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000개 기업 도전…‘비콥 인증’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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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콥 인증을 받은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미국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신발업체 올버즈,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 안경업체 와비파커 등이 여기 해당한다.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앞다퉈 비콥 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파타고니아, 유니레버, 더바디샵, 다논, 일리까페. 이들의 공통점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모범 사례로 꼽히며 모두 비콥(B Corp) 인증을 받은 기업이라는 것이다. 언론사 중에서는 영국 가디언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 3000개 기업이 인증 신청서를 제출했고, 이 중 1200여 개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올 초 기준으로 세계 77개국에서 4500개가 넘는 기업이 비콥 인증을 획득했다. 비콥 인증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는 걸까?
비콥을 이해하려면 먼저 ‘B’ 즉 베네핏(benefit)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베네핏은 그동안 수익과 이윤(profit) 위주의 기업과 달리 사회에 미치는 간접적 부분까지 포함한 총체적 혜택(benefit)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기업 모델이다. 즉 비콥 인증은 프로핏에만 몰두하지 않고 베네핏에 충실한 기업, 회사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를 두루 고려하는 기업이라는 증표 역할을 한다.
기업평가의 새 기준, BIA
비콥 인증은 2006년 스탠퍼드대 출신 창업자 3명이 만든 비영리기업 비랩(B-Lab)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기업 창업과 매각을 통해 주주가 바뀌면 기업의 미션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면서 좋은 기업이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사람, 지구, 이윤이라는 3가지 성과 기준(triple bottom line)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수량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좋은 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 이해관계자를 인정하는 ‘법적 체계’, 이러한 개념을 세상에 퍼뜨릴 ‘집단적 의사표명’ 등 3가지 토대를 세웠다.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비랩은 2007년 기업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인 비 임팩트 평가(B Impact Assessment, BIA)를 공개했다. BIA는 비즈니스모델을 지배구조, 기업 구성원, 지역사회, 환경, 고객이라는 5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평가한다. 이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에 대한 기여를 고려하는 것이다. 비랩은 이 평가를 통해 기업이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사회·환경적 성과와 책임성, 투명성을 측정하고 검증한다. 비콥 인증을 받으면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 비랩이 더 유명해진 건 록펠러재단의 투자를 받으면서다. ‘임팩트 투자’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록펠러재단은 2007년 BIA를 효과적인 임팩트 투자 지표로 선택하고 비랩에 자금을 공급했다.
현재 비랩 홈페이지에는 BIA의 기본 자가진단서와 평가 절차가 공개돼 있다. 비콥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이 BIA 자가진단 결과를 제출하면 사전 검토를 거쳐 인증 절차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심사관이 증빙 문서를 통해 실제로 답변을 검증한다. BIA 검사에서 2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으면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비콥 인증마크를 발급받으려면 소정의 연회비를 내야 한다.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은 매년 관련 보고서를 비랩에 공개해야 한다. 또한 3년마다 재인증 평가가 이루어진다.
최근 미국에서는 비콥 인증을 받은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신발업체 올버즈,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 안경업체 와비파커 등이 대표적 사례다. 영국에서도 지난해 말 킨앤카르타가 비콥 기업 중 처음으로 상장에 성공했다.
최근 비콥 인증 기업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동참하는 ‘넷제로2030’, 뷰티 기업의 연합인 ‘비콥뷰티연합’ 등의 이니셔티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콥 인증은 스타트업 등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클로에, 벨레다, 일리까페 등이 최근 비콥 인증을 받았다. 비랩은 비콥 인증을 받은 매출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의 기업은 ‘비무브먼트빌더스’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하도록 권고한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제시하고 확산하기 위해서다. 베네핏 코퍼레이션 개념 창안
한국에선 2019년 비랩코리아가 설립됐다. 국가별 지역 파트너 개념이다. 비랩과 협력해 국내 기업에 조언과 가이드를 제공한다. 비콥 인증은 비랩 글로벌 산하의 독립적 조직인 인증팀이 담당하며, 지역 파트너들은 인증에 참여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트리플래닛, 아이오니아, 캄포스, 닷, 모아드림, 텔라 등 줄 스타트업들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정은성 비랩코리아 이사장은 “국내 대기업 중 비콥 인증을 받은 경우는 아직 없지만 많은 곳에서 문의가 들어온다”며 “사규나 정관 개정 등 대기업이 인증을 받기에는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비콥 인증을 받으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나 투자,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콥 인증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베네핏 코퍼레이션’ 개념이다. 주주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 등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상업상 영리기업의 지위를 보장하는 형태다. 2010년 메릴랜드를 시작으로 현재 미국에서는 뉴욕·캘리포니아·델라웨어 등 40개 주가 ‘베네핏 코퍼레이션법’을 통해 이를 법제화했다. 미국 외에도 이탈리아·콜롬비아·캐나다·프랑스 등이 베네핏 코퍼레이션을 법제화했지만, 아직 아시아에서는 참여 국가가 없다.
문성후 ESG학회 부회장(뉴욕주 변호사)은 “베네핏 코퍼레이션은 ‘공익(public benefit)이 회사의 목적이기에 경영진이 회사의 공익 목적 달성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최선의 경영 활동으로 인정받고, 경영진도 배임의 부담 없이 회사의 공익 목적을 추진할 수 있다”며 “한국도 이를 법제화해 공익 목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영리법인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네핏 코퍼레이션의 법제화를 연구한 손연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원도 “국내에서도 기업의 사회적가치 창출과 지속 가능성 도모를 위해 비콥 인증의 확산뿐 아니라 ‘베네핏 코퍼레이션 모델법’ 등 제도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비콥을 이해하려면 먼저 ‘B’ 즉 베네핏(benefit)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베네핏은 그동안 수익과 이윤(profit) 위주의 기업과 달리 사회에 미치는 간접적 부분까지 포함한 총체적 혜택(benefit)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기업 모델이다. 즉 비콥 인증은 프로핏에만 몰두하지 않고 베네핏에 충실한 기업, 회사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를 두루 고려하는 기업이라는 증표 역할을 한다.
기업평가의 새 기준, BIA
비콥 인증은 2006년 스탠퍼드대 출신 창업자 3명이 만든 비영리기업 비랩(B-Lab)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기업 창업과 매각을 통해 주주가 바뀌면 기업의 미션이 바뀌는 것을 경험하면서 좋은 기업이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사람, 지구, 이윤이라는 3가지 성과 기준(triple bottom line)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수량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좋은 기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 이해관계자를 인정하는 ‘법적 체계’, 이러한 개념을 세상에 퍼뜨릴 ‘집단적 의사표명’ 등 3가지 토대를 세웠다.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비랩은 2007년 기업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인 비 임팩트 평가(B Impact Assessment, BIA)를 공개했다. BIA는 비즈니스모델을 지배구조, 기업 구성원, 지역사회, 환경, 고객이라는 5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평가한다. 이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에 대한 기여를 고려하는 것이다. 비랩은 이 평가를 통해 기업이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사회·환경적 성과와 책임성, 투명성을 측정하고 검증한다. 비콥 인증을 받으면 환경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 비랩이 더 유명해진 건 록펠러재단의 투자를 받으면서다. ‘임팩트 투자’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록펠러재단은 2007년 BIA를 효과적인 임팩트 투자 지표로 선택하고 비랩에 자금을 공급했다.
현재 비랩 홈페이지에는 BIA의 기본 자가진단서와 평가 절차가 공개돼 있다. 비콥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이 BIA 자가진단 결과를 제출하면 사전 검토를 거쳐 인증 절차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심사관이 증빙 문서를 통해 실제로 답변을 검증한다. BIA 검사에서 2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으면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비콥 인증마크를 발급받으려면 소정의 연회비를 내야 한다.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은 매년 관련 보고서를 비랩에 공개해야 한다. 또한 3년마다 재인증 평가가 이루어진다.
최근 미국에서는 비콥 인증을 받은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신발업체 올버즈,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 안경업체 와비파커 등이 대표적 사례다. 영국에서도 지난해 말 킨앤카르타가 비콥 기업 중 처음으로 상장에 성공했다.
최근 비콥 인증 기업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동참하는 ‘넷제로2030’, 뷰티 기업의 연합인 ‘비콥뷰티연합’ 등의 이니셔티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콥 인증은 스타트업 등 소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클로에, 벨레다, 일리까페 등이 최근 비콥 인증을 받았다. 비랩은 비콥 인증을 받은 매출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의 기업은 ‘비무브먼트빌더스’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하도록 권고한다.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제시하고 확산하기 위해서다. 베네핏 코퍼레이션 개념 창안
한국에선 2019년 비랩코리아가 설립됐다. 국가별 지역 파트너 개념이다. 비랩과 협력해 국내 기업에 조언과 가이드를 제공한다. 비콥 인증은 비랩 글로벌 산하의 독립적 조직인 인증팀이 담당하며, 지역 파트너들은 인증에 참여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트리플래닛, 아이오니아, 캄포스, 닷, 모아드림, 텔라 등 줄 스타트업들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정은성 비랩코리아 이사장은 “국내 대기업 중 비콥 인증을 받은 경우는 아직 없지만 많은 곳에서 문의가 들어온다”며 “사규나 정관 개정 등 대기업이 인증을 받기에는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비콥 인증을 받으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나 투자,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콥 인증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베네핏 코퍼레이션’ 개념이다. 주주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 등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상업상 영리기업의 지위를 보장하는 형태다. 2010년 메릴랜드를 시작으로 현재 미국에서는 뉴욕·캘리포니아·델라웨어 등 40개 주가 ‘베네핏 코퍼레이션법’을 통해 이를 법제화했다. 미국 외에도 이탈리아·콜롬비아·캐나다·프랑스 등이 베네핏 코퍼레이션을 법제화했지만, 아직 아시아에서는 참여 국가가 없다.
문성후 ESG학회 부회장(뉴욕주 변호사)은 “베네핏 코퍼레이션은 ‘공익(public benefit)이 회사의 목적이기에 경영진이 회사의 공익 목적 달성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최선의 경영 활동으로 인정받고, 경영진도 배임의 부담 없이 회사의 공익 목적을 추진할 수 있다”며 “한국도 이를 법제화해 공익 목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영리법인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네핏 코퍼레이션의 법제화를 연구한 손연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원도 “국내에서도 기업의 사회적가치 창출과 지속 가능성 도모를 위해 비콥 인증의 확산뿐 아니라 ‘베네핏 코퍼레이션 모델법’ 등 제도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