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법③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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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투자에는 법적인 한계가 있다. 예로, 2019년 5월에 선고한 강원랜드 판결은 대법원이 회사의 공익 목적을 위한 기부행위에 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12년 7월, 강원랜드이사회는 주주인 태백시의 요청에 따라 경영난을 겪던 태백관광개발공사에 150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강원랜드는 폐광 지역의 경제 진흥을 위해 설립되었고, 순자산만 수조원에 달하는 우량한 회사였기에 이 기부는 설립 목적에도 부합하고 재무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원랜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태백관광개발공사는 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감사원의 감사에서 기부행위가 문제시됐다. 결국 강원랜드는 2014년 당시 결정을 내린 이사들을 상대로 15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강원랜드의 기부행위가 공익에 기여할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기부 액수도 강원랜드의 재무 상태에 비추어 과다하지 않다는 점은 법원에서도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사들이 기부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보아 이사들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기부행위가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정도나 강원랜드에 주는 이익이 크지 않았고, 강원랜드 이사들이 결정 당시 이러한 점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ESG 논의에서는 회사가 얻은 이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보다 회사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예를 들어, 생산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면서 얻은 이익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ESG 경영이 아니다. 이보다는 환경단체에 기부하지 않더라도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업 모델을 변화시키는 것이 ESG 경영에 부합한다. 이처럼 기부행위 자체는 ESG 경영과는 큰 관계가 없지만, 강원랜드 판결은 회사가 이해관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결정을 하는데도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ESG 논의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바로 ESG 경영이나 투자 역시 회사나 금융기관의 이익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이다.
사진=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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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과 투자, 어디까지 허용되나

그렇다면 회사의 이사들과 금융기관, 연기금은 어떠한 범위 내에서 ESG 경영과 투자를 실행할 수 있을까? 같은 내용의 ESG 경영과 투자라 하더라도 회사의 이사나 금융기관 및 연기금에 적용되는 법률은 서로 다르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령상 의무 내용과 의무의 상대방이 다르고,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로 회사의 이사는 회사에 대해 위임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이사가 주주나 특정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ESG 경영 역시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특수목적법인이나 펀드로 활용되는 투자회사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회사에는 존속 기간이 없다. 따라서 경영 판단의 원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장기적 기업가치 증대를 위해 연구개발을 수행하거나 사업 모델을 변경하는 것도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 결정을 했다면 허용된다. 다만 ESG 경영의 특성상 장기적 관점에서의 예측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로 금융회사 의무의 내용은 다소 다르다. 금융회사가 자기 재산으로 대출이나 투자를 하는 경우 앞서 말한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 관련 기준이 적용된다. 금융회사의 이사에게 일반 회사의 이사보다 높은 수준의 선관주의 의무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판례는 금융회사 이사가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실제 금융회사 이사의 책임이 인정된 사례도 많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 집합투자업자처럼 타인 재산으로 ESG 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훨씬 엄격한 의무가 적용된다. 집합투자업자는 펀드 투자자에 대해 위임 관계에 있고, 자본시장법과 신탁법에 따라 투자자에 대해 선관주의 의무와 충실 의무를 부담한다. 회사의 이사가 주주 등 특정 이해관계자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과 달리 집합투자업자는 펀드 투자자의 이익, 그중에서도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펀드의 ESG 투자는 투자자들의 수익률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집합투자업자는 펀드의 존속 기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펀드의 존속 기간이 지난 후에야 수익률 증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장기적 사항에 대해 ESG 요소를 고려해 주주 관여를 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선관주의 의무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 어느 한 펀드의 수익률을 희생해 다른 펀드의 수익률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하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집합투자업자는 펀드별로 수익자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른바 ESG 펀드처럼 ESG 요소를 고려해 재산을 운용할 것을 사전에 명시하고 약속한 내용에 따라 재산을 운용하는 경우에는 ESG 투자로 의무 위반이 문제될 여지는 적다. 펀드의 투자자들이 사전에 이를 양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ESG 투자전략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이를 상세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기금의 장기적 투자 시계

셋째로 국민연금기금과 같은 연기금에는 상법·자본시장법·신탁법에 따른 선관주의 의무가 적용되지 않고, 국민연금법 등 개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운용상 의무를 부담한다. 연기금은 존속 기간의 제한도 없고 펀드별 수익률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넓은 재량과 장기의 투자 시계(time horizon)를 갖고 ESG 투자를 할 수 있다. 적극적인 넷제로 전환을 통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 회사의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그 결과 다른 여러 회사들의 장기 실적이 개선된다면 이를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형 연기금들은 분산투자를 통해 개별 기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예컨대 국민연금기금이5%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2019년 말 기준 312개사에 이른다. 이러한 유니버설 투자자(universal investor)로서는 개별 기업의 성과 개선보다는 기후변화 같은 체계적 리스크(systematic risk)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외 연기금이 여러 ESG 문제 중에서도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인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ESG 경영과 투자는 회사의 이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주체별로 법률상 허용 범위가 다르다. 기업이 ESG 경영이나 투자를 진행할 때 이러한 점을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다. 향후 ESG 관련 법 제도 설계나 연기금의 ESG 투자 정책 수립,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등에서도 이러한 법률적 제약 사항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