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선박속도제한장치 지원 나서
해양수산부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기존 운항선에 대한 IMO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외항선사의 엔진출력제한장치(EPL) 설치비용의 10%를 지원한다고 7일 발표했다. 지원은 척당 최대 1000만원까지 이뤄진다. 올해와 내년까지 2년에 걸쳐 진행되는 사업이다.내년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EEXI(현존선에너지효율지수), CII(탄소집약도)는 신규 건조 선박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 규제와 달리 이미 운항 중인 선박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탄소 감축 규제다.
EEXI에 따르면 선사들은 선박이 배출하는 탄소량을 2013년 이전에 건조된 선박 대비 20% 이상 줄여야 한다. CII는 탄소 배출 효율을 기준으로 선박을 A~E 등급으로 나눠 평가한다. 3년 연속 D등급을 맞거나, E등급을 한 번이라도 받는 경우 시정 조치를 마련해 IMO의 승인을 받아야만 정상 운항이 가능해진다.
이 기준은 2023년 이후 매년 2%씩 강화된다. 기준을 단계적으로 높여 선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40%, 2050년엔 70%까지 줄인다는 것이 IMO의 목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외항 선박 1084척 중 약 71%인 770여척이 아직 EEXI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진행한 조사에선 당시 전체 외항 선박의 85.5%인 844척이 EEXI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1년이 지났지만 특별히 나아긴 게 없는 셈이다.
마치 자동차의 ‘에코(Eco)’모드처럼 엔진 출력을 제한하는 EPL은 선사들엔 가장 쉽고 빠른 해법이다. EPL은 프로펠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장치를 부착하는 식의 에너지효율개선장치(ESD) 설치, 액화천연가스(LNG)이중연료추진선 확보에 비해 탄소 감축 효과도 적고 선박 속도 저하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척당 설치 비용이 1억~2억원 수준으로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수천억원이 드는 다른 대안에 비해 경제적이다. 설치 역시 하루 정도면 마무리돼 영업 차질도 줄일 수 있다. 해수부 조사에 따르면 99%이상의 선박이 EPL 장착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선속 저하로 해운 경쟁력 약화 우려
하지만 쉬운 대안인만큼 선속 저하 등 문제점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기존 외항선대의 80% 이상이 EPL을 장착함으로써 전체 선대 속도는 약 7% 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선박 속도가 줄어드는만큼 동일한 양의 화물을 같은 시일 내에 운송하기 위해선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하지만, 단기간에 선박 확보는 어려운 현실이다.해운업계 관계자는 "한국 뿐 아니라 모든 국가가 같은 문제에 봉착해있어 한국이 더 불리할 것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이미 이중연료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으로 대규모 선대를 구축한 글로벌 선사에 비해선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규제를 충족할 수 있지만 점차 강화되는 규제에 대응하긴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CII 기준은 2023년 이후 매년 2%씩 상향된다. 해수부 조사 결과 작년 기준 국내 외항선의 34%가 CII D~E등급의 선박들이었다. 당장은 속도 제한으로 규제를 맞출 수 있지만 2030년 탄소 감축 수준이 40%로 강화될 경우 이들 선박들은 경제성이 사라진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HMM이 2018년 이후 도입한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같은 신형 선박 역시 2030년 이후엔 규제 충족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들 선박은 최신의 온실가스 저감 장치를 갖췄지만 벙커C유를 연료로 활용하는 디젤 선박들이다. 머스크, MSC등 글로벌 선사가 이미 수 년전부터 대규모로 도입 중인 이중연료추진선에 비해선 뒤쳐진다.
이들 선박 모두 필요시 LNG이중연료추진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는 LNG레디 선박들이다. 하지만 실제 탑재시 최소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과 수개월에 걸친 개조 기간이 요구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2030년이면 CII 규제를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업계의 이야기도 나온다"며 "선사들 자체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있지만 뚜렷한 답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