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 재고자산 축소에 나섰다. 통상 반도체 제조사가 재고자산 축소에 나서는 것은 향후 불확실한 수요를 대비하는 측면이 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회계연도 4분기(6~8월) 실적 발표 이후 공개한 기업회계자료에서 해당분기 재고자산이 44억8700만달러(약 5조3224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1.1% 줄었다고 밝혔다.

감축 규모가 크진 않지만 마이크론의 재고자산이 2019년 말 이후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반도체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체의 완성품과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인 제품, 원자재 모두 포함되는 재고자산은 보통 향후 제조사들이 시장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엿볼 수 있는 지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반도체 특수를 맞아 꾸준한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재고를 줄이고 있다는 것은 완제품은 계속 팔려나가지만 원재료인 웨이퍼 등은 쌓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초기 6조9728억원이었던 재고자산을 2018년 12조7630억원까지 늘렸다. SK하이닉스도 같은 시기 재고를 2조원대에서 4조원대로 2배 불렸다. 전방 수요를 감안해 웨이퍼를 대폭 투입하고 완제품을 쌓은 결과다. 그만큼 탄탄한 수요를 예상했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재고자산 축소는 제조사들이 통상 시장 전망을 어둡게 바라볼 때 펼치는 제조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이크론 역시 이날 진행된 전화회의(컨퍼런스콜)에서 "이번 분기(6~8월)보다 미 회계연도 1분기(9~11월) 매출이 시장의 예상치보다 더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향후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대해서도 "제조사들이 완만한 수요 하락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단 마이크론의 재고자산 축소는 내부 영향이라기보다는 전세계적 칩 부족 사태로 빚어진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마이크론은 "전체적 반도체 공급망에서 집적회로(IC) 부족이 반도체 출하량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도 지난 28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 출범식에서 "5세대 통신(5G) 확대와 신규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기업용 솔리드테스트드라이브(SSD) 확대 등으로 메모리 수요는 계속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크론은 이날 미 회계연도 4분기(6~8월) 매출액 82억7000만달러(약 9조8100억원) 영업이익 29억5500만달러(약 3조51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6.6%와 155.4% 증가한 수치다.

다만 마이크론은 다음 분기 매출 가이던스를 85억달러에서 76억5000만달러로 크게 낮추면서 시간 외 주가는 직전일 종가 대비 5%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마이크론이 향후 실적 전망치를 낮췄다는 소식에 전날 각각 2.8%와 3.3%씩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