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를 반영한 투자 및 경영 전략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진행된 주요 M&A 중 5건이 ESG 테마와 관련돼 있다. SK건설이 환경 폐기물 플랫폼 EMC홀딩스를 1조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상사와 주부전력이 네덜란드 에너지 기업 에네코(Eneco)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도 ESG 실사를 도입하고 있다. 토종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 IMM PE는 투자 대상 선별 단계에서부터 ESG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ESG와 관련한 M&A는 리스크 관리형, 기회 강화형, 수익 추구형, 적대적 M&A 방어 수단 등으로 구분된다. 우선 리스크 관리형은 ESG에 취약한 기업이 잠재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M&A를 이용하는 경우다. ESG 친화 업체 인수로 약점을 보완하는 유형과 ESG 리스크 사업을 분리해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유형으로 구분된다.
정유·화학, 환경 위험 상쇄 위한 M&A 많아
전통적으로 거대 석유 기업 및 화학산업은 환경 분야 위험 요소가 많다. 이에 메이저 석유업체 및 화학업체들은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신재생·친환경업체를 인수하고 있다. 토털은 2016년 배터리 제조업체 사프트(SAFT)를 인수하고, 이어 2018년 신재생에너지 회사 다이렉트에너지를 사들였다. 환경 서비스 회사 수에즈는 벨기에의 플라스틱 재활용 회사 티바코(Tivaco)를 인수하며 폐기물과 CO2 배출량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ESG 위험을 제거하는 유형도 있다. ESG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비판받는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한화의 경우 지난해 방산 부문 중 분산탄 사업 부문을 분리해 ‘코리아 디펜스 인더스트리’를 신설했다. 분산탄 사업 분할 및 매각 내용이 투자 기관의 리포트에 인용되는 등 ESG 개선효과가 나타났다.
기회 강화형 M&A는 친환경, 안전 등 확대되는 ESG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유형이다. 자동차 회사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프랑스 자동차 그룹 PCA는 50:50 비율로 합병을 체결하며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를 설립, 전기차 모델 10종을 출시했다. 3M도 안전산업 관련 사업을 확장하며 2015년 안전장비업체 토털세이프티, 2017년 소방안전장비업체 스캇세이프티를 잇따라 인수했다.
ESG 등급 낮은 기업 인수해 수익 창출
다음으로 수익 추구형 M&A가 있다. 베인앤컴퍼니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모펀드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GP(General Partners)들은 ESG가 열악한 산업에서 경쟁사에 비해 더 지속 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기업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ESG가 우수한 산업뿐 아니라 열악한 산업에서도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스웨덴의 EQT VIII 펀드는 2017년 창고 자동화 시스템업체 오토스토어(Autostore)를 5억 유로에 인수해 2019년 16억 유로에 매각했다. 납산 배터리를 리튬이온 배터리로 전환해 탄소배출량 감소 및 에너지 효율을 향상해 기업 가치를 높였다. 이탈리아 바이아웃 펀드도 2016년 미국의 폴리에스터 수지 생산업체인 라이히홀드와 이탈리아 복합재 전문 기업 폴린트를 합병해 코팅 및 복합수지를 생산하는 특수화학 그룹을 설립했다. 이 업체는 LED 조명 전환과 노르웨이 저장 창고 단열 개선을 통해 전기 사용량을 줄였다.
ESG 경영은 적대적 M&A의 방어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적 책임 활동에 적극적인 프랑스 식음료 기업 다논(Danone)이 잠재적인 적대적 M&A로부터 보호받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논에 대한 높은 국민적 지지로 2005년 펩시코(Pepsico)의 다논 인수 시도 때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인수 저지에 노력했다. 프랑스의 수자원 및 폐기물 회사 베올리아도 경쟁사 수에즈를 인수하려 했지만, 언론으로부터 ESG 친화적이지 않고 재무 효과만 겨냥한 적대적 M&A라는 비판을 받으며 실패했다.
ESG가 고려된 M&A는 수단과 방법이 어떠하든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정리된다. 또 ESG 등급이 낮은 회사를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경향도 보인다. ESG 리스크가 많지만 개선이 용이한 기업을 인수해 리스크 요소를 제거하면 장기적 이익과 함께 지속 가능 경영이 가능한 회사로 변모시킬 수 있다.
[인터뷰] 양병찬 대신경제연구소 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
“ESG M&A에 절차 간소화·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줘야” 양병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경제법·공정거래법 전문가다. 서남대학교 경찰행정법학과 교수와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조정관실 과장으로 근무하며 학계와 관을 두루 경험한 흔치 않은 이력을 지니고 있다. 양 본부장은 지난 4월부터 대신경제연구소에 합류해 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ESG 관련 M&A는 언제부터 늘어나는 추세인가.
“2016년부터 ESG와 관련한 M&A가 많아졌다. 2015년 기후변화 대응 내용을 담은 파리협정이 채택됐고, 2016년에는 국제 지속 가능성 보고 표준인 GRI 스탠더드가 발표됐다. 특히 이 시기부터 환경 관련 M&A가 증가했다. GRI 스탠더드와 파리협정 등이 기업의 ESG M&A를 촉발한 것이다.”
- M&A를 4가지 유형으로 나눴는데,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ESG 하면 대부분 환경에 집중한다. 특히 환경 위험과 관련한 M&A가 많았다. 석유화학 기업, 플라스틱 제조 기업 등은 당장 ESG 리스크에 당면해 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것은 ESG가 적대적인 M&A의 방어 수단으로서도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ESG와 관련해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 적대적 M&A도 방어할 수 있다.”
- ESG 관련 M&A가 그린워싱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일부 기업은 ESG와 관련 없는 사업을 매각하고 ESG 관련 사업을 인수하며 이미지와 수익을 챙기는데, 그린워싱 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보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ESG를 위해 위험 사업 등을 매각하는 경우, 개별 기업은 리스크를 제거하게 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문제가 계속 남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 ESG 리스크가 중요해지면서 M&A 전 ESG 실사가 이뤄지는 것 같다.
“M&A 전에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에서 각각 법무 실사와 회계 실사를 한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ESG 실사가 필수가 됐다. ESG 실사는 ESG 평가 전문 기업이 해야 한다. 현재 국내의 경우 ‘이 기업은 안 돼’ 수준의 네거티브 스크리닝 정도에서 끝나고 적극적 실사는 하지 않고 있다. 우리도 M&A 시 면밀하고 단계적인 ESG 실사와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
- 모범적인 M&A가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범적인 ESG M&A가 이뤄지려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기업활력제고법 등 기업을 살리기 위한 특별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 ESG를 추구하는 M&A에 복잡한 단계를 간소화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기업에 ESG M&A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린워싱을 어떻게 구별할지도 계속 고민해야 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