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무임승차국 막는다...탄소국경 장벽 쌓는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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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세가 기후 변화 대응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이 세계 최초로 탄소국경세 도입을 공식화했고 미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탄소 다배출 국가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세계무역기구는 탄소국경세로 인한 무역 분쟁을 우려하고 있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EU집행위원회가 지난 7월 14일 대규모 탄소 배출 감축 입법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제안했다.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2035년부터 EU 내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겼는데,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탄소국경세다.
유럽판 탄소국경세, CBAM
유럽이 도입하려는 탄소국경세의 정확한 명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탄소 누출 방지를 명분으로 역외에서 생산돼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배출량에 대해 수입자가 CBAM 인증서를 구입하도록 하는 조치다. 2023년부터 도입하되 시범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인증서의 구매 단가는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해 부과된다. EU 공식 저널에 매주 마지막 근무일에 발표하는 주간 EU ETS 경매 종가의 평균가가 기준이 된다. EU 역내 배출권거래시장에서 형성된 탄소 가격을 기반으로 똑같이 역외품을 규제하겠다는 얘기다.
첫 타깃은 철강이나 시멘트, 비료, 전기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이다. 통상 탄소배출은 제품을 만들 때 직접 배출하는 탄소뿐 아니라 생산 공정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배출한 탄소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CBAM 인증서 구매 수량의 기준이 되는 탄소배출량은 직접 배출량만 우선 적용된다.
즉 철강 등 CBAM 적용 품목을 수입하는 업자는 2023년부터 연간 수입하는 양의 직접 탄소배출량에 비례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다만 CBAM 대상 수입품이 원산지 국가에서 이미 탄소 가격을 지불한 경우 수입자는 이에 상응하는 금액의 감면을 요청할 수 있다.
간접 배출량도 CBAM 계산에 포함할지 여부, 부과 대상 품목 확대 여부 등은 향후 검토를 거쳐 전환기가 종료되는 2025년에 확정된다. 유로뉴스는 "최종적으로 2030년부터 연간 100억 유로(약 13조5788억원) 전후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추산했다. 과세 추징금은 7500억 유로 규모의 EU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에 투입될 전망이다.
EU는 이를 위해 CBAM 당국을 신설한다. 역외품 수입자는 수입 신고를 할 때 CBAM 당국이 정한 품목별 고유 번호, 수입량, 원산지 등을 기재하고, 매년 5월 전년도 수입품의 탄소배출량과 CBAM 인증서의 수량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 의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특이 사항으로는 CBAM 신청인이 법인인 경우 지분 25% 이상 보유 주주가 최근 5년간 신청법인의 경제활동과 관련한 중범죄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 따라가는 미국
유럽은 산업혁명의 기원지로 기후 위기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권역이다. 유럽 국가 중 핀란드는 1990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탄소세를 부과했다. ETS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도 2005년 EU였다. 이후 세계 각국 정부가 탄소세와 ETS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탄소국경세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 감축하겠다고 공언한 미국이 ‘오염 유발국 수입품 수수료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한 친환경 인프라 투자 계획의 예산안 규모를 3조5000억 달러(약 4042조5000억원)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이와 동시에 재원 조달 방안의 하나로 해당 항목을 포함시킨 것이다.
탄소 저감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후변화 무임승차국’ 제품에 징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우선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가스, 석유, 석탄 등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 부문의 제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내년부터 시행될 경우 연간 최대 160억 달러 세수가 증대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다만 미국판 탄소국경세는 아직 구체화되거나 도입이 확정된 건 아니다.
이처럼 EU가 쏘아 올린 탄소국경세 논의로 인해 각국이 기후 목표를 상향하거나 유사 제도 도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국가든 자국 기업이 탄소 가격을 다른 나라에 납부하게 두는 것보다 자국에서 확실하게 거두는 방안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탄소국경세 도입국이 책정한 가격 이상의 탄소 가격을 매긴다면, 그 비용을 감축 역량에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EU와 미국에서 동시에 탄소국경세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중요한 이정표”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무역 마찰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각국과 유럽(또는 미국)의 탄소 가격 차이가 사실상 관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탄소국경세는 세계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또 다른 보호무역주의 논쟁을 촉발할 수 있다”며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새로운 외교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과 미국 모두 탄소국경세 도입 배경에 대해 탄소 감축보다는 자국 기업 보호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탄소배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개발도상국보다 더 많은 탄소세를 부담하느라 자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하는 게 탄소국경세 도입의 최우선 목표가 된 것이다. 여기엔 세계 어느 곳에서 생산된 제품이더라도 동일 탄소세를 부과해 자국 기업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실제 미국판 탄소국경세 방안을 주도한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당)은 “기후변화에 전 세계 국가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도구가 필요하다”며 “기후변화 대책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은 보호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NYT는 “미국은 자체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새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지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나라 기업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이 CBAM 도입을 예고한 것은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 발표를 통해서였는데, 당시 EU 집행위도 “파리협약 등 국제기후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역외국 제품을 타깃으로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역내 산업의 비용 부담을 상쇄한다”는 명분을 배경으로 내세웠다.
현재 철강 등 탄소 다배출 품목으로 지목된 수출품을 주로 생산하는 러시아, 중국, 터키, 우크라이나, 이집트 등 기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의 러시아산 제품 수입 규모는 2019년 기준 1450억 유로(약 196조2500억원)로, EU는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이라며 “러시아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CBAM 도입 후 국가별 탄소세 추징 가능 금액(2019년 기준)에 대한 전망치를 분석했는데 철강·비료·알루미늄·시멘트업계에 한해 러시아는 약 127억 유로 규모, 중국은 약 84억 유로, 터키는 약 76억 유로의 탄소세를 EU에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정책 매체 유렉티브 등에 따르면 유럽철강협회(Eurofer)를 포함한 다수의 유럽 내 산업협회는 "CBAM 도입 시 유럽 내 모든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도입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신 수출환급제 도입을 대체 방안으로 권고했다. EU 내에서 생산한 제품이 탄소세 비도입국에 수출될 때 그만큼 환급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출환급제에 대해서는 유럽 환경 단체들이 도입을 반대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韓철강 연간 3400억원 손실 예상
EU 탄소국경세를 토대로 국내 영향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업종 등에서 수출 단가 인하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업자가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만큼 수출 기업에 직접적 비용 부담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수입업체가 단가 인하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EU 역내 경쟁업체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 물량이 줄어들 우려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가 부담하게 될 비용은 연간 약 2억5000만 유로로 추산된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가 EU에 수출한 철·철강 물량의 평균치는 연간 276만 톤이고, 탄소배출량은 469만2000톤/Co2eq로 계산됐다. 여기에 7월 둘째주 EU ETS 경매 종가의 평균가인 1톤당 54.2유로를 곱한 규모다.
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발간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한국의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EU CBAM에 따라 한국은 전체적으로 연간 10억6100만 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EU가 1톤당 30유로의 비용을 전 분야에 과세할 경우를 가정해 내놓은 수치다. KIEP는 약 1.9%의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는 효과와 같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철강 등 동종 상품에 대해 원산지를 근거로 수입품과 역내 생산품 간 차별적 조치를 적용하는 것은 내국민대우 원칙(GATT 제3조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내국민대우 원칙이란 외국산 물품이라도 일단 수입이 완료된 후에는 자국산 물품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또 CBAM 인증서 구입 대금 등에 상응한 수출 단가 인하 압박이나 수출 물량 축소로 이어질 경우 수량 제한 철폐 원칙(GATT 11조)에도 반할 소지가 있다. 전경련은 "CBAM 등 탄소국경세는 탄소 저감을 명분으로 공정한 무역 질서를 해치고 신보호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 정부와 경제계,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한국경제 기자 knra@hankyung.com
유럽판 탄소국경세, CBAM
유럽이 도입하려는 탄소국경세의 정확한 명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탄소 누출 방지를 명분으로 역외에서 생산돼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배출량에 대해 수입자가 CBAM 인증서를 구입하도록 하는 조치다. 2023년부터 도입하되 시범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인증서의 구매 단가는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해 부과된다. EU 공식 저널에 매주 마지막 근무일에 발표하는 주간 EU ETS 경매 종가의 평균가가 기준이 된다. EU 역내 배출권거래시장에서 형성된 탄소 가격을 기반으로 똑같이 역외품을 규제하겠다는 얘기다.
첫 타깃은 철강이나 시멘트, 비료, 전기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이다. 통상 탄소배출은 제품을 만들 때 직접 배출하는 탄소뿐 아니라 생산 공정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배출한 탄소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CBAM 인증서 구매 수량의 기준이 되는 탄소배출량은 직접 배출량만 우선 적용된다.
즉 철강 등 CBAM 적용 품목을 수입하는 업자는 2023년부터 연간 수입하는 양의 직접 탄소배출량에 비례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다만 CBAM 대상 수입품이 원산지 국가에서 이미 탄소 가격을 지불한 경우 수입자는 이에 상응하는 금액의 감면을 요청할 수 있다.
간접 배출량도 CBAM 계산에 포함할지 여부, 부과 대상 품목 확대 여부 등은 향후 검토를 거쳐 전환기가 종료되는 2025년에 확정된다. 유로뉴스는 "최종적으로 2030년부터 연간 100억 유로(약 13조5788억원) 전후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추산했다. 과세 추징금은 7500억 유로 규모의 EU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에 투입될 전망이다.
EU는 이를 위해 CBAM 당국을 신설한다. 역외품 수입자는 수입 신고를 할 때 CBAM 당국이 정한 품목별 고유 번호, 수입량, 원산지 등을 기재하고, 매년 5월 전년도 수입품의 탄소배출량과 CBAM 인증서의 수량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 의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특이 사항으로는 CBAM 신청인이 법인인 경우 지분 25% 이상 보유 주주가 최근 5년간 신청법인의 경제활동과 관련한 중범죄 전과 기록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 따라가는 미국
유럽은 산업혁명의 기원지로 기후 위기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는 권역이다. 유럽 국가 중 핀란드는 1990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탄소세를 부과했다. ETS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도 2005년 EU였다. 이후 세계 각국 정부가 탄소세와 ETS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탄소국경세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 감축하겠다고 공언한 미국이 ‘오염 유발국 수입품 수수료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제안한 친환경 인프라 투자 계획의 예산안 규모를 3조5000억 달러(약 4042조5000억원)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이와 동시에 재원 조달 방안의 하나로 해당 항목을 포함시킨 것이다.
탄소 저감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후변화 무임승차국’ 제품에 징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우선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가스, 석유, 석탄 등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 부문의 제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내년부터 시행될 경우 연간 최대 160억 달러 세수가 증대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다만 미국판 탄소국경세는 아직 구체화되거나 도입이 확정된 건 아니다.
이처럼 EU가 쏘아 올린 탄소국경세 논의로 인해 각국이 기후 목표를 상향하거나 유사 제도 도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국가든 자국 기업이 탄소 가격을 다른 나라에 납부하게 두는 것보다 자국에서 확실하게 거두는 방안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탄소국경세 도입국이 책정한 가격 이상의 탄소 가격을 매긴다면, 그 비용을 감축 역량에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EU와 미국에서 동시에 탄소국경세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중요한 이정표”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무역 마찰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각국과 유럽(또는 미국)의 탄소 가격 차이가 사실상 관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탄소국경세는 세계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또 다른 보호무역주의 논쟁을 촉발할 수 있다”며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새로운 외교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과 미국 모두 탄소국경세 도입 배경에 대해 탄소 감축보다는 자국 기업 보호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탄소배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개발도상국보다 더 많은 탄소세를 부담하느라 자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하는 게 탄소국경세 도입의 최우선 목표가 된 것이다. 여기엔 세계 어느 곳에서 생산된 제품이더라도 동일 탄소세를 부과해 자국 기업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실제 미국판 탄소국경세 방안을 주도한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당)은 “기후변화에 전 세계 국가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도구가 필요하다”며 “기후변화 대책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은 보호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NYT는 “미국은 자체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새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지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나라 기업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이 CBAM 도입을 예고한 것은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 발표를 통해서였는데, 당시 EU 집행위도 “파리협약 등 국제기후규범을 준수하지 않는 역외국 제품을 타깃으로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역내 산업의 비용 부담을 상쇄한다”는 명분을 배경으로 내세웠다.
현재 철강 등 탄소 다배출 품목으로 지목된 수출품을 주로 생산하는 러시아, 중국, 터키, 우크라이나, 이집트 등 기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의 러시아산 제품 수입 규모는 2019년 기준 1450억 유로(약 196조2500억원)로, EU는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이라며 “러시아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CBAM 도입 후 국가별 탄소세 추징 가능 금액(2019년 기준)에 대한 전망치를 분석했는데 철강·비료·알루미늄·시멘트업계에 한해 러시아는 약 127억 유로 규모, 중국은 약 84억 유로, 터키는 약 76억 유로의 탄소세를 EU에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정책 매체 유렉티브 등에 따르면 유럽철강협회(Eurofer)를 포함한 다수의 유럽 내 산업협회는 "CBAM 도입 시 유럽 내 모든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도입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신 수출환급제 도입을 대체 방안으로 권고했다. EU 내에서 생산한 제품이 탄소세 비도입국에 수출될 때 그만큼 환급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출환급제에 대해서는 유럽 환경 단체들이 도입을 반대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韓철강 연간 3400억원 손실 예상
EU 탄소국경세를 토대로 국내 영향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업종 등에서 수출 단가 인하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업자가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만큼 수출 기업에 직접적 비용 부담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수입업체가 단가 인하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EU 역내 경쟁업체 등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 물량이 줄어들 우려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가 부담하게 될 비용은 연간 약 2억5000만 유로로 추산된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가 EU에 수출한 철·철강 물량의 평균치는 연간 276만 톤이고, 탄소배출량은 469만2000톤/Co2eq로 계산됐다. 여기에 7월 둘째주 EU ETS 경매 종가의 평균가인 1톤당 54.2유로를 곱한 규모다.
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발간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한국의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EU CBAM에 따라 한국은 전체적으로 연간 10억6100만 달러의 탄소국경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EU가 1톤당 30유로의 비용을 전 분야에 과세할 경우를 가정해 내놓은 수치다. KIEP는 약 1.9%의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는 효과와 같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철강 등 동종 상품에 대해 원산지를 근거로 수입품과 역내 생산품 간 차별적 조치를 적용하는 것은 내국민대우 원칙(GATT 제3조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내국민대우 원칙이란 외국산 물품이라도 일단 수입이 완료된 후에는 자국산 물품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또 CBAM 인증서 구입 대금 등에 상응한 수출 단가 인하 압박이나 수출 물량 축소로 이어질 경우 수량 제한 철폐 원칙(GATT 11조)에도 반할 소지가 있다. 전경련은 "CBAM 등 탄소국경세는 탄소 저감을 명분으로 공정한 무역 질서를 해치고 신보호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 정부와 경제계,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한국경제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