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ETF 첫 출시...판 커지는 ESG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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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은 기업 등이 일정량의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이다. 할당량 이상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권을 사서 메워야 한다. 9월께 국내 최초로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면서, 국내 개인 투자자들도 손쉽게 투자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한경ESG] 투자 트렌드
이제 환경 규제는 비용인 동시에 투자 기회다. 탄소가 대표적 사례다. 9월께 국내 최초로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될 전망이다. 올 들어 가격이 70%가량 치솟은 탄소배출권에 국내 개인 투자자도 손쉽게 투자의 길이 열리는 셈이다. 탄소배출권은 기업 등이 일정량의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인데, 할당량 이상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권을 사서 메워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를 줄이는 것이 곧 돈 버는 길이다. “이제 탄소배출권도 원자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에는 탄소배출을 줄이는 기술을 갖춘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도 출시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 들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펀드에 3조원 가까이 몰려들었다.
9월 국내 첫 탄소배출권 ETF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등은 탄소배출권 관련 ETF를 9월께 동시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거래소에 상장 심사를 신청했다.
ETF는 유럽이나 미국 혹은 두 시장의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으로 구성된 기초지수를 따라 수익을 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탄소배출권은 보관 비용이 없어 원유 선물 ETF와 달리 롤오버(만기 연장) 비용이 적다는 것도 강점”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선물 투자 상품은 만기가 다가오면 만기가 더 먼 선물로 갈아타야 한다. 이때 보관 비용이 높으면 수익을 깎아 먹는다.
국내 탄소배출권 ETF 상장은 개인 투자자의 갈증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인 유럽은 개인 투자자에게도 문이 열려 있긴 하다. 하지만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거래하려면 증거금 납부 등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 탄소배출권 선물 시장은 2023년쯤 개장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탄소배출권 ETF가 출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탄소배출권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가 출시됐다. 하지만 2008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한 ‘ETFS 카본 ETF(티커명 CARB)’는 상장폐지됐다. 초창기 탄소배출권 거래가 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거래량이 적은 데다 제도 미비로 탄소배출권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지면서 ETF 수익률도 부진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작년 7월 미국에서 ‘크레인셰어스 글로벌 카본 ETF(KRBN)’가 상장되자 수요가 폭발했다. 출시 1년 만에 운용 규모(순 자산 총액)가 5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 들어 8월 중순까지 수익률은 약 50%다.
탄소는 갈수록 귀한 몸이 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올 들어 탄소배출권 가격은 70%가량 치솟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 미국 등 각국이 탄소 규제의 고삐를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ICE 유럽 선물거래소에서 12월물 EU 탄소배출권 가격은 사상 처음 톤당 50유로를 넘어섰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의 탄소 및 유틸리티 연구 공동 책임자인 로슨 스틸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말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현재의 2배인 톤당 110유로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 탄소배출권은 더욱 비싸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이후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잇따르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권 공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탄소 규제 강화 이면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도 깔려 있다. EU, 미국 등은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일종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방침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기업은 제품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이다. 게다가 EU는 탄소국경세를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동해 매길 계획이다. 선진국 정부들이 탄소배출권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녹색 원자재’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시장은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일종의 원자재가 된 탄소배출권은 2015년 1월 1일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37.8%로, 금(5.4%)과 원유(6.8%)보다 높다”고 말했다.
ESG 펀드에 투자금 3조원 몰려
환경 규제가 비용을 넘어 투자의 단서가 되자 ESG 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ESG 테마로 분류된 주식형 공모펀드 40개에는 올 들어 지난 8월 20일까지 총 1조1515억원이 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에서 약 2조원이 빠져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ESG 채권형 펀드 10개에 이 기간 총 1조7690억원이 모인 걸 감안하면 8개월여 만에 ESG 펀드에 3조원 가까운 투자자금이 모인 것이다. 수익률이 부진한 펀드에 돈이 모일 리 없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글로벌ESG사회책임투자인덱스펀드, 삼성자산운용의 삼성유럽ESG펀드 등은 연초 이후 수익률이 20%가 넘는다.
해외에서도 ESG 투자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ESG 역량 확대를 위해 네덜란드의 자산운용사 NN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를 약 16억 유로(약 2조2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보도했다. NN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는 네덜란드 보험사 NN그룹의 자산운용 부문 자회사인데, 운용 자산 4분의 3이 ESG 전략에 기반해 운용되고 있다.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으로부터 2019년 책임투자 및 ESG 통합 관련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이는 자산운용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해외금융 회사의 ESG 경영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외에서 ESG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ESG 금융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ESG에 대한 인식 제고는 금융회사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ESG 데이터의 질적 수준 제고, 공시 체계의 표준화 등 ESG 금융시장이 고도화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구은서 한국경제 기자 koo@hankyung.com
9월 국내 첫 탄소배출권 ETF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등은 탄소배출권 관련 ETF를 9월께 동시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거래소에 상장 심사를 신청했다.
ETF는 유럽이나 미국 혹은 두 시장의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으로 구성된 기초지수를 따라 수익을 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탄소배출권은 보관 비용이 없어 원유 선물 ETF와 달리 롤오버(만기 연장) 비용이 적다는 것도 강점”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선물 투자 상품은 만기가 다가오면 만기가 더 먼 선물로 갈아타야 한다. 이때 보관 비용이 높으면 수익을 깎아 먹는다.
국내 탄소배출권 ETF 상장은 개인 투자자의 갈증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인 유럽은 개인 투자자에게도 문이 열려 있긴 하다. 하지만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거래하려면 증거금 납부 등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 탄소배출권 선물 시장은 2023년쯤 개장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탄소배출권 ETF가 출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탄소배출권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가 출시됐다. 하지만 2008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한 ‘ETFS 카본 ETF(티커명 CARB)’는 상장폐지됐다. 초창기 탄소배출권 거래가 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거래량이 적은 데다 제도 미비로 탄소배출권 공급 과잉 상태에 빠지면서 ETF 수익률도 부진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작년 7월 미국에서 ‘크레인셰어스 글로벌 카본 ETF(KRBN)’가 상장되자 수요가 폭발했다. 출시 1년 만에 운용 규모(순 자산 총액)가 5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 들어 8월 중순까지 수익률은 약 50%다.
탄소는 갈수록 귀한 몸이 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올 들어 탄소배출권 가격은 70%가량 치솟았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 미국 등 각국이 탄소 규제의 고삐를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ICE 유럽 선물거래소에서 12월물 EU 탄소배출권 가격은 사상 처음 톤당 50유로를 넘어섰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베르크의 탄소 및 유틸리티 연구 공동 책임자인 로슨 스틸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말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현재의 2배인 톤당 110유로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회복 국면에서 탄소배출권은 더욱 비싸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이후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근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잇따르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권 공급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탄소 규제 강화 이면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도 깔려 있다. EU, 미국 등은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일종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방침이다. 결과적으로 중국 기업은 제품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이다. 게다가 EU는 탄소국경세를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동해 매길 계획이다. 선진국 정부들이 탄소배출권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리기 어려운 구조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녹색 원자재’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시장은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일종의 원자재가 된 탄소배출권은 2015년 1월 1일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37.8%로, 금(5.4%)과 원유(6.8%)보다 높다”고 말했다.
ESG 펀드에 투자금 3조원 몰려
환경 규제가 비용을 넘어 투자의 단서가 되자 ESG 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ESG 테마로 분류된 주식형 공모펀드 40개에는 올 들어 지난 8월 20일까지 총 1조1515억원이 유입됐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에서 약 2조원이 빠져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ESG 채권형 펀드 10개에 이 기간 총 1조7690억원이 모인 걸 감안하면 8개월여 만에 ESG 펀드에 3조원 가까운 투자자금이 모인 것이다. 수익률이 부진한 펀드에 돈이 모일 리 없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글로벌ESG사회책임투자인덱스펀드, 삼성자산운용의 삼성유럽ESG펀드 등은 연초 이후 수익률이 20%가 넘는다.
해외에서도 ESG 투자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ESG 역량 확대를 위해 네덜란드의 자산운용사 NN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를 약 16억 유로(약 2조2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보도했다. NN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스는 네덜란드 보험사 NN그룹의 자산운용 부문 자회사인데, 운용 자산 4분의 3이 ESG 전략에 기반해 운용되고 있다.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으로부터 2019년 책임투자 및 ESG 통합 관련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이는 자산운용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해외금융 회사의 ESG 경영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외에서 ESG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ESG 금융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ESG에 대한 인식 제고는 금융회사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ESG 데이터의 질적 수준 제고, 공시 체계의 표준화 등 ESG 금융시장이 고도화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구은서 한국경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