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131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131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골자인 '공공기관의 운영에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포일로부터 6개월 이후 법률로 정식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적용 대상은 한국전력 등 공기업 36곳, 국민연금공단 등 준정부기관 95곳 등 총 131개 공공기관이다. 노동이사는 3년이상 재직한 근로자가 맡을 수 있고, 임기는 2년이며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의 자세한 내용과 해외 입법례, 추후 전망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노동이사제는 무엇인가. 근로자추천이사제와 어떻게 다른가.

노동이사제란 근로자 또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공식적인 제도로서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대표들이 참여하여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경영진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로자이사제, 종업원이사제, 근로자추천이사제 등으로 다양하게 지칭된다. 근로자추천이사제는 노동이사제와 기본 개념은 비슷하지만, 노동이사제가 근로자 또는 노조 대표가 이사회에 직접 참가하는 것인데 비해, 근로자추천이사제는 근로자 또는 노조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이사회에 참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의 내용은 무엇인가.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이 주된 개정안의 내용을 차지한다. 개정안은 공기업·준정부기관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얻은 비상임이사 1명을 노동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이다. 노동자 대표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는 방식 중 개별기관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선택하면 된다. 노동이사제와 근로자 추천 이사제가 혼합된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이사회 구성원이 몇명이든 이중 1명은 반드시 노동자 대표여야 하는 셈이다. 노동이사 자격은 3년 이상 재직한 사람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임기는 2년으로 하되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노동조합원뿐만 아니라 비조합원,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해도 자격요건을 갖추면 노동이사가 될 수 있다.

어디부터 도입되나.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예정인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 36곳과 국민연금공단, 한국가스공사, 한국관광공사 등 준정부기관 95곳(통폐합된 한국광해관리공단 제외) 등을 합쳐 총 131곳이다.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일부 금융 공공기관도 여기에 포함된다. 준정부기관이란 공공기관 중 정원 50인 이상, 총수입액 30억원 이상, 자산 10억원이상이면서 자체 수입비율이 50% 미만인 곳을 말한다.
구분 노동이사제 도입 대상 공공기관 (131개)

공기업
(36개)

한국가스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석유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한국중부발전, 한국지역난방공사, 주식회사 강원랜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조폐공사, 그랜드코리아레저, 한국마사회, 한국가스기술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전력기술, 한전KDN, 한전KPS,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부동산원,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주식회사 에스알, 여수광양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해양환경공단,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준정부기관
(95개)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무역보험공사, 국민연금공단, 근로복지공단,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공무원연금공단, 한국재정정보원, 한국교자산관리육학술정보원, 한국장학재단, 우체국금융개발원,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우체국물류지원단,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연구재단,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정보화진흥원, 재단법인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한국국제협력단, 국제방송교류재단, 한국콘텐츠진흥원, 아시아문화원, 한국관광공사,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축산물품질평가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전력거래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사회보장정보원,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육진흥원,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한국환경공단,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건강가정진흥원,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국가철도공단,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국토안전관리원 한국국토정보공사, 한국교통안전공단, 재단법인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창업진흥원, 서민금융진흥원, 한국소비자원, 시청자미디어재단, 독립기념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 도로교통공단, 한국소방산업기술원, 한국임업진흥원, 한국산림복지진흥원, 한국수목원관리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재단법인 한국특허전략개발원, 한국기상산업기술원

현재 우리나라의 도입 상황은.

국내에서는 2016년 9월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도입했다. 서울시가 투자 또는 출연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서울시 사례를 참고해 지자체들이 도입했다. 광역 지자체로는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전, 울산, 경기, 충남, 전남, 경남, 기초 지자체로는 수원, 부천, 안산, 이천 등 14곳이 조례를 개정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일각에서는 수출입은행이 올해 노동이사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수출입은행은 근로자 '추천' 이사제에 가깝다는 반론이 있다.

민간 확산 가능성은. 민간 확산이 된다면 어디부터 될까.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지난 2020년 11월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된 사안이다. 문 정부는 2017년부터 노동이사제의 민간 기업 확산을 모토로 걸어온 바 있다. 공공기관 도입 이후 큰 문제가 없다면 민간 확산 압박은 다음 수순으로 보인다. 민간 도입 연착륙을 위해선 국가가 지분을 상당히 보유한 금융권이 다음 순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럽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나라는 많나.

원조 격인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 등 10여개국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모두 노동이사제가 의무화 돼 있다. 스페인, 그리스 등 6개국은 국가나 지방공기업에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개별 기업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나라도 10여개 국이다. 영국이나 이탈리아, 벨기에 등이 해당된다.

먼저 도입한 해외에서는 노동이사제에 대한 평가가 어떤가.

노동이사제의 원조인 독일을 외면하고는 노동이사제를 논하기 어렵다. 독일도 정착한지 수십년이 됐지만 재계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있다. 노조의 경영개입을 싫어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독일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꺼리게 돼 대기업들이 독일을 벗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독일의 경총, 전경련 격인 독일산업총연맹과 독일경영자총협회 등 산업계도 지속적으로 노동이사제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다수의 기업들이 공동결정제도 때문에 주가나 수익 하락을 경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의 노동이사제와 우리는 어떻게 다른가.

독일은 기업 이사회가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분리돼 있다.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에만 들어가 있으며 회계 부정 등 경영상 결정 사항에 대해 견제나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는 단일이사회 형태를 띄고 있다. 즉 노동이사가 일반적인 사외이사들처럼 실질적인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유럽에서도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는 경영이사회에 노동이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동이사제가 불러올 수 있는 역효과는 뭐가 있을까.

독일의 재계 단체인 독일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대표의 참여가 의사결정과정을 더디게 만든다"고 대답한 의견이 48.8%에 달했다고 한다. 가속화된다는 의견은 11.3%에 그쳤다. 아무래도 노동이사들이 결정과정에 참여하면 투명성은 제고될 수 있겠지만 의사 결정 속도가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생각하면 이런 단점은 더 부각될 수 있다. 노동계에서는 한석뿐인 노동이사자 의사결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노조와 연결된 경영진 일원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표결을 밀어 붙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은 폭스바겐 공장 해외이전이나 하르츠 개혁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에 노사정이 합의하는 등 협력적 노사관계가 배경에 있었음에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 도입시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는 예측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세계경제포럼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노사협력 부분이 141개 국 중 130위에 그친 바 있다.

노동이사의 경영인(이사)으로서의 의식이나 전문 지식 부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노동이사가 전문적인 경영인인 이사의 역할을 하면 가장 좋겠지만, 노조의 이익을 반영하는 대변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이사제의 성패는 노조와 노동이사의 객관적인 분리가 가능한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조나 근로자들의 지지를 받는 선임조합원이 노동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이런 분리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노사 교섭시 노조 내부 정치적 상황이 회사와의 협상 과정에서 큰 변수로 작용하는 점에 비춰보면 이런 현상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문적 지식이 다소 부족한 노동이사에 대한 기본적인 회계 교육 등을 실시하고 설명하는 것도 기업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계의 반응은.

중소기업중앙회는 11일 입장문을 통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법안이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사회적 합의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노동이사제 도입은 이사회를 노사 갈등의 장으로 변질시켜, 오히려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같은 날 입장문을 "노동조합원과 경영진의 일원인 이사의 신분은 이해충돌 관계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노동이사 임기 중에는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민간기업에 도입될 경우 우리 시장경제에 큰 충격과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향후 민간기업 확대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반응은.

법안 통과를 주도한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법 통과 직후 "그동안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소수 경영진들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경영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노동이사제 도입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됨에 따라 공공기관의 참여적 노사관계 구축과 공공기관 거버넌스 변화 등 다양한 긍정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를 가장 염원했던 한국노총도 “노동이사제는 우리 사회가 노사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데 꼭 필요한 제도”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곽용희/정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