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김모씨(40)는 지난달 롤렉스 매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4년 전에 예약한 ‘롤렉스 데이토나 흰색 다이얼’이 도착했으니 수령하라는 연락이었다. 김씨는 “4년 전 결혼할 때 예물로 예약했는데 이제야 도착했다”며 “웃돈(프리미엄·P)이 3000만원 가까이 붙은 만큼 사용하지 않고 중고시장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롤렉스 시계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인기 제품의 웃돈 가격이 시계 판매 가격의 두 배 수준인 300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뛰었다. 일선 매장의 판매 담당자조차 “이런 가격은 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웃돈만 시계 가격 두 배

23일 명품시계업계에 따르면 인기 제품인 롤렉스 데이토나 흰색 다이얼의 웃돈은 2900만원까지 붙어 45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이 시계의 정가는 1599만원이다. 웃돈이 제품 가격의 두 배에 달하는 셈이다. 지난해 7월 1600만원이던 웃돈이 올 들어 급등세를 이어가며 사상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서브마리너 인기 제품의 웃돈은 적게는 55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까지 붙었다. 명품시계 중고 거래 관계자는 “최근 3~4개월간 시세를 보면 롤렉스 시계 가격이 사상 최고가에 진입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품귀 현상에 구매자들 사이에서는 ‘성골’ ‘진골’ ‘피(P)골’이라는 은어까지 등장했다. 매장에서 직접 구매한 사람을 ‘성골’, 해외 매장이나 직구를 통해 구매한 사람을 ‘진골’, 중고 매장에서 웃돈을 주고 구매한 사람을 ‘피골’이라고 부른다. 자조적인 은어가 등장할 정도로 국내에서 롤렉스 가격은 유례없는 급등세다.

올해 출시된 ‘서브마리너 스타벅스’ 모델 시세는 2700만원에 달한다. 매장 판매 가격이 1165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출시 5개월 만에 약 1500만원의 웃돈이 붙은 셈이다.

고객 사이에서 ‘오늘 사는 게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판매가를 뛰어넘는 웃돈 현상 때문이다. 판매가 1580만원인 2018년형 ‘서브마리너 데이토나’도 208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명품시계 관계자는 “롤렉스 가격은 이달이 최고점이라고 본다”며 “서브마리너나 데이토나 등은 생산량 자체가 적어 다른 모델에 비해 시세가 높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유독 롤렉스 웃돈이 센 이유는

롯데와 신세계백화점 본점 롤렉스 매장 앞에는 매일 40~50명이 ‘오픈런’(백화점 개장 시간에 맞춰 매장 앞에 줄서는 현상)을 하고 있다. 명품시계 매장에 웃돈을 주고 되파는 리셀러와 예물 시계를 구입하려는 예비부부 등 다양하다. 오픈런에 참가한 박모씨(41)는 “매일 오전 백화점으로 출근하는 리셀러조차 한 달에 시계 한 개 사기 어려울 정도로 물량이 없다”고 전했다.

롤렉스 품귀 현상은 스위스 본사가 전 세계 물량을 통제하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롤렉스는 고객에게 평생 남녀 시계를 한 개씩만 살 수 있는 전략을 펴고 있다. 파텍필립이나 오메가 등 다른 스위스 명품시계를 소비자가 원하면 대부분 살 수 있는 것과 대비된다. 또 하나의 요인으론 높은 환금성을 꼽는다. 안정적 중고부품 조달을 통한 리셀 물량이 꾸준히 나와 신상품뿐 아니라 중고 거래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돼 환금성이 높은 게 특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품을 ‘모셔 두는’ 베이비부머에 비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중고로 사고파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며 “명품에 대한 인식이 경험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중고시장이 활성화된 명품으로 수요가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