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법 ⑦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 공시 확신전략 토론회'에서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앞줄 왼쪽 네 번째),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왼쪽 다섯 번째) 등 주요 인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 공시 확신전략 토론회'에서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앞줄 왼쪽 네 번째),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왼쪽 다섯 번째) 등 주요 인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주요 위험 업종에 투자를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유망 종목을 골라 투자하는 포지티브 스크리닝, 비재무 정보도 투자 기준에 포함하는 ESG 통합(ESG Integration) 방식 등 다양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전략이 연기금과 기관투자자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기업의 ESG 성과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이러한 투자와 의결권 행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ESG 성과에 대한 적절한 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기업의 재무정보는 회계 기준을 바탕으로 작성되어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라는 수단을 통해 투자자에게 전달된다. 기업의 비재무정보에 대해서도 일정한 작성 기준과 적절한 정보의 전달 경로가 필요하고, 이를 정하는 것이 바로 ESG 정보공시제도다.

ESG 정보공시제도는 ESG 투자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한다. 재무정보 관련 공시제도와 비슷한 수준의 신뢰할 만한 ESG 공시제도가 구축되어야 ESG 투자금이 적절히 분배되고, ESG 정보를 활용한 주주 관여가 이뤄질 수 있다. 해외 주요 국가에서 ESG 정보가 과연 ‘중요 정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거나 여러 ESG 공시제도 방안을 발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EU에 비해 ESG 공시제도 구축에 다소 소극적이던 미국에서도 지난 3월 21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변화 관련 사항에 대한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정 초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 공시 확신전략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 공시 확신전략 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핵심 ESG 정보는 사업보고서에 넣어야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ESG 공시제도의 수립과 내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는 2025년까지 ESG 자율공시를 활성화하고, 2025년에는 일정 규모 이상 상장회사에, 2030년부터는 전체 상장회사에 대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한 ESG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거래소도 이러한 계획에 따라 같은 달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를 발표해 상장회사들이 공개할 주요 항목을 제시했다.

하지만 기업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작성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고, 자본시장법에 따른 사업보고서나 주요 사항 보고서가 아닌 거래소 규정에 따른 자율공시에 불과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전달 경로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EU나 미국의 논의 수준에 비해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ESG 공시와 관련해 고려해야 할 6가지 제도 설계 문제를 제시해본다.

먼저 공시를 어느 범위 내에서 의무화할지의 문제다. 이는 기본적으로 ESG 공시로 인한 효용과 이로 인한 비용을 비교해 결정할 문제다. ESG 안에서도 워낙 다양한 내용과 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이에 대한 투자자의 선호도가 다르기에 ESG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게 하는 것은 효용에 비해 비용이 지나치게 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광범위한 공시보다는 기관투자자 등이 원하는 중요한 정보만을 공시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SG 공시를 자율에 맡기는 경우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공시하고 불리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등 이른바 그린워싱(green washing)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경우 회사에 따라 적용하는 기준이나 형식이 달라 회사 간 비교가능성이 낮다는 문제점이 있다. ESG 공시 여부를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경우에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정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ESG 공시를 자본시장법에 따른 사업보고서에 포함할지, 아니면 거래소 규정에 따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진행할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사업보고서의 내용이 허위인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은 물론 형사책임도 문제될 수 있다. 반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내용이 허위인 경우에는 거래소 규정에 따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등의 불이익을 받을 뿐이다. 따라서 핵심 ESG 정보는 사업보고서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 미세먼지, 산업재해처럼 여러 ESG 요소 중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문제부터 사업보고서에 현황과 함께 회사의 감축 목표 및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포함하게 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겠다.

ESG 정보는 ‘중요 정보’에 해당하나

국제적으로 공시와 관련해 여러 기준이 존재하고, 관련 논의가 발전함에 따라 ESG 전반에 대해서는 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GRI),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SASB) 등 기준이, 기후변화 부문에서는 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가 활용되어왔다. 근래 들어서는 국제회계기준원(IASB)을 중심으로 여러 공시기준을 통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기준과 이에 따른 공시는 국내외 투자자의 투자 판단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관련 공시 기준 역시 국제적 기준과 정합성을 갖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준 통합 현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하다면 우리나라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ESG 공시 역량을 갖춘 대기업의 경우에는 활발한 ESG 정보공개를 통해 ESG 관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ESG 정보 부재로 이러한 투자 기회를 얻기 힘들 수 있다. ESG 평가도 ESG 관련 자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ESG 공시로 인한 기업 간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설계 시 유의가 필요하다. 불필요하게 많거나 획일적 기준에 따라 ESG 정보를 공개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ESG 정보의 중대성(materiality) 문제다. ESG 정보가 중요 정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ESG 정보가 회사의 주식가치 등 재무적 요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상 중요 정보가 아니라는 견해, 재무적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지와 관계없이 투자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라면 중요 정보에 해당하는 견해가 존재한다. 나아가 EU에서는 이른바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기준 즉 재무적으로 중요한 정보와 환경, 사회 측면에서 중요한 정보가 모두 중요 정보에 해당한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ESG 정보가 중요 정보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자본시장법상 미공개중요정보이용행위에 해당하는지, 증권신고서 등에 중요 사항에 대한 허위 기재 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는 물론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설명 의무의 대상이 되는지 같은 판단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도 ESG 정보의 중요 정보 해당 여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