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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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은 모두 누려놓고서는 젊은 직원들을 위해선 하등의 신경도 안 씁니다."
"(회사에) 남은 나는 끊어지는 동아줄을 놓지 않은 미련하고 용기 없는 사람인가요."

한국은행은 지난해 임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돌파했다.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위상·평판도도 높아 밖에서는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하지만 2030세대 직원들과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인 ‘블라인드’에는 자괴감과 분노로 가득찬 토로가 쏟아졌다. 지난달에만 8명의 직원이 한은을 떠나는 등 2030의 이탈 행렬도 이어졌다

VC·운용사로 떠난 2030

2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달 5년 차 직원(조사역) 두 명이 각각 SBI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신탁운용으로 이직했다. 주요 부서인 금융안정국과 금융시장국 직원들이었다. 전산직렬 11년차 과장이 쿠팡으로 이동했고, 외자운용원에 근무하는 직원도 핀테크기업으로 옮기는 등 지난달에만 모두 8명의 직원이 사표를 썼다. 대부분 2030세대 직원들이다. 3년차 직원이 조만간 컨설팅업체로 이동한다는 소문도 돈다.

변호사·회계사 출신 경력직원들이 법무·회계법인으로 이직을 하거나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로 옮기는 한은 임직원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비은행 금융회사, 핀테크기업 등으로 이직한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달처럼 2030 직원들의 줄퇴사가 이어진 적도 드물었다.

한은의 연봉이 지난해 사상 처음 1억원을 돌파한 것을 고려하면 2030 이탈 행렬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한은의 지난해 1인당 평균보수는 2019년에 비해 1.6%(155만원) 오른 1억61만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2030 직원들은 이를 놓고 '평균의 함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296명에 달하는 일반 사무직원인 6급 직무직(현 C3직급)들 상당수가 근속기간이 긴 만큼 연봉이 1억원을 넘어선다. 종합직 1급 고연봉자들도 100명에 육박한다. 이주열 총재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연봉이 각각 3억6700만원, 3억3420만원으로 나타났다. 한은 직원은 "2030 직원들 연봉은 4000만~7000만원가량"이라며 "절대적 기준으로 연봉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 친구와 대학 동기들과 견줘보면 크지 않아 박탈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열한 입사경쟁의 결과물이 고작 이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택지원제도 '유명무실'…세대갈등 양상도

2030의 불만은 최근 집값이 치솟으면서 더 커졌다. 유일한 복지제도로 꼽히는 사택지원금 제도부터 유명무실해졌다. 전세 보증금 3억원 이하 주택을 구하는 직원에게 최대 3억원의 대출을 지원하는 제도다. 한 직원은 "회사가 있는 서울에서 3억원 이하 전셋집을 구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며 "집값이 뛰면서 쓸모없어진 제도"라고 평가했다. 집을 구하려는 한은 직원들에게 지원하는 주택자금지원 대출의 한도는 5000만원이다. 집값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이 제도의 대출 한도는 20년 넘게 5000만원에 묶여 있다.

경영진에 대한 불만도 깊어지며 '세대갈등' 조짐도 보인다. 다른 직원은 "불만의 핵심인 급여·복지제도 개선에는 모른척한 채 '복장 자율화' 등 변죽만 울리고 있다"며 "다른 금융공기업보다 급여 등이 낮은 데다 올라갈 여지도 크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갉아먹는 '순환근무제'와 2년 동안의 지역본부 근무제도 등에 대해서도 불만이 컸다. 한 직원은 “6~7년 차까지 증권사 보조연구원(RA) 수준의 단순 업무만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선임자와 부서에 오래 근무한 직원에게 높은 인사 고과를 몰아주는 문화에 대한 반감도 컸다.

경영진도 2030의 불만을 인식하고, 경영혁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젊은 직원들이 경영진과 매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청년이사회' 등을 통해서 불만을 얘기해달라고도 했다. 한은의 고위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 조사국 과장·조사역들이 연판장을 돌려 폭압을 부리던 조사국장이 물러난 사례도 있었다"며 "지금의 젊은 직원들도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경영진과 소통하고 불만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