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만든 반도체 패키지 기판(FC-BGA).
삼성전기가 만든 반도체 패키지 기판(FC-BGA).
삼성전기가 미국 애플이 올해 출시할 차세대 맥북, 아이패드 등에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공급한다. 한국 업체로는 유일하다.

21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M2 프로세서'에 들어갈 반도체 패키지 기판(FC-BGA) 공급처로 삼성전기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올해 M2 프로세서를 탑재한 노트북(맥북), 태블릿PC(아이패드)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FC-BGA는 반도체 칩을 기판과 연결해주는 반도체용 기판이다. 정보처리 속도가 빨라 PC나 서버, 네트워크 등에 주로 사용된다. 반도체 기판 중 기술 난이도가 가장 높다. 그동안 일본 이비덴, 대만 유니마이크론 등 소수 업체가 주도했던 분야다. 삼성전기가 이 같은 ‘양강’ 구도를 뚫고 애플 M2 프로세서 주요 공급처로 선정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M2 프로세서는 애플이 2020년 선보인 기존 M1 프로세서보다 연산, 그래픽 성능, 전력 효율 등이 높다.

M2 프로세서는 애플 맥 시리즈 대부분에 투입될 전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요즘 최소 9종 이상의 맥 시리즈 신제품에 대한 자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연내 순차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맥 시리즈 판매량은 지난해 2890만대를 기록했다. 2020년보다 28.3% 증가한 수준이다.

삼성전기는 애플 공급을 중심으로 FC-BGA 사업을 본격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생산법인에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FC-BGA 생산시설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 21일엔 부산사업장 FC-BGA 공장 증축 및 생산설비 구축에 3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지난 21일 부산사업장 FC-BGA 공장 증축 및 생산설비 구축에 3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삼성전기는 지난 21일 부산사업장 FC-BGA 공장 증축 및 생산설비 구축에 3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삼성전기-애플 동맹 강화

맥북, 맥북프로, 아이맥, 아이패드, 맥미니, 맥프로, 맥스튜디오…. 미국 애플의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M2 프로세서’가 탑재될 주요 제품이다. 삼성전기가 M2 프로세서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패키지 기판(FC-BGA)을 공급하게 된 것은 그만큼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자업계에선 삼성전기가 M2 프로세서에 FC-BGA를 공급하면서 ‘애플 신제품 출시 후광효과’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애플은 올해 M2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한 제품군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2020년 선보인 ‘M1 프로세서’는 경쟁사인 인텔 프로세서와 비교했을 때 전력 효율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애플 맥 시리즈 판매 확대에 중요 역할을 한 것으로 꼽힌다. M2 프로세서는 M1 프로세서보다 주요 성능을 진화시킨 것이다. 관련 제품 판매 확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삼성전기가 지난해 12월부터 FC-BGA 사업과 관련해 베트남, 부산 등에 총 1조6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결정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기 주력사업 바뀐다

기판 사업은 삼성전기에서 ‘미미한 존재’였다. 그동안은 휴대전화, TV 필수 부품인 MLCC(적층세라믹콘덴서)가 주력 사업이었다. 삼성전기가 기판 사업을 키우기로 한 것은 반도체 고성능화로 반도체 패키지 기판 수요가 늘어나면서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10월 기판 중에서도 기술 장벽이 낮아 단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RF-PCB(경연성회로기판)’ 판매를 중단했다. 대신 고부가가치 제품인 FC-BGA에 집중하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해 M1 프로세서에 FC-BGA를 공급하면서 애플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FC-BGA 시장은 최근 수급 불균형이 일어날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디지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서버, PC 등에 고성능 반도체 기판을 찾는 흐름이 형성됐다.

그럼에도 수요에 비해 FC-BGA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제한적이다. 국내에선 삼성전기가 유일하고, 일본 이비덴, 신코덴키, 대만 유니마이크론, 난야 등 5곳뿐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FC-BGA는 미세회로 구현, 대면적화, 층수 확대 등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다”며 “후발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고성능화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언이다. 특히 5G, 인공지능(AI), 클라우드가 확대되면서 더 높은 성능의 반도체 패키지 기판에 대한 수요는 대폭 증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삼성전기가 지난해 12월, 지난 2월 총 1조6000억원을 투자한 FC-BGA 신규 생산설비는 내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서 공급 물량을 확보해 매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5700억원이었던 삼성전기 FC-BGA 매출이 2024년 1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선 M2 프로세서 공급을 계기로 삼성전기가 올해 처음 연간 매출 1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예상도 나온다.

○애플카에도…경쟁 치열

FC-BGA를 둘러싼 부품업계 경쟁은 심화될 전망이다. 향후 애플이 내놓을 자율주행차 ‘애플카’에도 FC-BGA의 쓰임새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의 핵심인 고속 정보처리를 구현하려면 FC-BGA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인 LG이노텍도 지난 2월 이사회에서 FC-BGA 생산시설 구축에 413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의했다. LG이노텍은 아직 FC-BGA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 분야 후발주자로, 지난해 말 FC-BGA 대응 조직을 신설했다.

LG이노텍은 2024년 4월까지 관련 생산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다. 추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증설 등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