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국회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 기본법)이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으로 높이고,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강화하는 것이 법의 핵심 내용이다. 기업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비즈니스 모델을 친환경적으로 바꿀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 온실가스만 따진다

9월 24일 제정된 탄소중립 기본법엔 기존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녹색성장 기본법)에 근거해 시행되던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손질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까지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동시에 에너지 소비량도 기준치 이상인 업체만 목표 관리업체로 지정됐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제정되면 에너지 소비량과 무관하게 온실가스 배출량 지표만으로 관리업체를 지정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정부 관리를 받게 될 업체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7월 기준 온실가스·에너지 목표 관리 대상 기업은 350개다.

관리업체로 지정되면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미루기 힘들어진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제출한 온실가스·에너지 명세서만 공개할 뿐 해당 기업이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탄소중립 기본법에 목표관리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앞으로는 정부가 관리업체별 온실가스 배출량과 목표 달성 여부 등을 공개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이 환경과 관련한 ‘숙제’를 제대로 해결했는지 공개하겠다는 의미다.

업계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공개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관리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할 때 기업과 협의한다 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며 “갑자기 공장 가동률을 높여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닥치면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늘 수 있는데, 그러면 ‘기후 악당’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기본 법안을 통해 2030년 NDC를 ‘35% 이상’으로 설정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경제 단체들은 국내 기업이 2030년까지 2억4000만 톤가량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업 중심인 한국의 산업 생태계가 감당하기 힘든 ‘환경 가속’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기준을 맞추려면 탄소배출이 적은 설비를 새로 들이거나 지금까지 없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며 “철강업체 중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35% 줄일 수 있는 업체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사업 환경평가도 까다로워져

건설회사 등 정부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사업 시행자들도 탄소중립 기본 법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책사업 환경영향 평가에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법이 개정되면 앞으로 환경평가에서 기후변화 요인이 다른 평가 사항에 우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 시행자가 기후변화 이슈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미”라며 “안 그래도 통과하기 어려운 환경영향 평가가 더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사업은 예산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신설되는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의 영향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제대로 달성했는지 평가해 다음 사업의 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향후 법안 개정이나 시행령 등을 통해 사업자에 대한 기후 위기 피해 손실 보상 책임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기후 위기 피해 손실에 대한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보상 책임과 기후 위기 책임을 지닌 사업자의 보상 책임을 명시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법안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환경계와 시민사회 등은 사업주 보상 책임 조항을 법안에 명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기후 위기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이 거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어떻게 측정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기업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시행 앞둔 탄소중립법…감축 목표 못 맞추는 기업 명단 공개
[돋보기]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제공 건 시민회의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탄소중립시민회의’에서 정부의 급격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우려를 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시민들은 17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회에서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산업계의 충격과 국민 부담, 일자리 소멸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탄소중립시민회의는 9월 11~12일 이틀간 대토론회를 열고 6가지 주제에 대한 토론과 질의응답 등을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시민회의는 지역·성별·연령 등을 고려해 무작위 추출한 만 15세 이상 국민 500여 명이 참여하는 기구로, 정부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며 국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토론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른 산업계의 충격과 그로 인한 국민 부담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한 토론에 참여한 정모 씨는 “2050년까지 화석에너지를 수소에너지로 바꾸면 그에 따른 인력은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 궁금하다”며 “정책이 바뀔 때마다 그에 딸린 고급 인력이 설 자리가 적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계획 등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최모 씨는 “2009년에 제시한 녹색성장 국가 전략 목표 달성에도 실패했는데 2030년 목표 달성이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시민대표단 양모 씨는 “친환경 자동차와 관련된 부대시설 및 인프라 확충, 관련 종사자들의 안전한 업종 이전에 따른 생존권 보장 방안이 마련된 다음 내연기관차를 친환경 자동차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의 탄소중립 속도 조절을 요구했다.

일부 시민은 정부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식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위원회 운영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의견 제시에 나선 김모 씨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토론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교육받는 느낌”이라며 “탄중위가 정해놓은 방향에서 벗어나는 질문은 취합이 안 되고 탈락되는 느낌을 상당히 강하게 받는다”고 비판했다. 탄소중립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시민 의견이 제대로 취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또 “일방적으로 교육하듯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는 근거가 빈약하고 출처가 불분명하다”며 “통계로 사람들이 현혹될 수 있는 얘기만 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모 씨 역시 “시민들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판단의 전문성 떨어지지 않나 걱정된다”며 “탄중위와 대립적 반대 의견도 정보를 정리해 제공해준다면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소현 한국경제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