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최근 준공한 아파트 단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조명과 냉난방 등에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건물의 전력 낭비를 잡아주는 최첨단 에너지 관리 시스템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오피스 건물을 중심으로 시작된 ‘그린빌딩’ 열풍이 아파트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건설회사들도 친환경 아파트 단지 조성에 적극적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 개선’과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피스에서 아파트로 확산 된 그린빌딩 열풍
신축 단지, 친환경 자재 사용 확산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준공한 단지 대부분이 에너지 효율 1~2등급을 받고 있다. 에너지 절감 효과가 노후 단지에 비해 60% 이상이라는 것이 건설사들의 설명이다. 현대건설이 시공한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886가구)는 ‘제로 에너지 아파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19년에 입주한 이 단지는 고단열·신재생에너지 설비·건물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을 도입해 아파트로는 처음 제로에너지 건축 5등급을 받았다. 기존 에너지 대비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뜻하는 ‘에너지 자립률’이 23.37%에 이른다.

대형 건설사들은 친환경 건축자재 개발에도 공들이고 있다. DL이앤씨는 현대오일뱅크와 손잡고 친환경 건축 소재를 개발 및 생산해 건설 현장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정유사인 현대오일뱅크가 버려지는 부산물을 이용해 시멘트, 콘크리트 등 탄소저감 건축자재 원료를 생산하면 DL이앤씨는 이를 아파트 단지에 도입할 방침이다.

입주민의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위해 미세먼지와 유해균 등을 막아 알아서 공기질을 관리해주는 단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대구 동구 용계동에 조성하는 ‘용계역 푸르지오 아츠베르’(1313가구)에 친환경 그린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클린에어 시스템을 설치해 단지 입구부터 지하주차장, 출입구, 엘리베이터, 집 안까지 5개 구역에서 미세먼지와 외부 유해균 침입을 차단해준다. GS건설도 자회사 자이S&D와 공동 개발한 공기청정 시스템 ‘시스클라인’을 ‘방배 그랑자이’를 시작으로 신축 단지에 적용 중이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지 않아도 24시간 외부에서 유입된 미세먼지나 오염된 공기 등을 밖으로 배출하고, 다단계 공기정화를 해주는 최첨단 시스템이다.

건축 폐기물 줄이는 특화 설계 도입

건축 폐기물을 최대한 배출하지 않도록 설계한 아파트도 ‘친환경 단지’로 주목받는다. DL이앤씨는 최근 친환경 설계 기술로 ‘가변형 벽식구조’(C2하우스)에 대한 특허등록을 마쳤다. 안방과 주방, 욕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 구조를 입주민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도록 특화한 상품이다. 가변형 구조에선 평면 및 공간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어 아파트 수명을 늘리고, 재건축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이다. 최근 DL이앤씨가 수주한 서울 북가좌6구역 재건축단지(아크로 드레브 372)에도 이 같은 설계가 적용된다.

공장에서 건물 뼈대 및 외장 마감, 내부 바닥 등 90%를 만들어 건설 현장에선 단순 설치로 소음과 먼지 없이 안전하게 시공할 수 있는 ‘모듈러 공법’도 친환경 건설 기술로 각광받는다.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앞다퉈 이 같은 모듈러 건축 확대에 나서고 있다.
SK에코플랜트, 견본주택 에코에디션
SK에코플랜트, 견본주택 에코에디션
SK에코플랜트는 ‘친환경 건설 프로젝트’ 일환으로 아파트뿐 아니라 매년 수만 가구씩 분양된 후 남겨지는 견본주택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견본주택 에코에디션’을 실시하고 있다. 견본주택에 마감재를 최소화한 오픈 천장 디자인과 친환경 마감재를 적용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고, 재활용 가능한 자재를 사용하는 식이다. 재활용 가능한 외장재, 시트지가 부착되지 않은 유리, 페트병 등으로 만든 카펫 타일 등도 적용된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대구 본리동 ‘달서 SK뷰’ 견본주택에 처음 도입했다”며 “분양 현장에도 친환경 철학이 담긴 견본주택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숲세권’ 프리미엄 급부상

아예 분양 마케팅 포인트를 ‘친환경’으로 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친환경 기술을 접목한 아파트를 숲 또는 공원 옆에 배치해 ‘환경 친화’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최근 분양한 강원도 강릉시 교동 ‘강릉 롯데캐슬 시그니처’(1305가구)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단지는 평균 46.88 대 1로 강원도 역대 최고 경쟁률을 갈아치웠다. 1000가구가 넘는 데다 단지 바로 옆에 ‘강릉의 센트럴 파크’라 불리는 24만m2 규모의 교동7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분양을 앞둔 경기도의 ‘이천 자이 더 파크’도 친환경 특화 단지다. 민간 공원 조성 특례 사업으로 부악공원 내에 들어서는 이 단지는 주차장은 100% 지하로 넣고, 지상 공간에는 휴게 공간을 위해 다양한 수종 식재, 수변 시설이 갖춰진 가든형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이천자이 더 파크 조감도
이천자이 더 파크 조감도
부동산 전문업체 직방이 자사 앱 이용자 1517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주거 공간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을 조사한 결과 ‘쾌적성-공세권·숲세권(공원, 녹지 주변)’을 선택한 응답자가 31.6%로 가장 많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쾌적한 환경을 갖춘 단지가 많지 않기에 희소성이 높다”며 “투자보다 실거주용으로 구입하는 수요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그린 프리미엄’은 아파트뿐 아니라 지식산업센터(옛 아파트형 공장)로 옮겨가는 추세다. 예전에는 직주근접성을 고려해 지식산업센터는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 입지가 중요했지만, 최근에는 녹지 공간을 갖춘 지식산업센터의 인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도심 속 대규모 공원을 품은 지식산업센터는 쾌적성은 물론 조망권까지 확보되어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가 높은 만큼 희소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서울 마곡동에 들어서는 지식산업센터 ‘놀라움 마곡’은 바로 앞에 약 50만m2의 대규모 보태닉 공원 ‘서울식물원’이 있고, 궁산근린공원과 겸재정선미술관도 가까워 근로자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문화·여가 생활을 누리기 좋은 입지 조건을 갖췄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공기질 등을 자동 관리하는 단지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며 “건설업계도 ESG 경영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대세다”라고 설명했다.

안상미 한국경제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