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럽 ESG 최전선
COP26에서 ISSB 출범을 발표하고 있는 에르키 리카넨 IFRS 재단 위원장.사진=COP26 유튜브 캡쳐
COP26에서 ISSB 출범을 발표하고 있는 에르키 리카넨 IFRS 재단 위원장.사진=COP26 유튜브 캡쳐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은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ISSB는 국제적 지속 가능성 공시 표준을 개발한다. 그간 여러 형태로 운영하던 투자자 중심의 지속 가능성 공시 관련 조직도 통합한다. 기후공시기준위원회(CDSB)와 가치보고재단(Value Reporting Foundation)은 2022년 6월까지 통합을 완료할 예정이다.

에르키 리카넨 IFRS재단 위원장은 “지속 가능성, 특히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문제다. 관련 기회와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기 위해 투자자는 재무제표와 호환되는 고품질의 투명하고, 전 세계적으로 비교 가능한 지속 가능성 공시를 요구한다”며 “ISSB를 설립하고 기후공시기준위원회의 혁신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치보고재단 등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ESG와 재무 본격 연계

그간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형태로 ESG 성과를 공개해왔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의 명확한 정의도, 어떤 데이터를 어떤 기준으로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2020년 9월, 저마다 기준으로 ESG 표준을 제시해온 이니셔티브인 CDSB, 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 SASB(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 CDP(탄소 정보공개 프로젝트)가 협업을 발표한 것도 일관적인 국제 표준을 세우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져 결국 ISSB가 탄생했다.

ISSB는 지속 가능성 공시 표준이 기존 IFRS 회계기준과 연결되고 호환될 수 있도록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와 긴밀하게 협력할 예정이다. 연결성이란, 예를 들어 지속 가능성 공시에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들어간다면 이에 관한 비용을 재무제표상 비용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속 가능성 공시 표준에는 관련 위험과 기회에 대한 정보, 단기적·중기적·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긴다. ISSB가 세운 지속 가능성 공시 표준은 세계 표준이 될 전망이다.

리카넨 위원장은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자본시장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데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단, 투자자가 오늘날 재무제표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정확도, 품질, 국제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지속 가능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실제로 적용되는 지침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ISSB의 목표는 경제 규모가 큰 나라뿐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포괄적 기본 표준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SSB는 기존 투자자 중심의 지속 가능성 표준 이니셔티브를 기반으로 공시 표준을 세우고, 1분기 내로 첫 번째 피드백을 위한 초안을 발표한다. 한국금융위원회 또한 ISSB에서 제정한 지속 가능성 기준을 바탕으로 한국 기준을 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다논 CEO가 초대 위원장

지난해 12월, IFRS재단은 ISSB 초대 위원장으로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의 최고경영자였던 에마뉘엘 파베르를 선임했다. 파베르의 임명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는 ESG 경영을 선도적으로 이끌다 행동주의 투자가들의 압박으로 2021년 3월에 사임했기 때문이다. 당시 “ESG만 강조하다 경영을 망쳤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 또한 ‘전통적 기준’에 따른 평가였다. 9개월 만에 평가는 백팔십도 달라졌다.

파베르는 2014년부터 CEO로 다논을 이끌며 ESG 경영을 정착시켰다. 식품 기업으로서 주주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직접 실현한 인물이다. 파베르는 2017년 파리경영대 졸업식 연설에서 "경제·세계화는 사회적 정의에 관한 것이며, 사회적 정의가 없는 경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새롭게 도입한 법적 지위인 ‘미션 기업’을 위한 법 개정에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기업의 목적이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목적과 일치하고, 이를 기업 정관에 명시한 기업을 의미한다. 그가 이끌던 다논은 프랑스의 첫 번째 미션 기업이 됐다.

하지만 파베르의 ESG 경영은 팬데믹으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경쟁사에 비해 주가가 하락한 것이 주요인이었다. 네슬레 주가는 5년 전 대비 37% 상승했지만, 다논은 12% 하락했다. 다논이 물, 유제품, 유아식, 식물성 식품을 주로 다루는 데 반해 네슬레의 경우 커피와 동물 사료 등 수익성이 높은 제품군으로 다른 부문의 손실을 메울 수 있었다. 파베르의 단호하고 적극적인 ESG 경영은 전통적 실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투자자들과 갈등을 낳았고, 결국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ISSB 위원장으로의 화려한 복귀 이후 파베르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IFRS재단은 “파베르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지속 가능성 정보의 중요성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의 관련성을 오랫동안 옹호해왔다”며 “다논은 투자자와 신용 제공자가 지속 가능성 요인이 단기·중기·장기로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혁신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다논에서 진행한 ESG 프로젝트 또한 높이 평가했다. 리카넨 IFRS재단 위원장은 “파베르의 글로벌 리더십 기술과 추진력”이 “기후 및 지속 가능성 정보에 대한 투자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표준을 개발하는 데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다.

ISSB 본부 유치한 독일

국제적 ESG 표준을 세울 ISSB의 본부 유치전도 치열했다. 스위스와 캐나다·일본·독일이 경쟁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최종 선정됐다. ISSB는 캐나다 몬트리올에도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샌프란시스코와 런던, 아시아 지역에도 사무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독일연방정부는 ISSB 본부를 프랑크푸르트에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독일 재무부 장관으로 지금은 독일 총리가 된 올라프 숄츠를 필두로 EU 위원회를 포함해 200여 개의 기업과 조직이 ISSB 본사 유치 캠페인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렉시트 이후 많은 기업이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했지만, 금융업계에서 독일은 손꼽을 만한 국가는 아니었다. 특히 2017년 유럽은행감독청(EBA) 소재지를 프랑스 파리에 내어준 이후에는 금융 경제의 주도권을 선점하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더 커졌다. 정치권의 지원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번 ISSB 유치로 독일은 향후 ESG 표준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독일과 프랑스,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ISSB가 내놓을 ESG 국제 표준을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베를린(독일)=이유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