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주도해온 한국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 CATL은 LG화학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세계 1위를 탈환할 태세다. 한국의 ‘안방 시장’이나 다름없던 유럽도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며 ‘K배터리’ 추격에 나섰다. 전기차 공룡 테슬라는 배터리 업체 인수에 나서며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흐름이 이어질 경우 한국이 수년 내에 현재의 시장 점유율을 지키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만만찮은 '3敵'의 공세…K배터리 아성 흔들리나

정부 지원 업은 中 CATL 맹추격

5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은 올 1~8월 세계 전기차 시장에 15.92GWh(기가와트시)의 배터리를 공급해 세계 1위를 지켰다. 시장 점유율은 24.6%였다. 삼성SDI는 같은 기간 4.05GWh를 공급하면서 4위(시장 점유율 6.3%)를, SK이노베이션은 2.71GWh를 출하해 6위(4.2%)를 차지했다.

외견상 한국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국 CATL은 올해 1~8월 15.54GWh의 배터리를 공급해 LG화학과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0.6%포인트로 좁혔다. 7월 말 기준 점유율 격차(1.3%포인트)를 절반 이상 줄였다. 8월 한 달만 놓고 보면 CATL(2.83GWh)이 LG화학(2.39GWh)을 앞질렀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LG화학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은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국 전기차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라며 “7월 이후 중국 시장이 회복되면서 두 업체의 점유율 차이가 급격히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8만3000대로 글로벌 시장(16만3000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 업체의 독무대였던 유럽은 같은 기간 4만9000대에 그쳤다. CATL은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다임러와 손을 잡는 등 유럽 시장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미국·유럽 완성차 업체들도 도전장

에너지시장 조사업체 블룸버그NEF(BNEF)는 “중국이 올해 안에 전기차 배터리 공급량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BNEF는 △셀 제조 능력 △원자재 확보 △규제·인프라 △최종 수요 등으로 나눠 각국의 경쟁력을 비교했다. LG화학 등 한국 업체들은 기술력과 셀 제조 능력에서 중국에 앞서지만 나머지 부문에서 모두 뒤졌다. 특히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니켈 양극재를 70% 이상 중국에서 수입하는 등 원자재 확보 면에서 중국에 밀린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정부의 막강한 지원도 등에 업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폐지할 예정이던 전기차 보조금을 2022년까지 연장했고 농촌 지역에도 전기차를 적극 보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외신 등에 따르면 스웨덴 배터리업체 노스볼트는 최근 투자 펀딩을 통해 6억유로(약 8200억원)를 유치했다. 펀딩에는 독일 완성차업체 폭스바겐도 참여했다. 노스볼트는 이를 기반으로 2030년까지 유럽 내 배터리 생산량을 연 150GWh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노스볼트는 LG화학, 삼성SDI 인력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조달하는 수직계열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독일 배터리업체 ATW 오토메이션 인수에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전기차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를 자체 생산해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테슬라는 지난달 ‘배터리데이’에서 자체 배터리 생산량을 2022년까지 연간 100GWh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LG화학의 올해 목표 생산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현재 시장 점유율은 큰 의미가 없다”며 “반도체처럼 신기술을 누가 점유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