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2.5% 경제성장률’과 ‘4.0%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다. 1998년 이후 2.5% 이하의 저성장과 4%대 고물가가 따로 나타난 적은 있지만 동시에 닥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닥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24년 만에 덮친 S의 공포…韓 경제, 저성장·고물가 '늪'에 빠졌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

IMF가 제시한 2.5% 성장률은 코로나19로 경제가 멈추다시피 한 2020년(-0.9%)을 제외하면 2012년(2.4%) 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과 코로나19 등의 여파에 따른 경기 둔화가 반영된 것이다.

물가가 4%대로 오르는 것은 2011년 이후 11년 만이다. 2013년 이후 한국의 물가 상승률은 0~1%대로 낮았지만 지난해 2.5%로 뛰었고, 올해는 전망치가 4.0%까지 높아졌다. 2%대 저성장과 4%대 고물가가 동시에 발생하는 건 1998년 -5.1%의 성장률과 7.5%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24년 만이다. 2.4%의 성장률을 기록한 2012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2.2%에 그쳤다. 물가 상승률이 4.0%로 치솟았던 2011년에는 3.7%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 입장에선 저성장과 고물가가 따로 나타날 때보다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IMF는 미국의 경우 올해 3.7%의 성장률과 7.7%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보다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 내렸고 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을 것으로 봤다. 독일의 성장률은 1.7%포인트 내린 2.1%, 프랑스는 0.6%포인트 하향한 2.9%로 내다봤다. 선진국은 올해 성장률 자체가 낮은 건 아니지만 기존 전망치에 비해선 성장세가 확연히 둔화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8.5%로 낮췄다.

IMF는 세계 경제의 86%를 차지하는 143개 국가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전쟁으로 인해 공급망 훼손과 인플레이션이 종전보다 심해졌다”며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등이 발생하면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은행도 이날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4.1%에서 3.2%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개발도상국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며 “이들 국가는 갑작스러운 에너지, 비료, 식량 가격 상승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높은 물가 상승이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을 잠식할 수 있으며 특히 개도국이 이런 충격파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50조원 추경 축소론’ 커져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와 물가 급등이 동시에 닥치면서 한국도 정책 대응을 찾기가 쉽지 않아졌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 둔화폭이 커지고 경기 회복을 위해 돈을 풀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서다. IMF는 회원국들에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이 요구되지만 취약계층 지원 축소는 신중해야 한다”며 “확대된 재정 지원은 축소하되, 코로나19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급망 훼손으로 인한 비용 증가는 제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는 50조원 추가경정예산과 관련해선 “50조원이라는 규모를 정해놓고 돈을 풀기보다는 실제 피해를 본 자영업자 등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며 “기존 예산을 줄이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