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이니셔티브 가입, 이것만은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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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셔티브는 각 산업계에 속한 글로벌 기업들의 행동강령 또는 가이드라인 형태의 자율 규범이다. 기업들은 해당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이니셔티브에 가입해 상호이행을 독려한다. 이러한 이니셔티브의 가입 자체는 뜻 깊은 일이지만 서약에 반하는 관행이 방치되면 소송에서 불리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한다
[한경ESG] S 따라잡기
2021년 7월 LG디스플레이는 지속 가능 경영 활동 및 성과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정보를 담은 2020∼2021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ESG 경영활동에 대한 것인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LG디스플레이가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책임감 있는 산업연합(RBA), 책임 있는 광물 조달 및 공급망 관리를 위한 연합(RMI)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다는 점이다.
LG디스플레이만이 아니다. 2021년 초 ESG가 기업경영 방식의 화두가 되면서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이 RE100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속속 가입했고, 글로벌 공급망을 갖고 있는 대부분 국내 기업이 각 산업별로 관련 이니셔티브에 가입했거나 가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갑자기 생성된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던 ESG 흐름이 활성화될 조짐을 보고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2020년 초 ‘다국적기업 국제이니셔티브’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올해 3월 <다국적기업 국제이니셔티브와 기업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해 배포했다. 필자도 그 연구에 참여했는데, 각 산업별 이니셔티브의 출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살펴보는 좋은 기회였다.
무한 경쟁 시대, 스스로 구속하는 이유
이니셔티브는 각 산업계에 속한 주요 글로벌 기업이 해당 산업만의 특성을 고려해 행동 강령 내지 가이드라인이라는 명칭의 자율 규범을 만들고, 상호 이행을 독려하고 협력하는 기업 단체를 의미한다. 같은 산업계에 속해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이 왜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스스로를 구속하려 할까. 답은 간단하다. 사실 공익을 위한 협력에는 늘 ‘무임승차’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 인권 보호를 위한 경영 원칙을 세우고 비용을 투자하며 근로 관행을 개선했더라도, 다른 경쟁 기업이 인권 보호를 무시한 채 변함없이 효율성만을 따지며 기업을 경영한다면, 그 기업의 인권 보호 노력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특성을 두고 리베카 헨더슨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자본주의 대전환>에서 “포틀럭 파티는 모든 사람이 협력할 때만 가능한 법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SG라는 변화의 흐름에서 기업들이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각 산업계에 적합한 자율 규범을 준수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ESG 경영을 위한 여러 실천 방안 중 산업계와 공급망 전반에 걸쳐 가장 신속하게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이니셔티브 활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국내외에서 훌륭한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아직 이니셔티브 가입을 두고 고민 중인 기업이 있다면, 가입에 앞서 각 이니셔티브가 지닌 역사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살펴보고, 현실적 실천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령, 대표적인 글로벌 이니셔티브 중 하나인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를 살펴보자. RBA의 전신은 전자산업시민연대(EICC)로 2004년 공급망 내 기업들이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 행동규범을 수립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설립 당시 8개의 전자 산업 기업이 주도했기에 전자산업시민연대(Electronic Industry Citizenship Coalition, EICC)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주로 전자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들로 하여금 공급망 내 근로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행동 규범을 마련했다.
그러던 중 EICC는 2017년 10월경 전자 산업뿐 아니라 인접 산업군을 포함하기 위해 단체명을 현재와 같은 RBA로 변경했다. RBA와 산하 3개의 이니셔티브인 책임 있는 광물 이니셔티브(Responsible Minerals Initiative), 책임 있는 노동 이니셔티브(Responsible Labor Initiative), 책임 있는 공장 이니셔티브(Responsible Factory Initiative)에는 현재 약 400개 회원사가 가입되어 있는데, 약 1년 전인 2020년 6월경 회원사 수가 약 150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ESG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회원사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LG·하이닉스 등 전자업계가 모인 RBA
RBA의 주요 회원사로는 애플, IBM, 델, 화웨이, 퀄컴, 소니 등 해외 기업과 우리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전자업계 선도 기업이 일찍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볼보, BMW, 월마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과 같이 유통, 자동차, 인터넷 서비스 회사 등도 참여해왔다. RBA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강제 노동 금지, 사업장 복지, 화학물질 관리, 환경의 지속 가능성, 공공 조달, 간접적 관계의 협력 업체, 다양성과 젠더 보호, 학생 노동자, 근로시간,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이다.
RBA에 가입하더라도 모든 회원사가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지 않으며, 회원 ‘등급’이 존재한다. 즉 단계별로 RBA의 목표에 동의하는 수준의 서포터(Supporter)도 있지만, 제휴 회원(Affiliate), 일반 회원(Regular Member), 나아가 정회원(Full Member)에 이르려면 RBA 행동 규범의 준수 정도, 다른 회사들의 인증 평가 수용 등 까다로운 가입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RBA에 가입하게 되면 다양한 학습 기회가 제공되고 행동 규범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 아카데미, 콘퍼런스 등에 참여할 수 있으며, 코로나19 같은 급박한 변화에도 신속히 대응해 각 기업의 현실에 맞는 행동 규범이 제공되는 등 혜택을 받으면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ESG 경영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RBA의 가입 및 활동 방식과 그에 따른 혜택은 다른 이니셔티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RBA 가입 자체는 뜻깊은 일이지만, 자칫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에 부메랑처럼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즉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게 되면, 해당 이니셔티브의 행동 강령을 공개적으로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고 준수 서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서약에 반하는 관행이 방치되어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그 준수 서약 행위는 소송에서 불리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위험성이 있다. 가령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라나 플라자 공장 건물 붕괴 사건에서도 이런 기업의 서약은 소송에서 불리한 근거로 활용된 바 있다.
이런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우리 기업들로서는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 섣불리 가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각 이니셔티브마다 중점을 두고 있는 사항도 다르고, 회원 등급 체계도 다르다. 모쪼록 이니셔티브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 기업은 이니셔티브를 가입하는 데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해당 이니셔티브의 특성과 함께 현실적인 실천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ESG센터 수석변호사
LG디스플레이만이 아니다. 2021년 초 ESG가 기업경영 방식의 화두가 되면서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이 RE100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속속 가입했고, 글로벌 공급망을 갖고 있는 대부분 국내 기업이 각 산업별로 관련 이니셔티브에 가입했거나 가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갑자기 생성된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던 ESG 흐름이 활성화될 조짐을 보고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2020년 초 ‘다국적기업 국제이니셔티브’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올해 3월 <다국적기업 국제이니셔티브와 기업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해 배포했다. 필자도 그 연구에 참여했는데, 각 산업별 이니셔티브의 출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살펴보는 좋은 기회였다.
무한 경쟁 시대, 스스로 구속하는 이유
이니셔티브는 각 산업계에 속한 주요 글로벌 기업이 해당 산업만의 특성을 고려해 행동 강령 내지 가이드라인이라는 명칭의 자율 규범을 만들고, 상호 이행을 독려하고 협력하는 기업 단체를 의미한다. 같은 산업계에 속해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이 왜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스스로를 구속하려 할까. 답은 간단하다. 사실 공익을 위한 협력에는 늘 ‘무임승차’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 인권 보호를 위한 경영 원칙을 세우고 비용을 투자하며 근로 관행을 개선했더라도, 다른 경쟁 기업이 인권 보호를 무시한 채 변함없이 효율성만을 따지며 기업을 경영한다면, 그 기업의 인권 보호 노력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특성을 두고 리베카 헨더슨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자본주의 대전환>에서 “포틀럭 파티는 모든 사람이 협력할 때만 가능한 법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ESG라는 변화의 흐름에서 기업들이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각 산업계에 적합한 자율 규범을 준수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ESG 경영을 위한 여러 실천 방안 중 산업계와 공급망 전반에 걸쳐 가장 신속하게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이니셔티브 활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국내외에서 훌륭한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아직 이니셔티브 가입을 두고 고민 중인 기업이 있다면, 가입에 앞서 각 이니셔티브가 지닌 역사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살펴보고, 현실적 실천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령, 대표적인 글로벌 이니셔티브 중 하나인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를 살펴보자. RBA의 전신은 전자산업시민연대(EICC)로 2004년 공급망 내 기업들이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 행동규범을 수립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설립 당시 8개의 전자 산업 기업이 주도했기에 전자산업시민연대(Electronic Industry Citizenship Coalition, EICC)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주로 전자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들로 하여금 공급망 내 근로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행동 규범을 마련했다.
그러던 중 EICC는 2017년 10월경 전자 산업뿐 아니라 인접 산업군을 포함하기 위해 단체명을 현재와 같은 RBA로 변경했다. RBA와 산하 3개의 이니셔티브인 책임 있는 광물 이니셔티브(Responsible Minerals Initiative), 책임 있는 노동 이니셔티브(Responsible Labor Initiative), 책임 있는 공장 이니셔티브(Responsible Factory Initiative)에는 현재 약 400개 회원사가 가입되어 있는데, 약 1년 전인 2020년 6월경 회원사 수가 약 150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ESG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회원사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LG·하이닉스 등 전자업계가 모인 RBA
RBA의 주요 회원사로는 애플, IBM, 델, 화웨이, 퀄컴, 소니 등 해외 기업과 우리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전자업계 선도 기업이 일찍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볼보, BMW, 월마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과 같이 유통, 자동차, 인터넷 서비스 회사 등도 참여해왔다. RBA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야는 강제 노동 금지, 사업장 복지, 화학물질 관리, 환경의 지속 가능성, 공공 조달, 간접적 관계의 협력 업체, 다양성과 젠더 보호, 학생 노동자, 근로시간,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이다.
RBA에 가입하더라도 모든 회원사가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지 않으며, 회원 ‘등급’이 존재한다. 즉 단계별로 RBA의 목표에 동의하는 수준의 서포터(Supporter)도 있지만, 제휴 회원(Affiliate), 일반 회원(Regular Member), 나아가 정회원(Full Member)에 이르려면 RBA 행동 규범의 준수 정도, 다른 회사들의 인증 평가 수용 등 까다로운 가입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RBA에 가입하게 되면 다양한 학습 기회가 제공되고 행동 규범을 실천하기 위한 교육 아카데미, 콘퍼런스 등에 참여할 수 있으며, 코로나19 같은 급박한 변화에도 신속히 대응해 각 기업의 현실에 맞는 행동 규범이 제공되는 등 혜택을 받으면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ESG 경영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RBA의 가입 및 활동 방식과 그에 따른 혜택은 다른 이니셔티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RBA 가입 자체는 뜻깊은 일이지만, 자칫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에 부메랑처럼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 즉 이니셔티브에 가입하게 되면, 해당 이니셔티브의 행동 강령을 공개적으로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고 준수 서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서약에 반하는 관행이 방치되어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그 준수 서약 행위는 소송에서 불리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위험성이 있다. 가령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에 위치한 라나 플라자 공장 건물 붕괴 사건에서도 이런 기업의 서약은 소송에서 불리한 근거로 활용된 바 있다.
이런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우리 기업들로서는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 섣불리 가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각 이니셔티브마다 중점을 두고 있는 사항도 다르고, 회원 등급 체계도 다르다. 모쪼록 이니셔티브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 기업은 이니셔티브를 가입하는 데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해당 이니셔티브의 특성과 함께 현실적인 실천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ESG센터 수석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