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크 설비 가격도 폭락” >  정부가 마스크 의무 착용 조항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포화 상태인 마스크 업체의 줄폐업이 우려된다. 7일 수도권의 한 마스크 제조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조업하고 있다.  /민경진 기자
< “마스크 설비 가격도 폭락” > 정부가 마스크 의무 착용 조항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포화 상태인 마스크 업체의 줄폐업이 우려된다. 7일 수도권의 한 마스크 제조업체에서 근로자들이 조업하고 있다. /민경진 기자
마스크 제조업계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공급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정부가 야외 마스크 착용 등 현행 마스크 착용 의무조항을 단계적으로 해제할 예정이어서 수요마저 급감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전보다 열 배 이상 몸집이 커진 마스크업계에선 이미 수요처를 찾지 못한 물량이 헐값에 무더기로 쏟아진 지 오래다. 해외시장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제품이 장악한 터라 수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 화성에 있는 A업체는 마스크 하루 생산량이 2020년 3월 15만 개에서 최근 3만 개로 확 줄었다. 시중에 마스크 재고가 넘쳐 신규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엔 주말도 없이 24시간 공장을 돌리며 직원을 30명까지 늘렸지만, 요즘은 5명만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이 업체 사장은 “폐업하는 업체에서 원가 이하로 마스크를 시장에 풀어버려 가격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의무 착용까지 폐지되면 도산하는 마스크 업체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의약외품 마스크 주간 생산량은 2억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실제 수요 대비 생산량이 2배 이상 많다. 앞으로 마스크 의무 착용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되면 폐업하는 업체가 폭증하고 재고 떨이 물량도 크게 늘 전망이다.

마스크 시장이 2년 가까이 공급 과잉 상태를 지속하고, 급작스러운 붕괴를 앞두는 등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 탓이 크다. 마스크 물량이 달리던 코로나 사태 초기에 신규 업체의 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면서 생산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통상 8개월 이상 걸리던 허가 절차가 1~2주로 확 줄어든 데다 마스크 제조설비의 대당 가격이 1억~1억5000만원 정도에 불과해 사업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고 뛰어든 업체가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0년 1월 137개였던 의약외품 마스크 제조업체는 지난해 하반기 1600개까지 열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는 공식 인증업체 숫자일 뿐이다. ‘사각마스크’처럼 식약처 인증이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포함하면 마스크 제조업체는 2020년 한때 5000여 개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 ‘품귀 사태’를 빚었던 멜트블론(MB) 필터 생산업체 수도 지난 2년간 10여 곳에서 100여 개로 껑충 뛰었다.

이처럼 늘어난 업체들이 실수요 대비 2~3배 많은 물량을 내놓으면서 순식간에 수년 치 마스크 재고가 쌓였다. 충남에 있는 B업체의 마스크 생산량은 2020년 4월 대비 30%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B업체 관계자는 “5000여 개 업체 중 이미 40%는 폐업하거나 마스크 생산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때 2억~3억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던 마스크 제조설비도 지금은 중고 가격이 5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전방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마스크의 주요 부자재인 MB 필터 제조업체의 평균 공장 가동률은 10~20%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작년 3월께부터 MB 필터 생산량의 90%를 가져가던 마스크 업체들의 발길이 끊긴 영향이다. 한국부직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일부 유통업계를 제외한 국내 마스크 공급망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작동을 거의 멈췄다”고 털어놨다.

마스크 의무 착용 조항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 마스크 재고가 더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내수 시장에서 희망을 잃은 일부 마스크 업체는 해외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국산 동급 제품 대비 가격이 3분의 1 이하로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이미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국내 마스크(HS 부호 630790) 수출은 2020년 7억166만달러(약 8518억원)에서 지난해 2억9542만달러(약 3602억원)로 크게 줄었다.

‘뒷북’ 수출 규제 탓에 국내 마스크 산업이 빈사 상태에 내몰렸다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 발생 직후 성급하게 도입한 마스크 수출 규제가 제조 기술이 뒤떨어진 중국의 마스크 산업이 급성장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업체 중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에 참여한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로 폐업하거나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