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ESG 공시기준 살펴보니…제조·건설업, 친환경 사옥보다 재해율 중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금융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이 미국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공시 기준서의 한글 번역본을 발간했다. SASB의 산업별 공시 기준은 현재 통용되는 ESG 공시 기준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 효과적인 지표로 평가 받는다. 시중은행은 IT 보안이 첫 번째 공시 항목이다. 증권사는 인력의 다양성을 비중있게 살핀다
[한경ESG] ESG NOW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와 관련해 시중은행은 정보기술(IT) 보안, 증권회사는 직원의 다양성과 윤리성 관련 항목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화학 업종은 공정 안전, 비상사태 대응, 유해 폐기물 관리 등이 주된 공시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ESG 공시의 국제표준이 수립되고, 한국은 이를 도입할 것이다. 유력한 국제표준안에 따르면, 기업은 지속가능 보고서뿐 아니라 재무제표와 비슷하게 ESG와 관련한 일정한 항목을 틀에 맞춰 공개해야 한다. 공시 대상 항목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위주로 구성할 예정이다.
중요한 항목만 숫자로 공시
금융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국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공시기준서의 한글 번역본을 발간했다. SASB가 제시한 77개 산업별 지속 가능성 공시기준 가운데 10개 업종의 기준을 공개했다. 백과사전식 지속가능 보고서와 달리 일정한 항목을 틀에 맞춰 공개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준비 중인 ESG 공시에도 SASB의 기준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시 의무화에 대비하는 기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번역본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SASB 기준서는 산업 특성에 따라 기업의 ESG 공시 항목을 차별화했다. 온실가스 등 유해물질 배출과 에너지 사용량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ESG 공시 항목은 철강 등 일부 제조업과 발전업 등에서만 중요하게 다뤄진다. 세제·휴지·건전지·면도기 등 생활용품 제조업은 제품의 소비자 안전, 포장재의 환경영향 등과 관련한 계량 지표를 공시해야 한다. 예컨대 ‘고위험성 화학물질을 사용해 만든 제품의 수익’이 공개 대상 항목이다. 전기 및 전자장비 산업 역시 공시에 소비자 안전 관련 리콜 건수, 리콜한 제품 총수량, 제품 안전 관련 소송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 총액 등을 다뤄야 한다. 제품 수명주기 관리에 대한 사항으로, 에너지 스타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으로 벌어들인 수익의 비율도 밝혀야 한다.
공시기준에서 말하는 지속 가능성은 환경·사회적 리스크 관리뿐 아니라 기업 재무성과 유지 가능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금융사의 경우 친환경 업무 차량 도입, 재생용지 사용 등은 부차적 요소다. 금융 리스크 관리와 투자 대상 건전성 등이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이다.
증권사는 인력의 다양성을 비중 있게 살핀다. 직원의 인종·성별 등 배경이 획일적이면 투자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이 SASB의 판단이다. 이 같은 기준이 국내에 도입되면 증권사의 여성 간부 비율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직원의 윤리도 중요시한다. 사기, 내부자거래, 시장조작, 업무상 배임 또는 기타 해당 금융업 법령과 관련한 법적 절차로 발생한 금전적 손실 총액을 적시해야 한다. 투자 관련 조사와 소비자의 고소, 민사소송 또는 기타 제재를 받은 기록이 있는 종업원 수와 비율도 공개 대상이다. 이 밖에 ESG 요소가 적용된 투자 및 대출 금액은 물론 인수, 자문, 증권화 거래의 수익을 공시해야 한다.
시중은행은 데이터 침해의 건수와 개인정보 관련 비율, 영향을 받은 계좌 보유자 수가 첫 번째 공시 항목이다. 데이터 침해에 대응해 이행된 시정조치에 대한 설명도 담아야 한다. 체계적 리스크 관리에 관한 사항도 설명해야 한다. 포용 금융 등 사회적 지속 가능 사업은 당연히 지표에 포함됐다. 과거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않았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고객에게 제공된 무료 소매 당좌 계좌 수와 소기업이나 지역개발을 돕기 위해 마련된 대출 프로그램의 규모와 연체율 등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
사회 공헌보다 산업재해율이 중요
제조·건설 업종은 공통적으로 종업원 보건 및 안전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산업재해율이 높으면 사회 공헌 사업을 많이 하거나 본사를 친환경 사옥으로 지어도 ESG 점수를 대폭 올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건설업 가운데 주택건설업 역시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이 ESG 공시의 중요 사항이다. 이 밖에 토지 이용의 생태학적 영향, 신규 개발의 지역사회 영향 등을 보고해야 한다. 화학산업도 종업원의 보건 및 안전을 비중 있게 다뤄야 하며,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관리, 유해 폐기물 발생량을 비롯해 화학물질 안전과 환경 책임주의 관련 사항이 ESG 평가의 관건이다.
정부와 회계업계 등은 기업들이 ESG 공시 의무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FRS 재단은 이달 초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에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하고, 내년에 ESG 공시기준 초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되는 ISSB의 공시기준은 SASB 공시를 뼈대로 환경에 특화된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시 태스크포스(TCFD)의 지침을 결합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SASB의 산업별 공시기준은 현재 통용되는 ESG 공시기준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 효과적인 지표로 평가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 가운데 SASB 기준을 활용하는 기업은 지난해 349개사에서 올해 506개사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표준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에서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공시한 기업 중 활용 기업이 지난해 16개사에서 올해 34개사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ESG 공시 의무 대상이며, 2030년에는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가 강제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구체적 공시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적 기준이 정해지면 과거 기업 회계 부문에서 IFRS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과 비슷하게 국제기준을 도입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중요한 항목만 숫자로 공시
금융위원회와 회계기준원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국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공시기준서의 한글 번역본을 발간했다. SASB가 제시한 77개 산업별 지속 가능성 공시기준 가운데 10개 업종의 기준을 공개했다. 백과사전식 지속가능 보고서와 달리 일정한 항목을 틀에 맞춰 공개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준비 중인 ESG 공시에도 SASB의 기준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시 의무화에 대비하는 기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번역본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SASB 기준서는 산업 특성에 따라 기업의 ESG 공시 항목을 차별화했다. 온실가스 등 유해물질 배출과 에너지 사용량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ESG 공시 항목은 철강 등 일부 제조업과 발전업 등에서만 중요하게 다뤄진다. 세제·휴지·건전지·면도기 등 생활용품 제조업은 제품의 소비자 안전, 포장재의 환경영향 등과 관련한 계량 지표를 공시해야 한다. 예컨대 ‘고위험성 화학물질을 사용해 만든 제품의 수익’이 공개 대상 항목이다. 전기 및 전자장비 산업 역시 공시에 소비자 안전 관련 리콜 건수, 리콜한 제품 총수량, 제품 안전 관련 소송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 총액 등을 다뤄야 한다. 제품 수명주기 관리에 대한 사항으로, 에너지 스타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으로 벌어들인 수익의 비율도 밝혀야 한다.
공시기준에서 말하는 지속 가능성은 환경·사회적 리스크 관리뿐 아니라 기업 재무성과 유지 가능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금융사의 경우 친환경 업무 차량 도입, 재생용지 사용 등은 부차적 요소다. 금융 리스크 관리와 투자 대상 건전성 등이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이다.
증권사는 인력의 다양성을 비중 있게 살핀다. 직원의 인종·성별 등 배경이 획일적이면 투자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이 SASB의 판단이다. 이 같은 기준이 국내에 도입되면 증권사의 여성 간부 비율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직원의 윤리도 중요시한다. 사기, 내부자거래, 시장조작, 업무상 배임 또는 기타 해당 금융업 법령과 관련한 법적 절차로 발생한 금전적 손실 총액을 적시해야 한다. 투자 관련 조사와 소비자의 고소, 민사소송 또는 기타 제재를 받은 기록이 있는 종업원 수와 비율도 공개 대상이다. 이 밖에 ESG 요소가 적용된 투자 및 대출 금액은 물론 인수, 자문, 증권화 거래의 수익을 공시해야 한다.
시중은행은 데이터 침해의 건수와 개인정보 관련 비율, 영향을 받은 계좌 보유자 수가 첫 번째 공시 항목이다. 데이터 침해에 대응해 이행된 시정조치에 대한 설명도 담아야 한다. 체계적 리스크 관리에 관한 사항도 설명해야 한다. 포용 금융 등 사회적 지속 가능 사업은 당연히 지표에 포함됐다. 과거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않았고,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고객에게 제공된 무료 소매 당좌 계좌 수와 소기업이나 지역개발을 돕기 위해 마련된 대출 프로그램의 규모와 연체율 등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
사회 공헌보다 산업재해율이 중요
제조·건설 업종은 공통적으로 종업원 보건 및 안전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산업재해율이 높으면 사회 공헌 사업을 많이 하거나 본사를 친환경 사옥으로 지어도 ESG 점수를 대폭 올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건설업 가운데 주택건설업 역시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이 ESG 공시의 중요 사항이다. 이 밖에 토지 이용의 생태학적 영향, 신규 개발의 지역사회 영향 등을 보고해야 한다. 화학산업도 종업원의 보건 및 안전을 비중 있게 다뤄야 하며,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관리, 유해 폐기물 발생량을 비롯해 화학물질 안전과 환경 책임주의 관련 사항이 ESG 평가의 관건이다.
정부와 회계업계 등은 기업들이 ESG 공시 의무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FRS 재단은 이달 초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에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하고, 내년에 ESG 공시기준 초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되는 ISSB의 공시기준은 SASB 공시를 뼈대로 환경에 특화된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시 태스크포스(TCFD)의 지침을 결합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SASB의 산업별 공시기준은 현재 통용되는 ESG 공시기준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 효과적인 지표로 평가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 가운데 SASB 기준을 활용하는 기업은 지난해 349개사에서 올해 506개사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표준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에서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공시한 기업 중 활용 기업이 지난해 16개사에서 올해 34개사로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ESG 공시 의무 대상이며, 2030년에는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가 강제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구체적 공시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적 기준이 정해지면 과거 기업 회계 부문에서 IFRS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과 비슷하게 국제기준을 도입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