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추경·초저금리…후폭풍이 무섭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확장적 재정정책 '고압경제' 밀어붙이는 당정
연 0.5% 금리에 6차례 추경 '100조 돈풀기'
인플레이션·민간투자 위축 등 부작용 우려
연 0.5% 금리에 6차례 추경 '100조 돈풀기'
인플레이션·민간투자 위축 등 부작용 우려
한국 경제가 전대미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든 가운데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쟁적으로 돈을 퍼붓는 ‘고압경제(高壓經濟·High Pressure Economy)’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에서 빠르게 빠져나오겠다는 구상이지만 각종 경제지표에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는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고압경제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앙은행(Fed)을 이끌던 2016년 처음 언급한 단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국면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자 꺼내든 거시 경제정책 전략이다. 성장에 대한 신뢰를 민간에 심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준의 돈을 풀어 기업이 투자에 나서게 하고, 성장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저금리를 수십 년간 지속하고도 저성장을 탈피하지 못한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준금리를 연 0~0.25%로 끌어내린 Fed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지속하는 가운데 조 바이든 정부가 수조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는 것은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고압경제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1년 이상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연 0.5%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난해 66조8000억원, 올해 14조9000억원을 뿌렸다. 여기에 최대 35조원 규모의 2차 추경을 조만간 집행할 계획이다. 피해 계층 지원에 집중했던 지난 3월 1차 추경 때와 달리 최소 12조원 이상을 대다수 국민에게 현금으로 나눠줄 방침이다. 여기에 1조원 규모의 카드 캐시백 정책을 통해 민간소비 부양을 꾀하고 있다.
현재 경제 상황은 코로나19 위기의 한가운데 있던 지난해와 다르다. 작년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후 2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1.0%)을 기록했다. 올해는 수출 호조세 등에 힘입어 최소 3% 후반, 민간 소비와 투자가 받쳐주면 4%대 성장도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제로금리+확장재정' 美 따라가는 韓…돈 계속 풀다간 인플레 직격탄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올해 4% 이상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적인 확장재정 기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금리와 재정을 동원한 돈 풀기가 지속되면 자산 거품이 커지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고압경제의 후폭풍은 내년 출범하는 새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지원금이 실제 국민에게 지급되는 것은 오는 9월 이후인 만큼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물가 급등 문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촉발할 수 있는 장기적 경기 침체의 책임은 다음 정부가 져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추경을 비롯한 돈 풀기를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한국을 같은 선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미국은 돈을 찍어도 달러를 필요로 하는 국가가 많아 인플레이션 압력을 관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며 “한국과 미국을 같은 비교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고압경제가 목표로 하는 것과 반대로 한국의 추경은 민간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회복 국면에 재정 지출을 늘리면 시장금리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민간 투자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은 추경을 편성할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성장률을 목표로 한 당정의 고압경제 추구가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하반기 물가 상승률을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저출산·고령화 등 중장기적 재정비용 증가가 예정된 가운데 물가 급등과 재정적자 증가는 향후 위기 대응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돈을 뿌리면 당장은 자산 가격이 오르고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에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인플레이션과 구축효과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해 정부가 추경 편성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을수록 경기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3% 안팎인 상황에서 올해 4%대 이상의 성장이 확실시되는데도 추경을 또 편성하면 우려하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고압경제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앙은행(Fed)을 이끌던 2016년 처음 언급한 단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국면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자 꺼내든 거시 경제정책 전략이다. 성장에 대한 신뢰를 민간에 심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준의 돈을 풀어 기업이 투자에 나서게 하고, 성장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저금리를 수십 년간 지속하고도 저성장을 탈피하지 못한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준금리를 연 0~0.25%로 끌어내린 Fed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지속하는 가운데 조 바이든 정부가 수조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는 것은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한국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고압경제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1년 이상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인 연 0.5%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난해 66조8000억원, 올해 14조9000억원을 뿌렸다. 여기에 최대 35조원 규모의 2차 추경을 조만간 집행할 계획이다. 피해 계층 지원에 집중했던 지난 3월 1차 추경 때와 달리 최소 12조원 이상을 대다수 국민에게 현금으로 나눠줄 방침이다. 여기에 1조원 규모의 카드 캐시백 정책을 통해 민간소비 부양을 꾀하고 있다.
현재 경제 상황은 코로나19 위기의 한가운데 있던 지난해와 다르다. 작년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후 2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1.0%)을 기록했다. 올해는 수출 호조세 등에 힘입어 최소 3% 후반, 민간 소비와 투자가 받쳐주면 4%대 성장도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제로금리+확장재정' 美 따라가는 韓…돈 계속 풀다간 인플레 직격탄 맞는다
美 '고압경제' 기조 계속 펴더라도 달러수요 많아 인플레 관리 수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올해 4% 이상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적인 확장재정 기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문제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금리와 재정을 동원한 돈 풀기가 지속되면 자산 거품이 커지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고압경제의 후폭풍은 내년 출범하는 새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지원금이 실제 국민에게 지급되는 것은 오는 9월 이후인 만큼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물가 급등 문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촉발할 수 있는 장기적 경기 침체의 책임은 다음 정부가 져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미국의 사례를 들어 추경을 비롯한 돈 풀기를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한국을 같은 선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미국은 돈을 찍어도 달러를 필요로 하는 국가가 많아 인플레이션 압력을 관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며 “한국과 미국을 같은 비교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고압경제가 목표로 하는 것과 반대로 한국의 추경은 민간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회복 국면에 재정 지출을 늘리면 시장금리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민간 투자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은 추경을 편성할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성장률을 목표로 한 당정의 고압경제 추구가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하반기 물가 상승률을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저출산·고령화 등 중장기적 재정비용 증가가 예정된 가운데 물가 급등과 재정적자 증가는 향후 위기 대응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돈을 뿌리면 당장은 자산 가격이 오르고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에 경제지표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인플레이션과 구축효과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해 정부가 추경 편성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을수록 경기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며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3% 안팎인 상황에서 올해 4%대 이상의 성장이 확실시되는데도 추경을 또 편성하면 우려하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