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년 만에 원유(原乳)가격연동제 폐지를 추진한다. 우유의 원료인 원유 가격이 수급 구조와 상관없이 생산비와 물가에만 연동돼 자동 인상되면서 한국산 우유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급량을 보장해주는 쿼터제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수요를 반영해 공급량을 정하기로 했다.

가공용 원윳값 1100→900원

농림축산식품부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낙농가와 소비자단체, 우유회사 등과 함께 제3차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열고 우유 가격결정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가격결정 방식은 용도별 차등 가격제다. 흰 우유를 만드는 음용유와 치즈 등의 원료로 사용하는 가공유 가격을 달리 책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음용유는 현재와 같은 L당 1100원의 가격을 보장한다. 하지만 치즈 등 수입품이 많은 가공유는 L당 200원 인하한 900원을 적용한다.

가공유 가격 인하에 따라 예상되는 농가의 소득 하락 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가공유 수요량을 현재보다 많게 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농가가 보유한 우유 쿼터는 204만9000t이다. 이 물량 내에서는 수요에 관계없이 L당 1100원에 판매할 수 있다. 정부안에 따른 개편 후 수요량은 음용유 186만8000t과 가공유 30만7000t 등 총 217만5000t에 이른다. 가공유 가격은 낮추되 수매량은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되면 낙농가 소득이 7799억원에서 7881억원으로 오히려 1.1%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우유회사가 가공유를 수매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내놨다. 국내 기업이 경쟁해야 하는 해외 기업들의 가공용 원유 가격이 평균 L당 400원에 불과해 900원 선으로 낮춰도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공유 가격 중 100~200원가량을 정부가 보조하되 나머지 차액은 유업체가 부담하도록 했다.

거래는 생산자단체와 수요자의 직거래 방식으로 진행한다. 가격은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거래 시 협상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원유가격연동제는 물가와 낙농가의 생산비에 따라 원유가격을 정하는 것으로 2013년 도입됐다. 수요 측면을 고려하지 않아 시장 원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다만 양자 간 거래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낙농진흥회가 물가와 생산비, 수요 등을 반영한 기준 가격을 제시하는 등 조정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낙농가·우유업체 모두 반발

정부가 원유가격 결정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 우유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L당 1100원인 한국의 원유 가격은 미국(491원)과 캐나다(659원)에 비해 현저히 높다. 일본(1203원)보다는 낮지만 생산비 대비 원유 가격 차이는 한국이 292원으로 184원에 그친 일본보다 높다.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최근 수입 멸균우유와 치즈 등 가공유 수입이 급증하면서 국산 우유 자급률은 50%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2026년 우유 관세 철폐로 우유 수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낙농가와 우유회사들은 정부의 가격결정 구조 개편안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정부안에 대해 “농식품부의 낙농산업 폐기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용도별 차등가격제와 원유가격연동제 개편으로 원유 생산 기반이 악화될 것”이라며 “유업체 이권 보장을 위해 낙농가가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유회사들은 가공유 가격 인하 폭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창범 유가공협회장은 “국제 원유 가격에 비해 정부가 제시한 가공유 가격은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격구조 개편안을 밀어붙인다는 방침이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인중 농식품부 식품산업실장은 “정부는 산업의 미래와 일반 국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며 “낙농가와 유업계 의견을 100%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강진규/박종관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