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코인 중독자'의 고백 [임홍택의 새로운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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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DEEP INSIGHT
연일 언론의 뉴스 창에 오르내리며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이야깃거리는 단연 코인(coin)이다. 여기서 나는 한 코인 중독자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한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믿어도 좋다. 왜냐하면 그 코인 중독자가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에 들어서자, 작년 수업시간에 들었던 그 코인의 가격이 몇 배 올라 있었고, 우리는 이때가 돼서야 다시금 블록체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게 됐다. 진지하고 격렬한 토론 끝에 우리는 ‘비트코인은 미래의 디지털 화폐가 되기는 어렵지만, 그 가격은 당분간 오를 수 있다’는 어정쩡하고도 이상한 결론을 냈다. 그래서 일부는 코인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다른 일부는 여전히 이 시장을 비관했다.
내가 코인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여름이었다. 그런데 내가 코인판에 뛰어든 것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비트코인이 나중에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지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에 따른 선택이었다.
나는 이미 많이 올랐다고 생각한 비트코인이 아니라 알트코인이라는 잡코인에 내 미래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가 고심 끝에 선택한 종목은 안타깝게도 그 악명 높은 ‘리플(ripple)’이었다. 당시 코인판에서 가장 유명한 용어는 ‘리또속(리플에 또 속았니?)’이었는데, 이 말은 다른 코인의 가격이 다 올라도, 결단코 가격이 오르지 않는 리플을 갖고 있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코인판의 신조인 ‘존버가 답이다’를 믿고 여유롭게 떡상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처음 1000만원이 안 되는 돈을 투자했지만, 갑자기 이 돈이 4000만~5000만원이 넘는 거금으로 불어나자 처음에 가졌던 여유가 단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조바심만이 남았다. 단숨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단숨에 가진 돈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7년 말부터 모든 코인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이와 함께 나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점차 24시간 코인 시세창을 보고 있는 좀비가 돼가고 있었다. 어렵게 잠을 청해 봐도, 코인이 급락하는 꿈을 자주 꿨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피폐해져 갔다. 이렇게 ‘비트코인 좀비’가 된 나를 벼랑 끝에서 구해준 것은 돌쟁이 첫째 딸이었다. 연말에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실제로는 돌보는 척만 하고 눈으로는 코인 시세창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됐고, 이런 내 모습이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 소중함을 등한시하고 살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코인판에서 벗어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날 가지고 있던 모든 코인을 팔아치웠다. 최종적으로 나의 수익률은 300% 수준이었다. 900만원을 넣어 서 최종적으로 3677만원을 뺐다. 비록 대박 수준은 아니었지만 고작 반 년 만에 세 배를 번 셈이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어렵게 탈출한 코인판이었지만, 나는 그 다음달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얻어 보려는 욕심으로 다시 모든 돈을 넣고 코인판에 재입성했다. 그 다음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재입성한 지 5개월 만에 -89.5%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의 여유자금은 여유롭게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이 짧은 이야기가 바로 내가 코인 중독자로서 천국과 지옥을 함께 맛본 스토리다. 그리고 내가 이런 과정을 직접 겪으면서 느낀 점과 지금 다시 코인붐이 일어난 현상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자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코인판이 도박판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코인 도박판이 어떤 종류의 도박판이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인은 이기고 질 확률이 똑같이 50%인 동전 던지기 게임과 같다.
코인판의 확률이 동전 던지기와 똑같은 50%인 이유는 바로 코인이 오르고 내리는지를 어느 누구도 맞힐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산, 이익과 같은 현금 창출 능력이 없는 코인의 특성상, 개별 코인 가격이 적절한지에 대한 분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든다.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적으로 적은 정보를 가진 개인에게도 똑같이 50%의 승률을 안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전의 앞면(상승)과 뒷면(하락) 중 어느 쪽에 베팅할지 결정하는 유일한 방식은 관심과 소문을 활용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이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띄우기 위해서 연일 자신의 입으로 화제를 만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트코인과 관련한 미디어 보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한 지상파 PD가 코인으로 300억원을 모은 청년을 인터뷰하는 중에 2시간 만에 30억원이 더 오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멘붕(멘털 붕괴)을 일으킨 영상이었다. 당시 이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것을 투고 많은 사람은 ‘투기를 조장하는 방송’이라고 비판했다.
코인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 지 만 3년이 넘었지만, 언론과 미디어는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드라마틱하게 떼돈을 벌거나, 반대로 소중한 쌈짓돈을 몽땅 날려버린 양극단의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미래학자인 제이슨 솅커는 본인의 저서 《금융의 미래(The Future of Finace after COVID)》에서 이런 ‘집단 메뚜기 떼’가 만들어내는 ‘과장성’을 이야기한다. 기술 관련 토픽이 대중매체, SNS상에 떠오르면 언론이 일부 사례를 확대하고 전파하게 되고, 대중은 신기술을 직면한 사회 문제의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기대는 아무 생각 없이 몰려다니는 집단 메뚜기 떼를 만들어낸다.
가령,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대체불가토큰(NFT·non-fungible token)을 살펴보자. NFT는 그림·음원·영상 등의 디지털 자산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고유의 인식값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특정 디지털 상품에 꼬리표 하나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누군가가 NFT 구입했다는 것은 그 상품 자체를 산 것이 아니라 인식 가능한 꼬리표를 산 것에 불과하다. 물론 NFT는 향후 일부 게임의 아이템 거래나 사치품 영역에 한정해서 활용될 수 있겠지만, 이런 NFT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도 유망한 기술이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희박하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NFT를 보도함에 있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기록 NFT가 2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혹은 ‘NFT 삼성전자가 투자한 유망한 시장’이라는 식의 현상만을 주목한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굳이 세금 부과와 투자자 보호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이 둘을 별개의 것으로 두고 조금은 다른 질문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과세 그리고 투자자 보호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나요?”라는 것이다.
먼저, 지금 코인판의 많은 사람들은 과세당국이 제대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코인판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인 자금을 세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시장에는 코인의 자금 흐름을 숨기는 수많은 믹싱 기술이 나와 있다. 심지어 개인 자체적으로 가상자산 거래소를 만들어서, 코인을 세탁하고 이 거래소를 나중에 폭파시켜 거래 내역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기술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과세당국은 자금 출처 소명과 세무조사라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지만, 이 또한 세심하고 기민하게 설계해놓지 않는다면 많은 이가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것이다.
또 ‘투자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시행될 대책들이 진짜 개인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거래소가 개인이 맡긴 코인을 들고 달아나는 소위 ‘코인런’을 방지하는 대책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그렇다. 국내에 있는 대형 거래소가 절대로 코인런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불법으로 자금을 먹고 튀는 것보다 매달 천문학적인 중개수수료를 받는 지금의 사업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가 마련해야 하는 것은 거래소에서 세세한 불공정 행위가 발행하지 않도록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실 코인 시장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고 제도화되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곳은 다름아닌 거래소다. 만약 시스템적으로 거래소의 작은 불공정 행위를 잡아낼 수 없게 된다면 결국은 투자자 보호법은 오히려 ‘거래소 보호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얼마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조차 “아, 작년에 주식을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들이 무의미한 ‘시간의 잔해’가 아니라 ‘꿈의 잔해’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비록 무언가를 꿈꾸는 것이 사치가 돼버린 잔혹한 세상 안에서도 말이다.
■ 임홍택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에서 영문학·경영학을 전공했고, KAIST 경영대학에서 정보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입사한 CJ그룹에서 12년간 일했다. CJ인재원 신입사원 입문 교육과 CJ제일제당 소비자팀 VOC(Voice of Customer) 분석 업무,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빨간색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전국빨간차연합회(전빨련) 회장을 맡고 있으며 외교부 혁신이행 외부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퀘어 스토리》(2011년) , 《90년생이 온다》(2018년), 《관종의 조건》(2020년)이 있다.
2016년 대학원 수업에서 처음 알게 된 비트코인
내가 처음 ‘비트코인’이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2016년 가을 한 대학원 수업 시간이었다. 대학원에서 정보기술(IT)을 전공한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70만원이었다. 이는 지난 4월 평균 가격인 7000만원에 비하면 100분의 1의 수준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많은 분이 “우와 대박! 돈 100배는 벌었겠네!”라고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단 한 개의 비트코인도 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 당시 가상자산이라는 것을 싸이월드 도토리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당시 나와 같은 수업을 들은 대부분의 동기 또한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하지만 2017년에 들어서자, 작년 수업시간에 들었던 그 코인의 가격이 몇 배 올라 있었고, 우리는 이때가 돼서야 다시금 블록체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게 됐다. 진지하고 격렬한 토론 끝에 우리는 ‘비트코인은 미래의 디지털 화폐가 되기는 어렵지만, 그 가격은 당분간 오를 수 있다’는 어정쩡하고도 이상한 결론을 냈다. 그래서 일부는 코인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다른 일부는 여전히 이 시장을 비관했다.
내가 코인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여름이었다. 그런데 내가 코인판에 뛰어든 것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비트코인이 나중에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지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에 따른 선택이었다.
나는 이미 많이 올랐다고 생각한 비트코인이 아니라 알트코인이라는 잡코인에 내 미래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가 고심 끝에 선택한 종목은 안타깝게도 그 악명 높은 ‘리플(ripple)’이었다. 당시 코인판에서 가장 유명한 용어는 ‘리또속(리플에 또 속았니?)’이었는데, 이 말은 다른 코인의 가격이 다 올라도, 결단코 가격이 오르지 않는 리플을 갖고 있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코인판의 신조인 ‘존버가 답이다’를 믿고 여유롭게 떡상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보유 코인 급등이 화근이 될 줄 그땐 몰랐다
오랜 기다림의 보답이었을까? 2017년 말이 되자 내가 가지고 있던 리플이 거짓말처럼 가격이 급등했고, 드디어 리또속이라는 불명예에서 탈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처음 1000만원이 안 되는 돈을 투자했지만, 갑자기 이 돈이 4000만~5000만원이 넘는 거금으로 불어나자 처음에 가졌던 여유가 단번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조바심만이 남았다. 단숨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단숨에 가진 돈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7년 말부터 모든 코인의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이와 함께 나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점차 24시간 코인 시세창을 보고 있는 좀비가 돼가고 있었다. 어렵게 잠을 청해 봐도, 코인이 급락하는 꿈을 자주 꿨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피폐해져 갔다. 이렇게 ‘비트코인 좀비’가 된 나를 벼랑 끝에서 구해준 것은 돌쟁이 첫째 딸이었다. 연말에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실제로는 돌보는 척만 하고 눈으로는 코인 시세창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됐고, 이런 내 모습이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 소중함을 등한시하고 살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코인판에서 벗어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날 가지고 있던 모든 코인을 팔아치웠다. 최종적으로 나의 수익률은 300% 수준이었다. 900만원을 넣어 서 최종적으로 3677만원을 뺐다. 비록 대박 수준은 아니었지만 고작 반 년 만에 세 배를 번 셈이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어렵게 탈출한 코인판이었지만, 나는 그 다음달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얻어 보려는 욕심으로 다시 모든 돈을 넣고 코인판에 재입성했다. 그 다음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재입성한 지 5개월 만에 -89.5%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렇게 나의 여유자금은 여유롭게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이 짧은 이야기가 바로 내가 코인 중독자로서 천국과 지옥을 함께 맛본 스토리다. 그리고 내가 이런 과정을 직접 겪으면서 느낀 점과 지금 다시 코인붐이 일어난 현상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자 한다.
코인판이 도박판 아니냐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먼저, 지금의 코인판을 도박판이라고 보는 일반 대중과 언론의 시각은 틀리지 않다. 지금 코인판에 들어와 있는 사람 중에서 본인들이 건전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코인 1차 붐이 일어난 2017년에는 나름 ‘비트코인의 기술 기반인 블록체인’의 미래 가치에 대해 논의했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 자체가 전무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코인판이 도박판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코인 도박판이 어떤 종류의 도박판이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인은 이기고 질 확률이 똑같이 50%인 동전 던지기 게임과 같다.
코인판의 확률이 동전 던지기와 똑같은 50%인 이유는 바로 코인이 오르고 내리는지를 어느 누구도 맞힐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산, 이익과 같은 현금 창출 능력이 없는 코인의 특성상, 개별 코인 가격이 적절한지에 대한 분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만든다.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적으로 적은 정보를 가진 개인에게도 똑같이 50%의 승률을 안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전의 앞면(상승)과 뒷면(하락) 중 어느 쪽에 베팅할지 결정하는 유일한 방식은 관심과 소문을 활용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이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띄우기 위해서 연일 자신의 입으로 화제를 만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가 메뚜기 떼를 만들어 내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런 코인과 블록체인 관련 이슈를 보도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모습은 어떨까?비트코인과 관련한 미디어 보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한 지상파 PD가 코인으로 300억원을 모은 청년을 인터뷰하는 중에 2시간 만에 30억원이 더 오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멘붕(멘털 붕괴)을 일으킨 영상이었다. 당시 이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것을 투고 많은 사람은 ‘투기를 조장하는 방송’이라고 비판했다.
코인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 지 만 3년이 넘었지만, 언론과 미디어는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드라마틱하게 떼돈을 벌거나, 반대로 소중한 쌈짓돈을 몽땅 날려버린 양극단의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미래학자인 제이슨 솅커는 본인의 저서 《금융의 미래(The Future of Finace after COVID)》에서 이런 ‘집단 메뚜기 떼’가 만들어내는 ‘과장성’을 이야기한다. 기술 관련 토픽이 대중매체, SNS상에 떠오르면 언론이 일부 사례를 확대하고 전파하게 되고, 대중은 신기술을 직면한 사회 문제의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기대는 아무 생각 없이 몰려다니는 집단 메뚜기 떼를 만들어낸다.
가령,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대체불가토큰(NFT·non-fungible token)을 살펴보자. NFT는 그림·음원·영상 등의 디지털 자산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고유의 인식값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특정 디지털 상품에 꼬리표 하나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누군가가 NFT 구입했다는 것은 그 상품 자체를 산 것이 아니라 인식 가능한 꼬리표를 산 것에 불과하다. 물론 NFT는 향후 일부 게임의 아이템 거래나 사치품 영역에 한정해서 활용될 수 있겠지만, 이런 NFT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도 유망한 기술이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희박하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NFT를 보도함에 있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기록 NFT가 2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혹은 ‘NFT 삼성전자가 투자한 유망한 시장’이라는 식의 현상만을 주목한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과세·투자자 보호,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를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국민청원의 핵심은 정부가 투자자 보호에는 뒷전이고 오로지 세금을 뜯어낼 궁리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국민의 반발에 놀랐는지 여야 정치인들은 민심 수습을 위해 황급하게 코인 투자자 보호법을 내놓고 있다.나는 여기서 굳이 세금 부과와 투자자 보호를 서로 연계하지 않고, 이 둘을 별개의 것으로 두고 조금은 다른 질문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과세 그리고 투자자 보호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 있나요?”라는 것이다.
먼저, 지금 코인판의 많은 사람들은 과세당국이 제대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코인판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인 자금을 세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시장에는 코인의 자금 흐름을 숨기는 수많은 믹싱 기술이 나와 있다. 심지어 개인 자체적으로 가상자산 거래소를 만들어서, 코인을 세탁하고 이 거래소를 나중에 폭파시켜 거래 내역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기술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과세당국은 자금 출처 소명과 세무조사라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지만, 이 또한 세심하고 기민하게 설계해놓지 않는다면 많은 이가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것이다.
또 ‘투자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시행될 대책들이 진짜 개인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거래소가 개인이 맡긴 코인을 들고 달아나는 소위 ‘코인런’을 방지하는 대책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그렇다. 국내에 있는 대형 거래소가 절대로 코인런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불법으로 자금을 먹고 튀는 것보다 매달 천문학적인 중개수수료를 받는 지금의 사업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가 마련해야 하는 것은 거래소에서 세세한 불공정 행위가 발행하지 않도록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실 코인 시장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고 제도화되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곳은 다름아닌 거래소다. 만약 시스템적으로 거래소의 작은 불공정 행위를 잡아낼 수 없게 된다면 결국은 투자자 보호법은 오히려 ‘거래소 보호법’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간의 잔해가 아니라 꿈의 잔해에 묻힐 수 있도록
최근 몇 년 사이 주식, 코인 등의 자산소득이 급등하면서 전 세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 그때로 돌아가서 전 재산을 비트코인에 박았으면” 혹은 “아, 그때 그 삼성전자 주식을 사놨더라면”과 같은 생각들이다. 물론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의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이런 식의 후회를 되뇌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이런 ‘시간의 잔해’에 묻혀 살면서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있다.얼마전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조차 “아, 작년에 주식을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앞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들이 무의미한 ‘시간의 잔해’가 아니라 ‘꿈의 잔해’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비록 무언가를 꿈꾸는 것이 사치가 돼버린 잔혹한 세상 안에서도 말이다.
■ 임홍택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에서 영문학·경영학을 전공했고, KAIST 경영대학에서 정보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입사한 CJ그룹에서 12년간 일했다. CJ인재원 신입사원 입문 교육과 CJ제일제당 소비자팀 VOC(Voice of Customer) 분석 업무,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다. 빨간색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전국빨간차연합회(전빨련) 회장을 맡고 있으며 외교부 혁신이행 외부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포스퀘어 스토리》(2011년) , 《90년생이 온다》(2018년), 《관종의 조건》(2020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