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건, 공급 거부·공정위 제소
고래 싸움에 복 터진 스타트업들
맞춤형 향 샴푸·보디워시 판매
3년 만에 매출 20배…1200억
오가닉K는 세제 판매 500% 급증
스타트업 쿤달의 대약진 비결은 맞춤형 향만이 아니었다. 업계에선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고래 싸움’을 꼽고 있다. 거대 유통 채널로 급부상한 쿠팡의 가격 인하 요구에 퍼스널 케어(개인 뷰티·위생용품) 시장의 1등인 LG생활건강이 납품을 거부하면서 신생 브랜드에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쿤달은 쿠팡에서 트리트먼트 1위, 샴푸 2위(14일까지 올해 누적 판매량 기준)를 달리고 있다.
e커머스 올라 타 급성장한 스타트업
샴푸, 보디워시, 치약과 같은 생활용품은 대기업의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화학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대형 생산 라인을 갖춰야 하는 데다 판매처를 뚫기도 만만치 않아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 등 대형마트는 주로 신선식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생활용품이나 가공식품류는 제품력이 검증된 대기업 제품을 공급받아 왔다”고 말했다. 게다가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농심, 동서식품 등 ‘스테디셀러’를 보유한 대기업은 대리점이라는 자체 유통망도 갖고 있다.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위상 강화는 이 같은 오랜 업계 관행에 균열을 냈다. 쿠팡은 ‘소비자를 위한 최저가 판매’를 내세워 뷰티 대기업에도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이에 반발한 LG생활건강은 쿠팡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고 모든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LG생활건강의 공급 중단에 쿠팡은 제품력을 갖춘 신생 업체 발굴로 맞대응했다. 치열한 ‘고래 싸움’ 덕분에 신생 업체에 기회가 생긴 셈이다. 헤어케어 시장의 쿤달뿐 아니라 2014년 설립한 중소기업 오가닉K가 세탁 및 주방세제 분야에서 대기업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배경이다. 오가닉K는 온라인 플랫폼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500% 성장했다.
개성 중시 소비패턴도 기회
뷰티·생활용품 시장의 지각 변동은 공급망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생활용품업계 관계자는 “이미 화장품 시장에선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K공급망의 파워가 입증됐다”며 “일상용품 시장에서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ODM(제조업자개발생산)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판매 채널과 브랜드 파워만 갖추면 굳이 자체 생산 시설을 갖추지 않더라도 전국구 판매 및 수출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쿤달만 해도 미국, 싱가포르 등 24개국에 1000만달러(작년 1000만불 수출탑 달성)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소비패턴이 ‘충성’에서 ‘개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변화의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샴푸는 몇 가지 합성 화학원료로 만든 천편일률적인 상품보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쿤달은 이를 위해 전문 조향사까지 고용해 쿤달만의 46가지 향을 만들어냈다.
쿠팡, 네이버, 카카오뿐만 아니라 신세계, 롯데쇼핑 등 기존 오프라인 유통사도 대거 온라인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1등을 위협하는 신예의 도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유통 대기업이 오프라인 매장 판매를 침해할까봐 온라인에서 통하는 참신한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관심이 적었지만 디지털 전환이 대세인 요즘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애그리게이터’라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애그리게이터(aggregator)란 아마존과 같은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한 유망 브랜드를 발굴해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업체를 말한다. 지난해 4월 이후 60개가량의 애그리게이터 업체가 자본 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60억달러(약 6조8682억원)에 달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