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SK인천석유화학 엔지니어가 열원 회수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SK인천석유화학 제공.
SK인천석유화학 엔지니어가 열원 회수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SK인천석유화학 제공.
주택가와 인접한 인천 서구의 SK인천석유화학 공장.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파이프 2개가 눈에 띈다. 하나는 인천·청라의 각 가정에서 난방을 끝내고 온도가 낮아진 물이 공장으로 들어오는 배관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파라자일렌 흡착 공정(PXU)에서 회수한 열교환기를 통해 이 물을 데운다. 다시 고온이 된 물은 다른 파이프를 통해 인근 주택단지로 흘러 들어간다. 인천·청라 4만 가구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이용하는 온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연 5만 톤 온실가스 저감

SK인천석유화학은 2019년 200억원을 들여 PXU에 ‘열원 회수 공정’을 설치했다. 석유화학 공장은 고온의 열로 석유를 끓여 다양한 제품을 제조해낸다. 이 과정에서 150℃ 이하의 저준위 열이 발생한다. 공정에 이용할 수 없는 낮은 열이라는 뜻이다. 보통 석유화학업체들은 제조 공정에 쓰기 힘든 까닭에 이 저준위 열을 공기 중에 방출한다. 폐열을 재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다. SK인천석유화학은 열원 회수 공정을 통해 이렇게 버려진 열로 가정용 온수를 만들고 있다. 외진 곳에 산업단지로 모여 있는 다른 석유화학업체와 달리 공장 인근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있다는 점에 착안한 행보였다. 150℃ 이하의 저준위 열은 공장을 돌리기엔 부족하지만, 난방용 온수를 데우는 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이 회사가 열원 회수 공정을 통해 재활용하는 열의 양은 연 28만 기가칼로리(Gcal)에 이른다. 37MW급 화력발전소를 1년간 가동해야 만들어낼 수 있는 규모다. 폐열 재활용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연간 5만 톤 줄였다. 황산화물(SOx)과 질소산화물(NOx) 등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도 연간 60톤을 감축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뿐이 아니다. 재활용을 통해 만드는 열은 품질이 우수하다. 통상 온수를 공급하던 지역 집단에너지사는 쓰레기를 태우는 등의 방법으로 열을 마련해 온수를 공급한다. 문제는 일정하지 않은 온도다. 쓰레기 종류에 따라 온수의 온도가 제각각이라 난방의 질이 달라진다. 반면, 석유화학공장은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온도와 품질이 일정한 온수를 만들어낸다.

SK인천석유화학의 열원 회수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익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온실가스를 절감하면서도 열원 회수에 들인 투자금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수익을 내는 방안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ESG 경영을 하다 보면, 몇 년 안에 사업을 철회하기 마련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이런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ESG 경영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SK인천석유화학은 2단계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저준위 열 재활용으로 외부에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내부 공정을 돌리는 데도 쓰겠다는 것이다. 저준위 열을 그대로 방출해 새로 석유를 데우는 일반 석유화학업체와 다른 모습이다. PXU, ISU(이성화 공정) 등에 약 200억~300억원을 들여 열교환기를 추가로 설치해 14만Gcal의 열을 더 회수할 수 있다. 온실가스는 2만5000톤, 대기오염 물질은 30톤을 연간 추가로 저감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열원 회수 사업을 확대해 온수 공급 가구를 늘리고 일부 화학제품 제조공정에도 폐열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인천석유화학이 이렇게 회수한 열은 일종의 ‘모태 열원’이다. 120℃ 내외의 낮은 열을 회수해 모태 열원과 합치면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속 가능한 ESG 경영 사례’

SK인천석유화학이 열원 회수 사업을 떠올린 것은 청라신도시 입주가 본격화된 2010년 중반께다. 늘어나는 인구로 열원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공장의 폐열을 외부로 공급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사업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떤 석유화학회사도 시도하지 않던 사업인 탓에 사내외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컸다. 복잡하게 지은 석유화학 공장에 다른 시설이 늘어나면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논리였다. 본업이 아닌 ‘열을 파는 사업’을 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다. 사계절 운전을 해야 하기에 폭우, 폭설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20년 전에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안 됐다”는 핀잔도 많았다고 한다.

SK인천석유화학 경영진은 ESG 경영 확대를 위해 기존과 다른 관점을 구성원에게 전달했다.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본업의 일부라는 시각을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했다. 과거에는 ‘돈만 버는 사업’에 집중하면 됐지만, 최근 경영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SK인천석유화학 관계자는 “사업화하면 안 되는 이유는 수백 가지였고, 위험한 일이니 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경영진이 먼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보자고 제안했고, 실무진이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덧붙였다.

SK인천석유화학 연구진은 수년간의 시뮬레이션 끝에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술적 검토, 위험성 등을 관련 부서와 담당자뿐 아니라 현장에서 공정을 운전하는 근로자들까지 리스크 극복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2019년 11월부터 폐열 공급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석유화학회사가 지역 난방사를 통해 가정용 온수를 공급하는 국내 첫 사례다.

그동안 석유화학업계는 SK인천석유화학의 입지가 주거지 바로 옆이라는 점을 리스크로 꼽았다. 환경 이슈와 관련한 민원이 상당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공장에서 대기에 문제가 없는 수증기가 피어올라도 주민들은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걱정부터 하기 마련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형 석유화학 공장이 주택 인근에 있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폐열 재활용 사업은 ‘석유화학 공장=기피 시설’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SK인천석유화학의 ESG 행보에 주민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폐열도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석유화학업계의 인식을 바꾼 것이 이 사업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한국경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