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사업의 공통점은 모두 정부가 지난 16년간 펼쳐온 저출산 대응 사업에 포함돼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저출산 대응과의 직접적 관련성이 낮은 사업을 저출산 사업으로 포장해 예산 규모를 키우는데 주력하는 동안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조원 쓰고도 출산율 급락
27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이후 16년 동안 정부가 저출산 예산이라며 발표한 사업의 총 예산액은 국비 기준 198조532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저출산 대책이 처음 발표된 2006년 1조274억원이었던 저출산 예산은 2016년 13조6633억원으로 처음 10조원대를 돌파한 후 2년 뒤인 2018년 20조1898억원으로 뛰었다. 작년엔 35조7439억원으로 30조원대를, 올해는 42조9003억원으로 40조원대를 훌쩍 넘었다.
이 기간 출산율은 급전직하했다. 2006년 1.132명이었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18년 0.977명으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0.84명까지 떨어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저출산 예산을 대거 늘리고도 출산율 상승이 이뤄지지 못한 이유로 "저출산 대책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들이 저출산 대책과 예산에 포함돼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컨대 올해 저출산 대응 사업 중 청년 창업지원사업 중에선 실제 청년과 상관없는 창업기업이나 게임·만화기업 등에 지원하는 사업이 포함됐다. 프로스포츠팀을 지원하고 돌봄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사업도 저출산 대응에 포함됐다. 가족 여가를 진흥이 저출산 대책이라며 템플스테이 운영도 지원했고, 대학 인문학 강화 프로그램도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저출산 대응 사업이 분화하면서 실제 영유아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 비중은 크게 감소했다. 16년간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한 198조원 중 영유아 대상 사업에 쓰인 금액은 81조697억원으로 40.8%에 그쳤다. 아동과 청소년, 산모 지원 등을 모두 포함해야 절반을 가까스로 넘긴 106조8801억원(53.8%)이 된다. 주체별 예산 중 가장 큰 것은 청년 대상 사업이다. 16년간 85조3270억원이 투입돼 전체 저출산 예산의 43.0%를 차지했다.
영유아 예산 비중 76.8→26.1%
이같은 현상은 문재인 정부 들어 심화했다. 정부가 2015년까지는 자녀양육가구를 지원하는 것만을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했지만 3차 저출산 대책이 시작된 2016년부터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지원을 저출산 대책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책 첫해인 2006년 76.8%에 달했던 영유아 대상 예산 비중은 지난해 31.5%, 올해 26.1% 등으로 크게 줄었다. 청년 대상 예산은 2013년까지 아예 없었지만 올해는 61.0%가 청년을 위한 사업에 배정됐다.이는 해외 주요국이 자녀양육가구에 대한 직접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예정처는 평가하고 있다. 저출산 종합대책을 펴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체적인 그림에서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저출산 예산의 99.0%를 자녀양육가구에 집중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별도의 종합적인 저출산 대책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로 자녀양육가구에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는 127만원의 출생수당과 다자녀 추가수당, 신학기 수당 등을 준다. 독일은 월 33만원의 아동수당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있지 못한 저출산 사업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신혼부부 및 청년 주거지원사업은 20~40㎡ 등 소형 평형을 대거 공급했지만 수요자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세가격 기준 1조8000억원의 주택까지만 지원받을 수 있는 전세자금 대출도 지원 실적이 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처는 "2006년부터 15년 이상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합계출산율이 오히려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며 "정책의 구성과 대상별 재원배분 등 적절성을 평가해 정책에 반영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