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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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 ‘계획된 적자’를 감수하겠다. 물류에 과감히 투자해 매년 2만 명 이상 고용하겠다.”

2015년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대대적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국내 유통3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e커머스업체의 ‘공격 선언’이었지만 대형마트들은 ‘쿠팡은 곧 망할 것’이라며 경계감도 갖지 않았다. 하지만 6년 만에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대규모 투자로 물류 경쟁력을 내재화한 쿠팡의 공세에 유통 3사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유통3사의 전체 고용 인력이 쿠팡에 뒤처지는 상황까지 맞았다.

쿠팡 직원은 전년보다 31% 늘어난 6만5138명(올 1월 말 국민연금 가입자 기준)인 반면 유통3사는 같은 기간 10%가량 인력이 줄었다. 양 유통채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일자리 줄이는 대형마트의 굴욕

유통 주도권 쥔 '온라인 강자' 쿠팡…'고용=오프라인' 통념 깼다
1993년 이마트 서울 창동점을 시작으로 국내 대형마트는 빠르게 확장됐다. 고용에서도 효자 노릇을 했다. 점포가 급증하면서 매장 운영에 필요한 인력 수요도 커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2000년대는 연평균 10개씩 출점하던 시기였고 점포 한 곳을 내면 500~1000명씩 고용했다”며 “고임금 직종은 아니지만 중저소득 가정에 큰 도움이 되는 일자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고용은 2010년대에도 이어졌다. 2011년 1만5089명(사업보고서 기준)이던 이마트의 근로자는 2017년 2만7608명으로 6년 만에 83% 증가했다. 유통업의 고용유발계수가 10.41로 제조업을 두 배가량 웃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형마트 업황은 2010년대 중반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201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작된 데 이어 출점 규제까지 나오며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8조5470억원에 달하던 롯데마트 매출은 지난해 5조7160억원에 그쳤다. 6년 동안 33.1% 쪼그라든 것이다. 2019년 125개이던 롯데마트 점포는 지난해 말 112개로 줄었다.

○쿠팡, 매출에서도 유통3사 추월 전망

대형마트가 움츠러든 틈을 타고 팽창한 것은 쿠팡 등 e커머스업체들이다. 2019년 7조1530억원이던 쿠팡 매출은 2020년 14조3100억원, 지난해 22조원(추정)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쿠팡 직원 6만5138명은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11만1073명)와 현대자동차(6만8187명)에 이은 고용 인원 3위로, 2위를 조만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교수)은 “전통적으로 온라인은 고용이 적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온라인 쇼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물류창고 운영, 상품 배송, 정보기술 등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쿠팡의 고용 규모는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쿠팡은 지난해 성장률을 유지할 경우 올해는 매출 30조원을 거뜬히 돌파하며 대형마트 3사 전체 매출(약 28조원)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쿠팡은 대형마트의 ‘아성’으로 여겨지던 신선식품 분야까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17일 1800억원을 들여 대전에 저온 풀필먼트센터를 착공하는 등 빠른 신선식품 유통을 위한 전국구 콜드체인 물류망을 구축하고 있다.

대형마트들도 반격에 나선다. 기존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을 강화하며 맞대응하는 형태다. 업계 1위 이마트가 지난해 3조5000억원을 들여 e커머스업계 3위 업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인수 당시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쿠팡을 넘겠다”며 쿠팡을 콕 집어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거래액이 전년보다 22% 증가(5조7174억원)한 자회사 쓱닷컴도 이마트의 반격 무기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점포 리뉴얼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