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사진=AFP
인텔이 최근 1.8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 반도체 공정 개발을 수행할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인텔은 이 공장이 5nm 미만 공정에서 업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과거 7nm 공정 기술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수급부족) 사업을 철수했던 인텔이 이보다 더 어려운 1.8nm 공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인텔, 미국 오리건주에 모드3공장 열어

인텔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힐스보로에서 모드3 공장 오프닝 행사를 열었다. 모드3 공장은 인텔의 론러 에이커스 캠퍼스에 있는 D1X 공장을 증설한 것이다. 인텔은 최근 3년간 D1X 공장 내 모드3의 증설을 위해 약 30억 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이곳에서 2nm 이하 선단 공정 개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인텔의 이번 공장 증설은 TSMC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TSMC는 올해 3nm 반도체를 양산할 예정이다.

인텔은 이자리에서 론러 에이커스 캠퍼스를 ‘고든 무어 파크’로 개명한다고 밝혔다. 인텔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가 1965년 발표한 ‘무어의 법칙’을 지난 50년 이상 이끌어 온 해당 캠퍼스의 역사와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오리건주는 인텔 글로벌 반도체 연구개발의 심장"이라며 "반도체 산업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고든 무어의 유산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리건 캠퍼스에 그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인텔 기술력 의구심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여전히 인텔의 기술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인텔이 불과 4년 전인 2018년 7nm 공정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을 철수했기 때문이다. 7nm 공정을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곧바로 2nm 공정으로 뛰어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시각이다.

인텔은 이같은 업계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올해 초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이례적으로 인텔과의 계약 사실을 언론에 밝혔다. 2nm 공정 생산을 위해선 EUV 장비가 필수적인데 인텔과 ASML이 관련 장비 계약 사실을 밝히면서 2nm 반도체 생산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알린 셈이다.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한 파운드리 투자도 진행 중이다. 최근 54억달러(약 6조4500억원)에 이스라엘 파운드리 업체인 타워 반도체를 인수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타워는 45~250㎚ 공정으로 자동차용 무선주파수(RF), 센서 등과 전력관리반도체(PMIC), 이미지센서(CIS) 등을 만든다.

인텔의 투자계획 지속 가능할까

인텔은 올해 초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 반도체 투자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유럽에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을 위해 800억 유로(약 110조 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미국 애리조나와 오하이오에 앞서 공개한 400억 달러(50조 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및 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까지 포함하면 1년 새 무려 약 160조 원을 시설투자에 쏟아붓겠다고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인텔의 이같은 투자가 지속가능할 지 지켜보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기업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이상 임기가 있을 수밖에 없어서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인텔이 아무리 과거에 파운드리 사업을 했다해도 선단공정 기술력을 실제 선보인 적이 아직 없다"며 "반도체 사업은 10년을 투자해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인텔의 현재 투자가 수익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텔이 미국을 비롯해 각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각국 정부가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를 위해 각종 보조금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은 최근 반도체 지원법안인 '미국 경쟁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엔 미국 첨단산업 지원과 공급망 개선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반도체 관련 분야에 520억 달러(약 63조4000억 원)의 정부 투자 계획 등이 포함됐다.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반도체 공급난 해결을 위해 정부 지원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펫 겔싱어 인텔 CEO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 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TSMC가 미국 투자를 결정한 것은 그만큼 정부 지원을 기대했기 때문"이라며 "인텔 등이 삼성전자와 TSMC를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