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한 것은 1971년 11월. 고리 1호기 착공에 들어갔다. 고리 1호기는 1978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해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2017년 6월까지 운영됐다. 원전을 60년 이상 쓰는 미국 같으면 최소 20년 연장됐을 원전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동 중인 원전은 멈추고, 신규 원전은 완공을 미루거나 건설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탈원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통해 24기의 원전을 2031년 18기, 2038년 14기까지 빠르게 줄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억지와 탈법이 적잖아 거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멀쩡한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해 폐쇄…새 원전 부지마저 백지화

난항 겪은 검찰의 월성 1호기 수사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영향을 받은 원전은 13기.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가 24기인 점을 감안할 때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직접적으론 고리 1호기 다음이 월성 1호기가 타깃이었다.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시사한 지 11개월이 지난 2018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사회를 열고 이를 결정했다. 7000억원을 들여 개보수 작업을 마친 지 7년, 가동 시한인 2022년 11월까지는 4년 넘게 남은 시점이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자 정부와 한수원은 경제성을 조작했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은 “정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은 증거 자료를 폐기까지 했다. 멀쩡한 원전의 가동이 조기 중단된 데 따른 경제 손실은 감사원 발표 시점까지 1조2000억원에 이르렀다.

수사를 맡은 대전지검은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국·과장급 공무원들, 지난달에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차례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수사 및 기소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산자부 공무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계획이 보고되자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당시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영장청구 승인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고 관련 수사는 한동안 표류했다.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기소도 대검이 수사 보완 등을 이유로 승인을 하지 않아 지체됐다.

신규 원전은 백지화 시도

건설 중인 원전도 제동이 걸렸다. 신고리 5·6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착공 1년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허가 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들어 원전 건설을 철회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에 따른 것이다. 이후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해 이들 원전의 건설 중단 공식화를 시도했다. 그에 따른 매몰비용이 2조8000억원으로 추정됐다.

3개월간 멈췄던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건설 재개에 손을 들어주면서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 같은 악재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이 겹치며 당초 올해 3월이던 신고리 5호기의 준공 예정 시점은 2023년 3월, 신고리 6호기의 준공 예정 시점은 2022년 3월에서 2024년 6월로 미뤄졌다.

착공 전이던 신한울 3·4호기는 별도의 절차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 토지매입비와 주요 기기 제작비 등으로 7790억원이 투입된 시점에서다. 하지만 신한울 3·4호기 건설 백지화에 대한 책임은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공사계획 인가기간을 올해 2월에 2년 연장했기 때문이다. 공사 백지화에 따른 각종 손실 관련 법정 분쟁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사업 초기 단계에 있던 경북 영덕의 천지 1·2호기와 강원 삼척 대진 원전은 사업이 철회됐다.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에서 관련 사업 종결을 의결한 것이다. 예정 부지의 12%가 수용된 영덕 주민들의 반발로 미뤄졌던 천지 1·2호기 예정구역 지정 철회도 올해 2월 마무리됐다. 이로써 국내에는 원전 건설 예정구역이 완전히 사라졌다.

건설이 끝난 원전은 가동이 지체됐다. 우선 신고리 4호기가 예상보다 18개월 지체된 2019년 2월 가동에 들어갔다. 똑같은 방식으로 설계·건설된 신고리 3호기가 정상 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동이 지나치게 미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한울 1호기는 원전 완공 15개월 만인 지난 9일에야 운영허가를 받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비행기 충돌 위험,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 등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변수를 빌미로 13차례나 관련 보고를 받으며 결정을 미뤘다.

남정민/노경목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