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한 달 가량 지났다. 기업들은 그간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산업재해의 책임을 회피해왔던 현실을 바로잡고자 한 법률 도입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재해 예방을 강조한 법 제정 취지보다도 적용 대상이 될 기업은 어디일지,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두면 CEO가 면책될 수 있는지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다. 기업들은 이 법이 ‘예방’보다는 ‘처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처벌을 가볍게 여겼던 탓일까. 법 시행을 전후로 인명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광주 아이파크 공사장 붕괴(1월 11일), 삼표산업 채석장 토사 붕괴(1월 29일), 요진건설산업 업무시설 공사장 작업자 추락(2월 8일), 여천NCC 열교환기 폭발(2월 11일), 한솔페이퍼텍 트럭 전복(2월 11일), 대선 후보 유세차량 내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2월 16일) 등이 있었다.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원인이 밝혀질 것이고, 법원의 해석과 적용에 따라 처벌 대상과 수준이 정해질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8일 정책브리핑에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고의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명백히 방치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점도 강조했다. 고용부의 유권해석 대로라면 기업이 그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의무를 다 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를 잘 알고 있을 기업들의 준비 상황은 어떨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가 보인다. 대기업은 법 시행 이전부터 대형 로펌과 자체 안전보건 조직을 활용하여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월 25일 보도한 CHO 인사이트 회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38%가 중대재해법 준비가 안됐고, 그중 67%는 지켜야 할 의무를 모른다고 응답했다. 작년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이상 중소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실태조사’에서는 응답기업의 53.7%가 법 시행일까지 의무사항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특히 ‘의무사항 이해가 어렵다(40.2%)’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현 시점에서 기업이 택해야 할 전략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정공법이다. CEO의 처벌을 면하거나 줄이기 위해 CSO를 따로 두는 등의 꼼수는 실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사전조치에 시간과 돈을 쓰기보다는 법률상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대재해 발생 시 가장 필요한 것은 문서화된 안전보건경영 체계다. 중소기업의 경우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간한 ‘중소기업 안전관리 진단 매뉴얼’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겠다. 기존 법률 해설서 또는 가이드북과 달리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중심으로 법률 준수 현황을 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준비 자료 목록을 제시하고 있어 안전보건경영 체계 구축 실무에 유용할 것이다. 만약 어느 자료를 살펴봐도 문제 해결이 어렵다면 지체 없이 안전보건경영 분야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자. 그리고 실제 중대재해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과 법원의 판단에 주목하면서 기업의 대응 방향과 수준을 미세조정해 나가자.

기업 현장의 인식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중대재해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이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여 실행하고, 안전 문화를 확립하여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는 데 있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사고를 우연으로 치부하거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접어두고 조직 내·외부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그간의 노력을 증명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기업의 고민을 덜어줄 것이다.

정해방 국가경영연구원 이사장/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기획예산처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