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반도체 수요 버팀목 된 ‘저전력 반도체’
반도체 수요 버팀목 된 ‘저전력 반도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ESG 경영을 위해 저전력 반도체를 꾸준히 구매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도 이 같은 관측을 근거로 반도체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 우려가 과도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용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다.

늘어나는 데이터에 전력량 급증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50TWh로 전체 전력 생산량의 약 1%에 달한다. 지난해 사용량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도 함께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시설이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보관하는 서버용 PC를 가동하고 PC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데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은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PC가 자동으로 생성하는 데이터가 급증하는 영향이다.

시장조사기관 IDC IGIS에 따르면, 인류가 2018년까지 축적한 디지털 데이터는 33ZB였지만 4년 뒤인 2025년에는 한 해에 새로 생성되는 데이터만 175ZB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용 PC의 저장 용량과 처리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데이터센터 규모를 4년 내로 5배가량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1ZB는 1조1000억GB다. HD급 고화질 영화(5GB) 2000억 편 이상에 해당한다.

구글, 아마존, 메타(옛 페이스북)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 조기 달성을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면서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원자력 등 일반적 발전 방식보다 비용이 50% 이상 비싸다. 빅테크 업체들이 전력 소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저전력 반도체를 집중적으로 구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메모리반도체만 교체해도 데이터센터 유지 비용이 확 내려간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사 뉴스룸을 통해 저전력 메모리반도체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공개했다. 2020년 출하된 데이터센터용 하드디스크(HDD)를 낸드플래시로 만든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로 바꾸고 서버용 D램을 새로운 표준인 DDR5 제품으로 교체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이때 미국 뉴욕주 거주자들이 4개월간 쓸 수 있는 연간 7TWh의 전력을 아낄 수 있다.

불붙은 저전력 반도체 시장 쟁탈전

현대차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규모를 1732억 달러로 예측했다.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의 고성능·친환경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1603억 달러)보다 시장이 8%가량 성장한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하반기 D램 현물 가격이 급락하면서 제기된 메모리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는 지나치다는 것이 현대차증권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업체의 중장기 시장 전망도 이와 비슷하다. 일시적 부침은 있겠지만, 데이터센터용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전력 제품으로 데이터센터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미 서버 시장의 올해 성장률이 13~14%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올해 실적을 좌우할 저전력 제품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 기술력을 앞세워 고객사에 'ESG 도우미' 이미지를 굳건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1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CES 2022에서 데이터 처리 속도를 2배가량 개선한 차세대 서버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를 소개했다. 신제품은 탄소저감 효과가 상당하다. 전력효율이 이전 모델(PM1733) 대비 약 30% 향상됐다. 이 제품은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HBM3 D램에 기대를 걸고 있다. D램 칩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상층과 하층 칩을 연결하는 TSV 기술을 활용한 제품으로 기존 D램 패키지보다 전력 소모량이 절반 정도 줄어든다. 회사 측은 AI 등 데이터 연산이 많이 필요한 서버에 적합한 제품으로 시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DDR5 D램은 두 회사 모두 사활을 걸고 있는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업계 최소 선폭인 14나노미터(nm,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EUV(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한 차세대 DDR5 D램 양산을 시작했다. 직전 세대보다 생산성이 20% 개선됐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도 발 빠르게 DDR5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업계 최초로 24GB DDR5 제품 샘플을 출하했다. 지금까지 나온 제품 중 가장 용량이 큰 제품이다.

DDR5 D램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시점은 올 상반기다. 인텔이 DDR5 D램을 쓸 수 있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사파이어 래피즈’ 출시를 준비 중이다. DDR5 D램은 이전 표준인 DDR4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2배 빠르고 전력효율도 30%가량 높다.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들은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전력 소모량이 낮은 반도체를 구매할 것”이라며 “저전력이 반도체 구매 기준이 되면서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형석 한국경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