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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에서 화장품을 소분하는 모습. [사진=이미경 기자]
지난 9일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에서 화장품을 소분하는 모습. [사진=이미경 기자]
개인이 사용하던 용기를 화장품 매장에 가져가면 원하는 만큼 화장품을 소분해 구매할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내용물만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리필용기 종류가 제한되어 있고 판매하는 화장품 수도 적다는 것은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힌다.

'규제 샌드박스'…조제관리사 없는 화장품 리필 판매장 시범운영

지난 9일 기자는 '조제관리사 없는 화장품 리필 판매장'으로 지정된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 스테이션을 찾았다.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 모습. [사진=이미경 기자]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 모습. [사진=이미경 기자]
통상 리필 화장품을 판매하는 곳에는 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상주해야 한다. 조제관리사는 화장품을 담아갈 용기를 소독하고 샴푸나 바디워시 등을 소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리필용기에 화장품을 담는 행위는 조제관리사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소 번거롭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 샌드박스지원센터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를 통해 화장품 리필 매장에서 화장품 조제관리사 없이 매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니스프리와 알맹상점의 일부 매장이 2년간 화장품조제관리사 없이도 리필을 판매할 수 있는 시범사업대상으로 선정됐다. 대신 대한화장품협회가 진행하는 화장품 관리 교육·훈련을 받은 직원이 매장에 배치된다.

이달 7일부터 조제관리사가 없는 리필 스테이션 매장으로 운영된 이니스프리 건대점은 방문자가 직접 화장품을 소분할 수 있는 매장이다. 하지만 매장 직원은 소비자가 직접 화장품을 소분하기 보다는 매장 직원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화장품을 정량으로 담는 것이 어려워 숙련된 직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만족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본품보다 40% 싸게 판다"…화장품 '리필 매장' 가봤더니 [이미경의 인사이트]
리필스테이션에서 화장품을 소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소독된 용기를 저울에 올려 공병 무게를 잰 뒤 원하는 만큼 화장품을 담으면 된다. 이날 기자가 직원에게 요청한 제품은 샴푸 200mL로, 실제 용기에 담긴 샴푸량은 199mL였다. 매장 직원은 "200mL에 딱 맞추기는 쉽지 않아 199mL를 담았다. 대신 1의 자릿수는 '0'으로 절사해 처리하기 때문에 190mL가격에 199mL을 구매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구매한 샴푸 199mL은 190mL어치의 가격으로 계산돼 총 금액은 4180원이 나왔다. 동일 제품의 판매용 포장 용기에 담긴 샴푸 가격이 480mL에 1만8000원임을 고려하면 리필스테이션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약 41% 저렴한 것이다.

사용 가능 용기 제한적…뷰티업계, ESG 내세워 리필스테이션 '확대'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에 붙어있는 안내문. [사진=이미경 기자]
서울 광진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에 붙어있는 안내문. [사진=이미경 기자]
저렴한 가격에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아직 개선되어야 할 사항은 많다. 우선 화장품을 담을 수 있는 리필용기가 제한적이다. 용기의 입구가 화장품을 담을 때 사용하는 깔때기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여행을 떠날 때 화장품을 담아가는 소용량 용기는 입구가 작아 리필스테이션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이외에도 식품이나 세제·섬유유연제 등을 담았던 생활용품류 용기는 위생상의 이유로 사용이 어렵다. 펌핑 용기 역시 펌프의 소독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용이 제한된다.

아직 리필스테이션에서 제공하는 화장품의 종류가 매우 적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현재 이니스프리 건대점 리필스테이션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카밍 샴푸' '컴포팅 바디 클렌저' '임브레이싱 핸드워시' 3종이다. 리필스테이션 화장품이 클렌징 제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스킨·로션·에센스 등 스킨케어 제품 리필을 원했던 소비자라면 아직은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기엔 이르다. 실제로 규제 특례로 화장품조제관리사의 배치 의무가 면제된 매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리필 화장품의 종류는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액체비누 등 4종뿐이다.
아로마티카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운영하는 리필스테이션 모습. [사진=아로마티카 제공]
아로마티카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운영하는 리필스테이션 모습. [사진=아로마티카 제공]
업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플라스틱 배출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만큼 리필스테이션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환경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고 여러 기업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리필스테이션 역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용자가 많아지면 리필스테이션에서 판매하는 화장품의 가짓수도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뷰티·유통업계는 ESG의 일환으로 리필스테이션을 확대하며 플라스틱 배출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아로마티카와 알맹상점은 2020년 6월 리필스테이션을 오픈했고, 아모레퍼시픽은 같은해 10월 샴푸·바디워시 제품 등을 소분해 쓸 수 있는 아모레스토어 리필 매장을 경기 수원시 광교점에 오픈했다.

LG생활건강 역시 샴푸와 바디워시 제품의 내용물을 리필 용기에 나눠 판매하는 '빌려쓰는지구 리필 스테이션'을 지난해부터 이마트 죽전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탈모 샴푸 '닥터그루트' 등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중심으로 리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후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리필스테이션을 선보이는 등 관련 매장을 확대해나가는 추세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