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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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두를 사려 백화점에 들렸다. 익숙한 브랜드의 매장에 들어서며 눈대중으로 가격을 살폈다. 신상품들은 30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격 태그를 달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원에게 얼마냐고 물었더니, 점원이 촉촉한 눈빛으로 답을 했다. “저희가 요즘 정말 어려워서요. 세일 기간은 아니지만 30% 깎아드릴게요”

구미가 확 당겼지만, 다른 매장도 둘러볼 겸 발길을 돌렸다. 습관적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눈여겨봤던 구두를 검색했다. 두 눈을 의심했다. 가격이 거의 10만원대로 내려와 있었다. 네이버 쇼핑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가격별로 온갖 온라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이 검색됐다. 얼마 전에 만든 네이버 통장이 생각났다. 네이버 첫 화면에서 증권사와 제휴한 통장이라며 ‘금리 우대’를 내걸며 통장 만들라고 현혹하길래 단번에 넘어간 터였다. 결제창을 누르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쇼핑의 신세계였다.

1년 간 해외 체류로 ‘촌티’를 못 벗어난 걸까 생각했는데, IT업계에서 꽤 유명한 창업 성공 기업인을 만난 뒤로는 네이버 쇼핑에 대한 열광이 보편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가 소매 유통 시장을 완전히 평정할 것이다”. 자칭 쇼핑 고수라는 그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등록해 두고 부모님과 아내가 쉽게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코로나 신종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가족들이 가장 손쉽게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 네이버라는 얘기다.

쿠팡이 네이버쇼핑을 이길 수 없는 이유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네이버 쇼핑의 위력은 정부가 규제의 칼을 벼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전원회의를 열고 네이버가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는 지 여부를 심의했다. 네이버는 검색 시장 70% 가량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다. 이 같은 독점력이 쇼핑, 부동산 등 다른 영역으로 확장됐는 지를 검증한 자리였다. 네이버의 요구로 이날 전원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영업기밀 노출이 이유였다고 한다. 다음달쯤 결론이 공개될 예정이다. 공정위의 칼이 네이버를 향하고 있다는 건 네이버 쇼핑의 힘이 거대하다는 방증이다. 쿠팡 등 다른 경쟁사들이 네이버를 견제할 만큼 세력이 튼튼하다면 공정위도 칼을 함부로 빼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지난해 거래액 기준으로는 현재 온라인 소매 유통은 네이버와 쿠팡, 이베이코리아의 삼분 구도다. 네이버쇼핑의 거래액은 20조9249억원에 달했다. 쿠팡(17조771억원)과 이베이코리아(16조9772억원)가 뒤를 잇고 있다. 옥션과 G마켓을 운영 중인 이베이코리아는 ‘원조’ 간판을 달고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삼국지의 유비 세력과 비슷하다. 하지만 워낙 척박한 땅에 웅거하고 있는 터라 중원을 넘보기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쿠팡은 강동의 손권 세력에 비유할 만하다. 막강한 물자를 바탕으로 신흥 세력으로 부상했다. 한 해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고도 더 많은 투자를 감행 중이다.

네이버와 다른 소매 유통업체들 간의 경쟁이 향후 어떻게 결론날 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삼국지처럼 조씨의 위나라가 통일할 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네이버가 훨씬 유리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네이버는 혁신으로 무장한 ‘디지털 골리앗’이다. 쿠팡과 이베이코리아가 흔들었던 오프라인 유통의 강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서에선 다윗의 돌팔메질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지만 현실에선 네이버라는 발빠른 거인의 잠을 깨울 뿐이다.

토드 휴린과 스콧 스나이더는 『골리앗의 복수』에서 디지털 다윗들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는 골리앗의 핵심 무기로 브랜드 가치, 데이터 자산, 자체 자금 등을 꼽았다. 이를 기반으로 쿠팡과 네이버 쇼핑을 비교해보면 누가 최종 승자일 지 가늠할 수 있다. 물론, 종전(終戰)의 시점이 언제일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단서로 달아둔다.

쿠팡은 브랜드 평판 측면에서 떠오르는 신예다. 로켓 배송 서비스라는 전략적 ‘룬 샷(미친 아이디어)’를 성공시킴으로써 단숨에 많은 고객을 확보했다. 급하게 계란 한판이 필요했는데 쿠팡의 로켓 배송 덕분에 다음날 아이의 아침을 해결한 맞벌이 부부는 쿠팡의 팬이 됐다. 각종 조사에서 쿠팡은 온라인 쇼핑몰, 오픈마켓 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 같은 통계엔 네이버가 빠져 있다. 네이버는 스스로를 포털 사이트 혹은 플랫폼 사업자로 강조하고, 외부에서도 그렇게 분류하기를 원한다. 기업이 가진 브랜드 가치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쿠팡과 네이버의 비교는 아이와 어른의 차이와 같다. 네이버는 삼성, KT 등 대기업과 비교될 정도의 가치를 지낸 브랜드다. 쿠팡과 같은 디지털 다윗들이 아무리 소비자들의 ‘좋아요’를 유도해도 검색 하나만으로 수천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네이버를 이길 수는 없다.

데이터는 향후 기업들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이 분야에서도 네이버는 압도적이다. 쇼핑 분야까지 진출할 수 있던 것도 그 동안 이용자들의 검색 패턴을 읽어낸 덕분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에서 네이버가 보유한 엔지니어 역량은 쿠팡을 초월한다. 사실상 초격차라고 해도 무방하다. 롯데그룹이 향후 자신들의 온라인 비밀병기라고 일컫는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의 검색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영입한 엔지니어도 네이버 출신이다.

게다가 네이버는 금융위원회가 야심차게 준비 중인 마이데이터 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금융회사들이 네이버를 빅테크 기업으로 부르며 강력히 경계할 정도로 네이버는 데이터 분야의 강자다. 현재 금융회사들은 네이버가 자신들의 전자상거래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은행, 카드사들의 금융 정보를 가져가려 한다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네이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쿠팡도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을 선언하긴 했지만 업력이 짧은 쿠팡이 데이터 전쟁에서 네이버와 제대로 경쟁을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네이버와 쿠팡의 경쟁에서 눈여겨 봐야 할 마지막 포인트는 돈이다. 이는 위험의 전이 혹은 리스크 관리라는 측면과 연관돼 있다. 네이버는 쇼핑 등 다른 사업에 진출하면서 언제나 연합 전략을 구사했다. 네이버는 플랫폼 사업자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 기업들, 위메프처럼 독자 생존이 어려운 기존의 오픈마켓 업체들, 심지어 백화점 쇼핑몰과 홈플러스까지 자사 쇼핑창에 입점시켰다. 시쳇말로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컨데 네이버에 입점한 기존 오픈마켓이 새로운 상품들을 확보하는데 수백억원을 쓰고, 새로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데 또 다시 수백억원을 써야 한다. 그렇게 갖춰놔봤자 실제 구매의 적어도 30~40%는 네이버를 통해 이뤄진다. 입점 업체는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돈을 써놓고는 네이버에 수수료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고객 거래 데이터까지 갖다 바쳐야 한다. 네이버 포인트도 입점업체가 제공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도 네이버와의 관계에선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

네이버와 달리 쿠팡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 많은 투자를 해야한다. 쿠팡은 물건을 사입해 이를 쿠팡만의 첨단 물류 시스템으로 소비자에게 빠르게 배송하는데 주력하는 회사다. 한국판 아마존이 쿠팡의 목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에서 20억달러를 투자받아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쏟아붓고 있다. 계속 외부로부터 돈을 수혈받지 못하면 쿠팡이 굴리는 바퀴가 언제 멈출 지 알 수 없다. 위험의 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쿠팡식 모델은 네이버에 불리하다. 쿠팡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여러차례 위협에 처했다. 물류센터 직원이 확진자로 밝혀지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네이버가 주도하는 ‘디지털 봉건주의’는 쿠팡조차 무릎을 꿇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