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 중단 막으려 발전공기업 대금지급 한 차수 미루도록 손질
위기의 한전, 전력대금 지급도 늦춘다…관련 규칙 개정 추진
한국전력이 발전 공기업에 전력거래 대금을 늦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는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 와 소매로 판매하는 한전이 경영난으로 제때 돈을 주지 못해 전력거래가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14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거래소, 발전 공기업들은 최근 규칙개정실무협의회를 열어 '전력거래대금 결제일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개정안은 한전이 발전공기업에 전력거래 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울 경우 다음 차수로 지급을 한차례 미룰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현재 한전은 발전사에서 구매한 전력에 대해 9일 단위로 한 달에 네 차례에 걸쳐 대금을 납부하고 있다.

문제는 현행 규정상 한전이 대금 납부 기한을 넘기면 채무불이행으로 간주돼 바로 다음 날부터 전력거래가 정지된다는 점이다.

사실상 유일한 전력 구매자인 한전이 전력을 거래하지 못하면 발전공기업이 피해를 볼뿐 아니라 전력수급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실무협의회에서는 전력거래 대금 지급 연기를 허용할 경우 한전의 신용도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전력거래 정지에 따른 피해를 막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 우세해 결국 규칙 개정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은 오는 18일 열리는 거래소 규칙개정위원회와 이후 전기위원회 승인을 거쳐 확정되면 5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전력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전의 적자 폭이 커져 단기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또 전력거래가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하는 만큼 규칙 개정이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한전의 경영난은 가중되고 있다.

국제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주요 발전원료의 가격 급등으로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달 기준 ㎾h(킬로와트시)당 192.75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84.22원) 대비 128.9% 상승한 것으로 전력거래소가 문을 연 2001년 이래 3월 기준으로 최고가다.

지난 2월에는 SMP가 ㎾h당 197.32원으로 역대 가장 높았다.

여기에 정부가 전기요금의 핵심 요소인 연료비 조정단가를 2분기에 동결하기로 하면서 부담이 더욱 커졌다.

회사채를 통한 운영자금 확보도 쉽지 않다.

한전이 자금조달을 위해 올해 발행한 신규 회사채 규모는 11조9천400억원으로 지난해 한 해 동안 발행한 회사채 규모(10조4천30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문제는 회사채 발행을 늘릴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도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한전은 4년 만에 3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으나 목표금액인 2천억원을 한참 밑도는 1천300억원을 발행하는 데 그쳤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20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금 지급을 한 차수 미루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으로 전기요금을 연료가격 변화에 맞춰 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