이다. 이는 지난 9월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이 임대료 상한 규제로 인한 샌프란시스코시의 주거환경 악화를 실증분석한 논문을 통해 증명됐다. 논문에 따르면 1994년 샌프란시스코에 주택 월세 상한제가 도입된 뒤 다세대 주택 공급이 15% 줄었다. 월세 상한제를 적용받는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 숫자는 25% 급감했다. 집주인들이 월세 상한제를 적용받는 건물을 허물고 콘도미니엄(아파트) 등 고급 주택을 지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새로 이사해오는 대신 저소득층은 밀려났다”고 결론내렸다. 기존 세입자 일부가 혜택을 보긴 했지만, 대신 저렴한 월셋방이 줄고 향후 입주해오는 신혼부부 등이 높은 월세 부담을 뒤집어쓰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비효율이 초래됐다는 뜻이다.
사실상 ‘월세 무한연장’을 가능케 한 독일에서는 공급이 줄면서 세입자들이 취업준비생처럼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류 전형’에서는 애완동물이나 동거 가족의 유무는 물론이고 직종과 정규직 여부, 개인 신용 정보 및 보험 청구 이력 등을 제출해야 한다. ‘깨끗하게 잘 쓰겠다’는 일종의 각오도 써 낸다. 경쟁률이 10대 1은 우습게 넘어서는 탓에 유색인종에게는 임대를 무조건 거절하는 등 집주인의 ‘면접 갑질’도 빈번하다는 전언이다.
세들어 살 곳을 찾기도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전망이다. 독일처럼 ‘세입자 자소서’를 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임차인과의 계약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면서 임대인들의 세입자 선별이 까다로워지고 도배 등 집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주택 두 채를 전세 놓고 있는 A씨는 “이때까지는 2년마다 계약을 연장해야 하니 집도 정기적으로 손을 봤는데 그럴 필요성이 줄었다”며 “앞으로는 일단 계약하면 4년까지 무조건 세를 줘야 하니 어린 아이를 여럿 데리고 있는 집은 되도록이면 세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그렇다면 정말 독일이 ‘세입자들의 천국’일까.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과 교민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중·노년층 세입자들이 대도시 노른자위 땅에 수십년간 살고 있는 탓에 정작 주거가 절실한 신혼부부 등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어쩌다 나온 괜찮은 집에 들어가려면 소득증명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와 ‘자소서’를 집주인에게 낸 뒤 면접을 보는데,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한다. 월세를 올리지 못하니 집 주인이 집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 도배는 물론 싱크대도 직접 사서 달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공급되는 주택의 질과 양이 급감하자 임대료마저 급등했다. 2008~2018년 10년간 뮌헨(67%) 베를린(65%) 등 주요 7개도시에서 평균 57% 올랐다. 경제학자들은 임대차 3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곧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임대료 규제, 학계 꼽는 ‘대표 악법’
지난달 31일 전월세 인상률을 규제하고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 가운데,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해외 사례와 경제학계의 실증 분석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좌·우파를 막론한 경제학계의 공통 의견은 ‘주택 임대료 및 계약 규제가 주택 공급을 줄이고 약자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학자들 중 각각 90% 안팎이 이 의견에 동의한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임대료 규제가 <맨큐의 경제학> 등 대부분 경제학 기본서의 앞머리에서 ‘악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는 이유다.전쟁 등 비상시에 임대료 규제를 도입했다가 부작용이 속출하자 폐지한 국가들도 많다. 영국은 2차대전 때 도입한 임대료상한제를 1988년 사실상 폐지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규제를 풀었다고 해서 임대료가 오르는 일은 없었다. 공급이 그만큼 늘어서다. 임대료 규제가 폐지된지 6년 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진은 글래스고와 에딘버러의 임대주택의 공급이 늘고 종류도 다양해졌으며, 실질 임대료도 오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州)는 임대료 규제가 공급 감소, 주거환경 악화 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1995년 관련 규제를 폐지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연구에 따르면 이로 인해 주택을 증축하고 보수하는 등 주거의 질을 높이는 데 들어간 투자액이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비슷한 이유로 현재 미국 26개 주는 임대료 규제를 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규제 강화 도시는 ‘세입자 지옥’
반면 임대료 규제를 강화한 지역에서는 예외 없이 주거난이 심화됐다. 미국 뉴욕시(市)와 샌프란시스코 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은 1943년 전국적으로 임대료 규제가 도입된 이후 계속 관련 규제를 강화해왔다. 이로 인해 1960년대부터 유지 비용만큼도 세를 받지 못하게 된 임대인들이 싼 집을 버리면서 외곽이 슬럼화되는 등 각종 부작용이 나타났다. 규제가 갈수록 정교해지는 것과 반대로, 오늘날 뉴욕 주택은 비좁고 허름하면서도 임대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임대료 규제로 주로 타격을 받는 건 신혼부부와 저소득층이다. 이는 지난 9월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이 임대료 상한 규제로 인한 샌프란시스코시의 주거환경 악화를 실증분석한 논문을 통해 증명됐다. 논문에 따르면 1994년 샌프란시스코에 주택 월세 상한제가 도입된 뒤 다세대 주택 공급이 15% 줄었다. 월세 상한제를 적용받는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 숫자는 25% 급감했다. 집주인들이 월세 상한제를 적용받는 건물을 허물고 콘도미니엄(아파트) 등 고급 주택을 지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새로 이사해오는 대신 저소득층은 밀려났다”고 결론내렸다. 기존 세입자 일부가 혜택을 보긴 했지만, 대신 저렴한 월셋방이 줄고 향후 입주해오는 신혼부부 등이 높은 월세 부담을 뒤집어쓰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비효율이 초래됐다는 뜻이다.
사실상 ‘월세 무한연장’을 가능케 한 독일에서는 공급이 줄면서 세입자들이 취업준비생처럼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류 전형’에서는 애완동물이나 동거 가족의 유무는 물론이고 직종과 정규직 여부, 개인 신용 정보 및 보험 청구 이력 등을 제출해야 한다. ‘깨끗하게 잘 쓰겠다’는 일종의 각오도 써 낸다. 경쟁률이 10대 1은 우습게 넘어서는 탓에 유색인종에게는 임대를 무조건 거절하는 등 집주인의 ‘면접 갑질’도 빈번하다는 전언이다.
한국, ‘세입자 자소서’ 까지는 아니라도…
임대료 규제의 이 같은 부작용은 앞으로 한국에서도 상당 부분 현실화될 전망이다. 먼저 전세가 자취를 감추고 월세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기대 수익이 낮아진 집주인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면서다. 그나마 있는 전셋값은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넷째주(27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0.17%로 2015년 11월 이후 4년8개월만에 최대 폭으로 뛰는 등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세 매물도 급감했다.세들어 살 곳을 찾기도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질 전망이다. 독일처럼 ‘세입자 자소서’를 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임차인과의 계약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면서 임대인들의 세입자 선별이 까다로워지고 도배 등 집에 대한 투자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주택 두 채를 전세 놓고 있는 A씨는 “이때까지는 2년마다 계약을 연장해야 하니 집도 정기적으로 손을 봤는데 그럴 필요성이 줄었다”며 “앞으로는 일단 계약하면 4년까지 무조건 세를 줘야 하니 어린 아이를 여럿 데리고 있는 집은 되도록이면 세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