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같은 글로벌 지수 사업자다. ESG 열풍이 거세지면서 컨설팅 업체, 언론사 등도 ESG 평가에 가세했다. 지난해 말 세계 5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ESG 수준을 평가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2일 경제계에 따르면 ESG 평가에 나서는 기관이 늘면서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러 기관이 제시한 점수의 차이가 상당해서다. 안드레스 기랄 연세대 경영대학 부학장은 지난해 11월 한경아카데미 주관으로 열린 ‘ESG의 국제적 흐름과 한국 기업의 과제’ 세미나에서 “MSCI와 톰슨로이터의 ESG 평가 상관계수는 0.3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평가기관의 점수가 ‘최소한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0.5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착한 기업으로 언급되며 ‘갓뚜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오뚜기는 2019년 MSCI로부터 C등급을 받았다. 같은 기업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B+로 평가했다. 우리은행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선 C를 받았지만, 톰슨로이터에선 A~B+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한국의 대표적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는 2020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7단계 중 두 번째로 높은 A등급을 받았다. MSCI에서도 세 번째인 A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S&P 글로벌은 네이버의 ESG 점수를 100점 만점에 10점으로 제시했다. 동종 기업 23개 중 최하위 수준인 22위에 해당한다. S&P는 네이버에 대해 “S&P가 요구한 설문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업들의 불만은 이것만이 아니다. 업종 분류 기준, 사용 데이터, 방법론 등이 평가기관에 따라 제각각인 탓에 ESG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 대기업 ESG 담당자는 “A기관은 ‘2시 방향’으로, B기관은 ‘4시 방향’으로 갈 것을 주문하는 식”이라며 “추가로 비용을 치르고 평가기관에서 피드백을 받아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MSCI 평가의 한계

현재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표는 MSCI의 ESG 평가다. 평가 기관 중 최대인 700개 안팎의 기초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MSCI는 산업 분류에 따라 기업을 에너지, 소재, 금융, 정보기술 등 11개의 대분류로 나눈 뒤 세부 산업군을 다시 나누고, MSCI 나름의 가중치를 부여해 등급을 도출한다. 평가 방식이 복잡하다 보니 탄소 배출량 등 주요 개별 지표의 변별력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기업도 MSCI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는지를 평가하는 데 ‘배출 총량’ 지표를 쓰기 때문이다. 주문이 늘어 공장 가동률을 높인 기업은 불이익을 피하기 힘든 구조다.

국내에도 ESG 평가기관이 적지 않다. 한국 사정에 밝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직 역량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사의 충실도를 따지면 글로벌 평가기관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얘기다. 데이터 수집이 어려운 E(환경), 기준의 적절성 논란이 있는 S(사회) 관련 지표를 상대적으로 덜 반영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평가기관이 개별 기업에 매긴 점수는 연도가 달라져도 크게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매년 방법론을 미세조정할 뿐 큰 틀은 그대로 두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MSCI ESG 등급을 받은 국내 60개 기업 중 등급이 두 단계 이상 오르내린 기업은 한 곳도 없다. 기업 실무자들 사이에서 ESG 경영을 강화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