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칼럼
‘SEE’가 ESG로 바뀐 이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원래 ‘SEE’였다. 2000년 초반 해리 허멜스를 위시한 학자들은 사회, 환경, 윤리(Social, Environmental, Ethical)인 ‘SEE’를 주창했다.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지고 환경을 보호하며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SEE다. 그런데 기업이 윤리의식을 저버리고 분식회계 등 부도덕한 경영을 일삼는 사례가 나타나자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집단 압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E)과 사회(S)는 두고 윤리만 지배구조로 못 박았다.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시스템과 제도로 확정해두어야 기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라도 ESG를 실행하리라고 본 것이다. 이후 G는 2가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기업 자체의 지배구조나 의사결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는 의미와 기업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 E와 S를 잘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2가지를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핵심 지배구조는 무엇일까. K-ESG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지배구조(G) 항목은 17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17개의 지배구조 항목은 매우 촘촘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바로 경영진의 ‘ESG 리더십’이다. 지배구조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필요하다. 기존 지배구조제도가 하드웨어라면, ESG 리더십은 소프트웨어다. SEE는 제도적 기반 없이 경영자나 기업의 윤리의식에 의존하던 요소라 사라졌지만, 지금의 ESG는 반대로 경영자나 기업의 리더십을 몰각한 채 제도와 운영에 천착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모범 규준에는 ‘이사회 리더십’이라는 항목이 있지만, 역시 경영자 개인보다는 이사회 자체의 역할과 책임에 집중되어 있다. 기업이 가장 잘 갖춰야 할 지배구조는 경영진의 ESG 리더십이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가 월스트리트 리더십으로 불리며 ESG 선두주자가 되었듯이 말이다.

ESG 리더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ESG 리더는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고 차후의 걱정거리를 없애기 위해 과감하게 혁신과 도전을 감행한다. ESG 리더의 대표로는 일론 머스크를 예로 들 수 있다. 타임에 따르면, 그는 ‘지구와 지구 바깥의 삶을 개조하고 있는’ 리더다. 일론 머스크는 언젠가 지구 외에 인간이 거주할 행성이 필요할 거라는 고민을 해왔다. 그래서 지구에 전기차를 보급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페이스 엑스로 민간인 로켓을 우주로 쏘아 올리며 지구 바깥을 개척하고 있다.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호프는 돈과 선(善)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라는 기업의 고심을 자사의 기술 우위로 해결했다. 그는 사회적 수익(doing good)과 경제적 이익(doing well)을 모두 만족시킨 기업가다. 명품 기업인 샤넬의 CEO 리나 나이르 역시 뛰어난 ESG 리더다. 인도 출신 소수계 여성으로서 콧대 높은 유럽 기업의 유리천장을 뚫으며 CEO 자리에 올라 ESG 리더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녀는 유니레버 재직 시절부터 다양성과 포용성, 형평성을 포함하는 인사 프로그램을 과감히 실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배워라(learn-it-all)”라고 외치며 회사를 학습 조직화하고 협력과 조화를 새로운 기업문화로 이식했다. 그 결과 회사는 성공적 클라우드 기업으로 변신했고, 기업가치는 급상승했다.

리더란 보완적 기술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완벽한 성과를 만들게 하는 사람이다. 그 완벽한 성과가 이제 기업의 ‘지속 가능함(sustainability)’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 가능 리더가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최고책임자(Chief Sustainability Officer, CSO)’를 양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SG 시대에는 기존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자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ESG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때다.

문성후 한국ESG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