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코뿔소’는 서민 금융 시장부터 그림자를 조금씩 드리우고 있다. 중저신용자를 위해 정부가 운영 중인 햇살론 등 서민 대출은 대위변제율이 1년 새 2.5배가량 뛰었다. 대출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정부가 대신 빚을 갚아주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22일 서민금융진흥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저신용자 전용 정부 대출은 대부분 전년 대비 대위변제율이 증가했다. 2021년 말 기준 햇살론15·17 대위변제율은 14%로, 전년(5.5%)보다 훌쩍 늘었다. 젊은 층을 위해 출시한 햇살론 유스의 대위변제율도 같은 기간 0.2%에서 2.9%로 증가했다. 다만 근로자햇살론의 대위변제율은 이 기간 10.5%에서 10.6%로 소폭 늘었다.

대위변제율은 전체 대출금 대비 대위변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고, 대위변제액은 각 기간 중 대출자 대신 국책 보증기관이 갚아준 대위변제 발생액에서 구상채권을 회수한 금액이다. 서민금융 상품의 대위변제율이 1년 새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진 빚을 갚지 못해 대출 상환을 포기하는 서민이 늘었다는 의미다.

서민들이 불법 사(私)금융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출시한 대표 서민 상품인 햇살론 15·17의 경우 총대출액은 2020년 9990억원에서 2021년 1조862억원으로 8% 늘었다. 이 기간 대위변제액은 769억원에서 2685억원으로 2.5배가량 급증했다. 햇살론을 취급하는 한 은행 관계자는 “햇살론을 받으려는 대출자의 상당수는 은행에서 일반 대출을 받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사람이 많다”며 “일부 모럴해저드도 있겠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전반적으로 형편이 더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위변제액이 급증하면서 정부가 채무자 대신 빚을 갚아준 누적 금액도 크게 불어나고 있다. 햇살론이 출시된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대위변제액은 근로자햇살론이 1조637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햇살론15·17이 3454억원, 햇살론유스가 164억원을 기록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책 서민대출 상품의 대위변제율은 서민 경기의 바로미터”라며 “그만큼 소액의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서민이 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