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中企, 중국서 일냈다…세계 반도체 대기업 '발칵'
경기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소재한 메가일렉트로닉스는 글로벌 반도체기업만 만든다는 초고속 대용량 데이터 처리용 저장장치인 NVMe SSD(2테라바이트급)를 중국 선두권 전자부품 유통회사에 이번달부터 5년간 총 90만개 공급하는 계약을 이달 체결했다. 연매출 120억원 규모인 중소기업이 한번에 2500억원 규모의 매출처를 확보한 것이다. 인텔 마이크론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업체와 입찰 경쟁 끝에 거둔 쾌거여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中 입찰 경쟁서 인텔 마이크론 등 꺾은 한국 中企

세계 최대 노트북 시장인 중국에선 코로나19여파에 따른 재택근무 확산, 게임 수요 증가 등으로 노트북 판매가 매년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노트북 구동 속도를 좌우할 NVMe SSD 수요도 급증했다. NVMe 2TB SSD는 속도와 저장능력 면에서 가장 고사양 노트북에 적용되는 SSD다. 1분에 60편의 풀HD급 영화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최신 HDD에 비해 30배 빠른 속도다. SSD는 전통적 저장장치인 HDD와 달리 자기 디스크가 아닌 반도체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소음과 전력 소모가 적으며 작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중국내에선 2TB NVMe SSD를 자체 설계 제작할 수 있는 기업이 없다는 점이 한계였다. 중국 노트북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 유통업체는 세계 유수 반도체 기업의 제품과 성능을 비교한 끝에 메가일렉트로닉스 제품을 낙점했다. 조호경 메가일렉트로닉스 사장은 "중국내에서 품질 불량이 많은 대만 제품이나 비싼 미국 제품 대신 믿을 수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을 쓰겠다는 수요가 많다"며 "글로벌 대기업 제품과 동일한 품질인데 가격이 12%가량 저렴한 것도 우리 제품의 강점"이라고 전했다.

메가일렉트로닉스는 삼성전자, 미국 인텔, 일본 도시바, 미국 마이크론 등 쟁쟁한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과 경쟁하는 세계 7대 SSD 제조업체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SSD를 자체 설계 제작하는 유일한 회사다. 이 회사의 SSD는 삼성전자 인텔 도시바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의 제품에 비해 읽기와 쓰기 속도, 내구력 측면에서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가격경쟁력이 더 높다는 강점이 있다. SSD 개발 생산인력만 수백명에 달한 글로벌 기업과 달리 이 회사는 14명의 소수정예 석박사급 인재가 이를 맡고 있어 제조 원가가 크게 절감된 덕분이다. 중소기업 특유의 원가 절감능력이 발휘된 것이다.

이 회사는 2017년 SSD를 구성하는 콘트롤러, 낸드플래시, D램, 전원회로 등을 하나의 칩 속에 넣은 차세대 SSD인 BGA SSD를 삼성 도시바 대만 SMI 등에 이어 세계 4번째로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텔 마이크론 등보다 1년 앞서 개발한 것이다. 장착된 SSD와 기존 부품간 전자파 간섭을 막는 독자적인 전자파 차폐기술도 개발해 미국 중국 등에 특허도 취득한 상태다.
한국 中企, 중국서 일냈다…세계 반도체 대기업 '발칵'

美 고급 인재 스카웃해 SSD사업 도전...차세대 SSD 세계 4번째 개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놀라게 한 이 강소기업의 탄생 배경엔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로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끈기와 인재 기술개발에 대한 장기 투자가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2009년 설립 당시만해도 이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PCB)을 공급하는 납품업체였다. 변화의 계기가 된 건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해외 인재 초청 사업(해외 고급 인재 스카웃 촉진 정책)이었다. 삼성전자, 하이닉스를 거쳐 세계 2위 반도체 패키징업체인 미국 앰코에서 반도체모듈 설계를 담당했던 천종옥 연구소장을 영입하면서 SSD 자체 개발에 도전한 것이다. 정부가 그의 체제비와 임금을 보전해주면서 가능했던 기회다. 이 회사는 5년간 개발 노력 끝에 2017년 BGA SSD를 세계 4번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18~2019년 세계 표준 제조공법이 2D(2차원)낸드 기반에서 3D(3차원)낸드 기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0억원을 쏟아부은 2D낸드 기반의 기술을 과감히 포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기술개발을 해야했던 것이다. 조 사장은 "당시 모든 직원들이 위기를 극복하기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주말, 야근도 잊은 체 일해준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호경 메가일렉트로닉스 사장이 경기 반월국가산단내 위치한 본사 공장 테스트장비 앞에서 SS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조호경 메가일렉트로닉스 사장이 경기 반월국가산단내 위치한 본사 공장 테스트장비 앞에서 SS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한국판 TSMC' 목표...SSD 수요 급증에 내년 매출 3배 증가 전망

이 회사는 기업의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고사양 SSD를 개발해 내년부터 본격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2023년부턴 전기차, 의료기기 등에 폭넓게 쓰일 BGA SSD도 공급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 조사 기관들은 가격 하락을 전망하고 있는 D램과 달리 전세계 PC 노트북 데이터센터용 수요가 급증하는 SSD는 계속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관들은 SSD 글로벌 시장 규모를 올해 35조원에서 2025년 51조원으로 4년내 45.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PCB사업 역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 회사는 머리카락 두께(약 70 마이크로미터)의 2분의 1수준까지 얇은 기판으로 16층까지 쌓아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다층회로기판생산업체다. 조 사장은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 전장제품과 통신, 서버용으로 PCB제품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SSD매출에 힘입어 지난 상반기 매출이 작년 연간 실적에 버금가는 12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중국발(發) SSD 수요로 작년 매출의 2.6배인 301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2022년엔 올해 매출의 3배인 1020억원, 2023년엔 6배인 1818억원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 SSD사업과 PCB사업간 매출 비중도 3대7에서 장기적으로 9대1로 재편될 전망이다. 현재 미래에셋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내년 코스닥시장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조 사장은 "요즘 해외 바이어로부터 비대면 화상회의 요청이 잇따르며 수주가 이어지고 있다"며 "중국에서 2500억원 규모의 매출처를 확보했기 때문에 '내년 매출 1000억원 돌파'가 어려운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우물만 판 중소기업으로 독창적인 기술력을 키워 세계적 기업에 오른 대만 TSMC처럼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도 했다. 그는 "대만 중소기업계에선 제2, 제3의 TSMC가 계속 나오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정부도 한국판 TSMC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