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업계가 국내에서 공격적인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초고가 명품 브랜드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1~3월 가격을 인상하자 프라다·버버리·보테가베네타 등 브랜드가 1일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명품업계는 통상 물가, 환율, 임금 등을 반영해 가격을 올린다고 주장하지만 최근 인상폭과 빈도는 지나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1월 이후 루이비통은 총 7회, 샤넬은 총 4회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루이비통 인기백의 1년간 인상률은 무려 50%에 달했다”며 “평년 가격 인상률이 5~6%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6월 일제히 가격 올린 명품업계

이날 명품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 프라다, 보테가베네타 등 주요 명품업체가 이날을 기점으로 줄줄이 간판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작년부터 총 네 번 가격을 올린 샤넬은 이달에 또 한 차례 가격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프라다·버버리까지…명품값 너무 올리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인 보테가베네타는 이날 대표 상품인 ‘미니조디백’ 가격을 229만원에서 257만원으로 12%(28만원) 인상했다. 프라다는 ‘프라다 리에디션 사피아노 가죽 트리밍 리나일론 숄더백’을 169만원에서 179만원으로 6%(10만원) 올렸다. ‘프라다 듀엣 나일론 버킷백’ 가격도 149만원에서 7만원 인상해 156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다른 핸드백 가격도 10만원가량 올랐다.

이번 도미노 인상은 최고가 전략을 활용하는 ‘에루샤’의 영향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가격 협상력이 높은 에루샤가 먼저 가격을 올린 뒤 나머지 명품업체가 따라서 가격을 올리는 모양새다. 샤넬과 에르메스 등은 지난 1월 가격을 올렸다.

다른 럭셔리 브랜드도 가격 인상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영국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이달 초 ‘버버리 스몰 가죽 TB백’을 299만원에서 325만원으로 9%(26만원) 인상했다.

비쌀수록 더 사는 한국

명품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는 이유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역설에 있다. ‘갖기 어려울수록 더 갖고 싶은’ 심리를 이용한다. 올해 명품 가격 인상률은 평균 인상률을 크게 뛰어넘는다. 명품업계는 통상 1~2년에 걸쳐 상품 가격을 한 차례(5~6%) 인상한다. 하지만 지난 1년간의 인상 횟수와 인상폭(10%대)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명품업계가 국내에서 상품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명품 수요가 크게 늘자 가격 인상이 쉬워졌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작년 미국·유럽 등 세계 명품 시장은 15% 축소됐다. 이에 비해 아시아 시장은 7%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줄지 않아 가격을 인상할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글로벌 투자은행 USB에 따르면 같은 럭셔리 제품의 국내 평균 소비자 가격이 프랑스보다 20.1%(지난해 기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해외여행에 쓸 돈으로 명품을 사는 소비자가 늘면서 명품 수요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에루샤 등 명품에 힘을 실어주는 백화점 마케팅도 ‘가격 무한질주’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화점들은 모객 효과를 높이고 점포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VVIP이면 대기 없이 럭셔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을 주고 있다. 명품업계에서는 에루샤 한 개 점포당 월매출이 60억~120억원 정도 나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