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새 사라진 마을 164개…일본 경제부흥 허리 잘렸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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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흔들린다 (3)
성장 깎아먹는 '인구절벽'
지자체 주민 유치, 돈만 날려
2040년엔 인구 1억명 '간당'
잠재성장률 마이너스로 추락
IT인력 79만명 확보 시급한데
고령화로 간병에 노동력 분산
성장 깎아먹는 '인구절벽'
지자체 주민 유치, 돈만 날려
2040년엔 인구 1억명 '간당'
잠재성장률 마이너스로 추락
IT인력 79만명 확보 시급한데
고령화로 간병에 노동력 분산
지난달 말 방문한 오이타현 나카츠에무라 미야하라 부락의 첫인상은 일본의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게 없었다. 산 모퉁이의 작은 마을이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어 접근성도 나쁘지 않았다. 미야하라가 특별한 것은 인구가 단 1명인 마을이라는 점이다.
10여년 전 아랫집 주민이 고령으로 세상을 뜬 이후 올해로 87세인 니시 야스코 씨가 이 마을의 유일한 주민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병원 정기검진과 2주치 식료품 구입을 겸해 읍내에 갈 때를 제외하면 줄곧 마을에서 홀로 지낸다.
한류드라마를 시청하는 낙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텅빈 마을 공터까지 산책을 나간다. 그는 "아랫마을 큰 도로까지 나가봐야 빈집 뿐이라 만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니시 씨가 세상을 뜨면 미야하라 마을은 사라진다.
지금까지 일본의 기초자치단체들은 인구를 유지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이주정착금, 출산축하금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내걸고 이주자 유치에 안간힘을 썼다.
최근 들어서는 인구 유치를 포기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주변 지역과 주민을 뺏고 뺏기는 인구쟁탈전을 벌였을 뿐 대도시의 젊은 세대가 유입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구는 늘지 않고 재정만 파탄났다.
2017년 아이치현 신시로시 시장 선거는 인구 쟁탈전을 이어갈 지가 쟁점이 됐다. 2005년 5만2000명이었던 인구가 10년 만에 5000명 줄면서 대도시권인 아이치현에서 유일하게 '소멸 가능성이 있는 도시'에 지정됐다.
호즈미 료지 후보는 "인구 감소에 맞춰 각종 공공시설을 줄이는 대신 인구 쟁탈전에 투입하던 예산을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겠다"고 주장해 인구의 'V자 회복'을 공약으로 내선 상대 후보를 눌렀다. 2021년 11월 임기 만료로 퇴임할 때까지 호즈미 시장은 이 지역 20개 초등학교를 13개로 통합하는 등 인구구조의 변화에 맞게 신시로시를 개조했다.
미야하라 마을이 속한 나카츠에무라에서도 '마을을 품위있게 사라지게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1972년 이 지역의 유일한 산업이던 금광이 폐쇄된 후 7000명이 넘었던 나카츠에무라 인구는 600여명으로 줄었다.
각종 지원금 제도를 내걸고 이주민을 유치하려다 재정이 크게 악화했다. 인구쟁탈을 위해 소모전을 벌이느니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게 낫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주민들이 많은 이유다. 나카츠에마을만들기사무소를 조직해 장례식장을 마을 가까이 유치하고 사망수속 교육,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나카츠에무라 읍사무소 공무원 출신인 나가세 에이지 사무국장은 "체념이나 절망이 아니라 어차피 인구를 늘리는게 안된다면 품위있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구감소는 사회문제로 취급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와 직결되는 경제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구는 장기 디플레이션의 유일한 탈출구인 소비를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10여년에 걸친 무제한 재정확장·금융완화 정책이 먹히지 않는 것도 "인구 감소가 정책의 허리를 잘랐기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역대 정부도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2017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인구 감소를 "북한 문제와 함께 일본의 2대 국난"으로 지정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내각에서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성장전략회의 멤버였던 데이비드 앳킨슨 전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도 "일본이 직면한 최대 과제는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라고 말했다.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4%를 넘었던 1980년대 인구 증가의 플러스 효과가 0.6%포인트에 달했다. 2000년대들어 상황이 반전됐다. 인구 감소가 잠재성장률을 -0.3%포인트 끌어내리면서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대에 머물러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인구감소로 인해 2040년께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후생노동성은 작년 7월 "2025년까지 간병인력을 32만명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2040년이면 부족한 간병인력은 69만명으로 늘어난다.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일본에선 노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 이직’이 경제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간 10만명이 간병을 위해 사표를 던지고 있어 기업의 인재 유출이 심각해지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간병 이직으로 인한 일본 경제의 손실을 연간 6500억엔(약 6조2923억원)으로 추산했다. 2020년 10조7000억엔이었던 간병비용은 2040년 25조8000억엔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일본의 정보기술(IT) 인재가 최대 79만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구 감소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이 IT 인재를 제때 공급하느냐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과제로 평가된다.
가뜩이나 부족한 노동력이 고부가가치 업종 대신 대표적인 저임금 업종인 간병인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일본 정부의 고민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속도는 일본 정부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 2040년 일본은 고령자 1명을 생산연령 인구 1.4명이 부양하는 사회가 된다. 1970년 처음 1억명을 돌파한 일본 인구는 80년 만인 2050년이면 9000만명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인구 1억명 사수는 일본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평가된다. 일본의 모든 사회·경제적 구조가 인구 1억명 이상의 시장을 전제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인구가 1억명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빨리 출생률을 2.07명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일본 정부는 분석했다. 2020년 일본의 출생률은 1.34명으로 5년 연속 하락했다. 1975년 2명선이 무너진 후 45년째 1명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이타=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10여년 전 아랫집 주민이 고령으로 세상을 뜬 이후 올해로 87세인 니시 야스코 씨가 이 마을의 유일한 주민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병원 정기검진과 2주치 식료품 구입을 겸해 읍내에 갈 때를 제외하면 줄곧 마을에서 홀로 지낸다.
한류드라마를 시청하는 낙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텅빈 마을 공터까지 산책을 나간다. 그는 "아랫마을 큰 도로까지 나가봐야 빈집 뿐이라 만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니시 씨가 세상을 뜨면 미야하라 마을은 사라진다.
인구 유지 포기하는 지자체 속출
인구가 1명 뿐인 마을은 일본에서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5~2019년 4년 동안에만 주민이 0명이 되면서 소멸한 마을이 일본 전역에 164곳이다. 가까운 장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마을은 3622곳에 달한다. 시코쿠와 주고쿠(히로시마, 야마구치 등이 속한 지역) 지역의 경우 주민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인 마을이 40%를 넘는다.지금까지 일본의 기초자치단체들은 인구를 유지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이주정착금, 출산축하금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내걸고 이주자 유치에 안간힘을 썼다.
최근 들어서는 인구 유치를 포기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주변 지역과 주민을 뺏고 뺏기는 인구쟁탈전을 벌였을 뿐 대도시의 젊은 세대가 유입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구는 늘지 않고 재정만 파탄났다.
2017년 아이치현 신시로시 시장 선거는 인구 쟁탈전을 이어갈 지가 쟁점이 됐다. 2005년 5만2000명이었던 인구가 10년 만에 5000명 줄면서 대도시권인 아이치현에서 유일하게 '소멸 가능성이 있는 도시'에 지정됐다.
호즈미 료지 후보는 "인구 감소에 맞춰 각종 공공시설을 줄이는 대신 인구 쟁탈전에 투입하던 예산을 삶의 질을 높이는데 쓰겠다"고 주장해 인구의 'V자 회복'을 공약으로 내선 상대 후보를 눌렀다. 2021년 11월 임기 만료로 퇴임할 때까지 호즈미 시장은 이 지역 20개 초등학교를 13개로 통합하는 등 인구구조의 변화에 맞게 신시로시를 개조했다.
미야하라 마을이 속한 나카츠에무라에서도 '마을을 품위있게 사라지게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1972년 이 지역의 유일한 산업이던 금광이 폐쇄된 후 7000명이 넘었던 나카츠에무라 인구는 600여명으로 줄었다.
각종 지원금 제도를 내걸고 이주민을 유치하려다 재정이 크게 악화했다. 인구쟁탈을 위해 소모전을 벌이느니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게 낫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주민들이 많은 이유다. 나카츠에마을만들기사무소를 조직해 장례식장을 마을 가까이 유치하고 사망수속 교육,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나카츠에무라 읍사무소 공무원 출신인 나가세 에이지 사무국장은 "체념이나 절망이 아니라 어차피 인구를 늘리는게 안된다면 품위있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구감소는 사회문제로 취급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와 직결되는 경제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구는 장기 디플레이션의 유일한 탈출구인 소비를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10여년에 걸친 무제한 재정확장·금융완화 정책이 먹히지 않는 것도 "인구 감소가 정책의 허리를 잘랐기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역대 정부도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2017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인구 감소를 "북한 문제와 함께 일본의 2대 국난"으로 지정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내각에서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성장전략회의 멤버였던 데이비드 앳킨슨 전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도 "일본이 직면한 최대 과제는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라고 말했다.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4%를 넘었던 1980년대 인구 증가의 플러스 효과가 0.6%포인트에 달했다. 2000년대들어 상황이 반전됐다. 인구 감소가 잠재성장률을 -0.3%포인트 끌어내리면서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0%대에 머물러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인구감소로 인해 2040년께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5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나라
2025년이면 800만명에 달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단카이세대) 전원이 75세 이상의 고령자가 된다. 이 해 일본의 인구구조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30.3%)이 14세 이하 청소년 비율(11%)을 크게 웃도는 항아리 형태가 된다.후생노동성은 작년 7월 "2025년까지 간병인력을 32만명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2040년이면 부족한 간병인력은 69만명으로 늘어난다.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일본에선 노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 이직’이 경제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간 10만명이 간병을 위해 사표를 던지고 있어 기업의 인재 유출이 심각해지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간병 이직으로 인한 일본 경제의 손실을 연간 6500억엔(약 6조2923억원)으로 추산했다. 2020년 10조7000억엔이었던 간병비용은 2040년 25조8000억엔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일본의 정보기술(IT) 인재가 최대 79만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구 감소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이 IT 인재를 제때 공급하느냐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과제로 평가된다.
가뜩이나 부족한 노동력이 고부가가치 업종 대신 대표적인 저임금 업종인 간병인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일본 정부의 고민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속도는 일본 정부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 2040년 일본은 고령자 1명을 생산연령 인구 1.4명이 부양하는 사회가 된다. 1970년 처음 1억명을 돌파한 일본 인구는 80년 만인 2050년이면 9000만명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인구 1억명 사수는 일본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평가된다. 일본의 모든 사회·경제적 구조가 인구 1억명 이상의 시장을 전제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인구가 1억명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빨리 출생률을 2.07명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일본 정부는 분석했다. 2020년 일본의 출생률은 1.34명으로 5년 연속 하락했다. 1975년 2명선이 무너진 후 45년째 1명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이타=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