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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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만 고집하다가는 고사한다.’

2010년대 유니클로 ‘히트텍’ 공습으로 어려움을 겪은 국내 속옷업체들이 여전히 활로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내복, 언더웨어 등 속옷 의존도가 높은 BYC와 쌍방울 등은 만성적 실적 부진에 직면해 있는 반면 코웰패션, 그리티 등은 애슬레저 레깅스 등의 신사업으로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명절 때 내의나 양말을 선물하는 고령자들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전통 속옷업체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트렌드 놓친 전통 강자들의 ‘고군분투’

"하루빨리 레깅스로 갈아입자"…속옷업체들이 속옷을 버린다
설립된 지 76년이 지난 BYC를 필두로 쌍방울·신영와코루·좋은사람들 등 4대 속옷업체는 팬티와 브래지어, 양말을 판매해 한때 견조한 매출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대 히트텍의 대대적 공세 이후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한때 발열 내의 등 기능성을 부각하면서 유니클로 충격에서 벗어나는 듯싶었지만 ‘편안한 속옷’으로 바뀐 시장의 트렌드를 또다시 놓치는 우를 범했다.

2012년 2170억원을 기록한 BYC 매출은 지난해 1600억원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주력 사업인 섬유산업 매출 비중은 73%로 줄고 대신 부동산 임대업 비중이 26%로 늘었다. 쌍방울도 2019년부터 매출이 1000억원 아래로 떨어져 좀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여성 보정 속옷 ‘비비안’은 ‘탈코르셋’ 트렌드를 놓치는 바람에 실적 악화에 직면했다. ‘보디가드’와 ‘YES’ 등으로 2000년대 유명했던 좋은사람들은 매출 감소와 대표의 횡령 문제로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려 있다.

이들 전통 속옷업체는 최근에야 레깅스와 같은 스포츠웨어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BYC는 오마이걸 아린을 내세워 타깃 연령층을 낮추고 20~30대를 위한 여성 사각팬티 등을 내놨다. 쌍방울도 지난해부터 레깅스 등 애슬레저 라인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올해에는 잠옷 등 라이프스타일 의류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BYC 관계자는 “2010년대까지 패션과 속옷업계 간 경계가 명확했지만 최근에는 레깅스와 잠옷 등 비속옷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속옷 벗고 애슬레저로 옮긴 업체 ‘훨훨’

코웰패션은 일찌감치 속옷에서 애슬레저로 시선을 돌렸다. 푸마·아디다스·캘빈클라인 등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속옷을 판매하는 회사로 출발했으나 최근에는 애슬레저·스트리트 의류 등 다양한 옷을 판매한다.

패션사업부 중 속옷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57%에서 작년 55.4%로 줄었다. 반면 레포츠 패션 부문 매출은 같은 기간 34%에서 36.3%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제품군 다각화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2020년 대비 46% 증가한 6258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더브라·저스트 마이 사이즈 등 편안한 속옷을 출시하면서 주목받은 그리티도 애슬레저 판매에 집중하면서 매출이 늘고 있다. 2020년 프랑스 애슬레저 브랜드 ‘위뜨’ 아시아 상표권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애슬레저부를 신설하고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속옷 브랜드의 사업 재편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명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은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은 뒤 흑인 모델과 빅사이즈 모델을 기용해 편안한 속옷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다시 론칭한 레깅스 브랜드는 두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