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생산 라인 헛돌린다…현대차에도 닥친 중국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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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까지 번진 봉쇄 공포
더 커진 부품대란 우려
K제조업 '올스톱 위기'
더 커진 부품대란 우려
K제조업 '올스톱 위기'
“공장은 폐쇄됐고 생산 제품을 실을 배는 항구에 발이 꽁꽁 묶였습니다. 비용이 30배 넘게 들어도 컨테이너에 하루에 10t씩 꽉꽉 채워 비행기로 한국에 제품을 보내고 있지만 이마저도 역부족입니다.”(권순길 유라코퍼레이션 와이어링하네스 총괄임원)
부품 대란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세계의 창고’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까지 봉쇄 공포가 번지면서 중국에서 핵심 부품·소재를 조달하던 기존의 공급망 사슬이 크게 훼손된 탓이다.
특히 배터리와 반도체 부품, 희토류, 원료의약품 등의 대중(對中) 수입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 화장품 등 주력 제조업종이 부품·원료를 구하지 못해 생산라인이 ‘올 스톱’할 위기마저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봉쇄 한 달을 맞은 상하이는 일부 지역에서 생산설비 재가동에 나섰지만 여전히 정상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다. 재가동 허가를 받은 공장도 가동률이 50%를 밑돌고 있다. 트럭 운임은 평소의 5배 이상으로 뛰었고, 상하이항도 ‘정상가동 중’이라는 중국 정부 설명과 달리 여전히 개점 휴업상태다.
자동차 업계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자동차의 ‘신경망’으로 불리는 핵심 부품 와이어링하네스 조달에 ‘빨간불’이 들어와서다. 현대차와 기아에 와이어링하네스를 공급하는 유라코퍼레이션(전체 물량의 50%)과 경신(40%), THN(10%)의 중국 현지 공장 42개 중 18개가 길게는 한 달 넘게 문을 닫았다. 그 결과,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달부터 감산에 들어갔다.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도 공급이 막히면서 18일부터 현대차는 제네시스 생산 라인을 공피치(빈 컨베이어벨트)로 헛돌리고 있다.
반도체에도 부품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평균 4주가량 걸렸던 반도체용 PCB(인쇄회로기판) 수입 기간이 최근엔 12주까지 늘었다. 상하이 인근 우시에 반도체공장을 둔 SK하이닉스는 사태가 더 장기화하면 원부자재를 우회해 입고할 방안을 살피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도미노식으로 피해가 커질 수 있어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에 통관 절차 간소화를 요구하는 한편 중국을 대체할 동남아·오세아니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때마침 중국 수도 베이징까지 봉쇄가 확대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현장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유라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컨테이너가 공장에 도착하더라도 별도 창고에서 10일간 추가로 격리돼 있어야 해 당장 쓸 수가 없다”며 발을 굴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밀어붙이는 중국 정부의 완강한 태도 탓에 봉쇄 지역이 상하이 등 연안 지역에서 베이징까지 확대되면서 한국 제조업 전반으로 부품 수급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부품·소재 수입의 29.3%, 중간재 수입의 27.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전 공정 단계까지 중국 업체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아 대중(對中) 수입액이 179억3000만달러(약 22조4017억원)에 이르는 반도체 분야(대중 수입의존도 39.5%)를 비롯해 배터리(수입의존도 93.3%), 의약품·의약원료품(수입의존도 52.7%), 희토류(수입의존도 52.4%) 등 국내 주력 산업이 중국산 소재·부품에 기대는 비중이 높아 우려가 크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완제품의 경우, 부품 하나만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전체 생산라인이 멈춰설 수밖에 없어 부품 수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동차 산업부터 중국발(發) ‘부품대란 쓰나미’가 먼저 덮쳤다. 그간 중국에서 공급하던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캐스퍼 생산라인이 멈춰선데 이어 현대차와 기아에는 자동차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 와이어링 하네스 조달난으로 연쇄 감산이 현실화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K8, 모하비, 쏘렌토, 레이, 스포티지는 물론 팰리세이드, 아반떼, 포터 등이 줄줄이 감산됐다.
가전업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수 백개 또는 수 천개의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는 가전은 단 한 개의 부품만 없어도 제품을 만들 수 없다. 가전용 부품 재고 수급이 난항을 겪으면서 재고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한국 중견기업의 중국 법인장은 “분기, 월 단위는커녕 2~3일 단위로 경영계획을 쪼개서 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며 “봉쇄 강도가 전보단 약해지는 느낌이지만 내일 다시 고삐를 조여 당장 공장을 멈춰 세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단계별로 부품 생태계가 촘촘하게 구성된 디스플레이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부품 수급이 원활치 않아지면서 완성 제품의 불량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디퓨저(특수 용액을 균일하게 뿌리는 부품)의 경우, 6개월 단위로 떼어내 한국으로 보낸 뒤 세정 작업을 해야 하는데 상하이항 물류가 막히면서 디퓨저 세정 작업이 미뤄진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업체의 경우, 디퓨저의 사용 기간이 1년에 육박하면서 과거에 없던 불량품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본사와 중국법인이 중국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 현지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황 변화를 주시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큰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와 상하이시는 지난 18일 당국이 요구하는 방역 기준을 맞추면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기업 666개를 담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발표했다. 자동차와 의약, 반도체 기업들이 주로 포함됐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실제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직원 수가 워낙 적은데다 물류가 마비돼 원재료와 부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실제로 조업을 재개한 화이트 리스트 기업은 대상의 70%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조업 재개 기업의 가동률은 50%를 크게 밑돌고 있다.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도 공장 내 직원들을 외부와 차단하는 ‘폐쇄루프’ 시스템을 구비하면 조업을 할 수 있지만 하루 2회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다른 까다로운 방역 조건이 부과된 탓에 한국 기업들이 주로 거래하는 대다수 현지 중소기업에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언제 주요 도시의 봉쇄가 풀릴지 불확실한 점도 기업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봉쇄된 도시는 원칙적으로 14일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다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면 다시 봉쇄된다. 상하이 봉쇄 해제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내 생산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상하이항의 기능 마비로 제품을 옮길 발이 여전히 꽁꽁 묶인 점도 ‘부품 공급’에 관한 공포를 키우고 있다.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19일 기준 중국 상하이항을 비롯한 중국 내 항만 부두에 접안을 기다리는 선박은 506척에 달한다. 봉쇄 전인 2월(260척)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상하이항에 하역된 수입품 컨테이너가 트럭에 실려 중국 내 목적지로 수송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지난 18일 기준 평균 12.1일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봉쇄가 시작된 지난달 28일 평균 4.6일에 비해 거의 3배로 늘었다.
항구까지 제품을 나를 운송 수단도 턱없이 부족하다. 19일 현재 상하이를 통과하는 일일 트럭 물동량은 봉쇄가 시작된 전달 28일보다 79.5%나 급감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국내 환경·노동 규제를 피해 진출한 부분이 있는 만큼 이들을 다시 한국으로 불러오기 위한 획기적인 규제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입 품목 1만2586개 중 중국 의존도가 80% 이상인 품목은 1850개로 미국(503개)과 일본(438개)보다 많았다.
수도권의 한 대형 문구제조업체는 최근 문구용 풀 등 접착제의 핵심 원료로 쓰이는 폴리바이닐피롤리돈(PVP) 공급이 끊겨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PVP 가격은 이미 40% 이상 올랐지만, PVP를 합성하는 데 쓰이는 원료 공장이 상하이 주변에 대거 몰린 탓에 이제는 수급 자체가 막혔다는 하소연이다.
또 다른 문구제조업체 역시 확보된 PVP 물량이 3개월 치에 그쳐 고심하고 있다. 이 업체 사장은 “당장 신규 물량을 구하려면 반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전했다. 접착제는 또 다른 주요 원료인 옥수수 가격이 폭등한 점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유아용품, 화장품, 치과용 인상재, 건자재, 전자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는 실리콘도 공급이 부족해지는 형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실리콘 제조업체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수입업체들이 국내 제조사에 구매 문의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물량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리콘 고무를 생산하는 수도권의 한 업체 사장은 “중국 현지 업체들은 5월만 지나면 봉쇄가 풀릴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봉쇄 이후 주문한 실리콘 원료 선적은 한없이 지연될 전망”이라고 귀띔했다.
자전거 회사인 삼천리자전거와 알톤스포츠도 중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자전거 부품 및 완제품의 90% 이상을 중국 생산기지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공급받고 있다.
삼천리자전거 관계자는 “판매량이 집중된 상반기 물량은 작년 말 이미 확보했으나 봉쇄령이 길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알톤스포츠는 “봉쇄령이 지속 유지될 경우 물류 등에 있어 일부 수급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현지 시장에 진출한 소비재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장품 전문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상하이 공장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달 초부터 가동을 멈춘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 협력 업체 및 현지 소비자의 안전을 보장하며 조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가동을 멈춘 코스맥스의 상하이 공장은 지난 13일부터 재가동됐다. 하지만 지역·건물별로 소규모 봉쇄가 이뤄지는 탓에 가동률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김진원/김병근/정지은/안대규/민경진 기자/베이징=강현우 특파원
부품 대란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세계의 창고’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까지 봉쇄 공포가 번지면서 중국에서 핵심 부품·소재를 조달하던 기존의 공급망 사슬이 크게 훼손된 탓이다.
특히 배터리와 반도체 부품, 희토류, 원료의약품 등의 대중(對中) 수입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 화장품 등 주력 제조업종이 부품·원료를 구하지 못해 생산라인이 ‘올 스톱’할 위기마저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봉쇄 한 달을 맞은 상하이는 일부 지역에서 생산설비 재가동에 나섰지만 여전히 정상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다. 재가동 허가를 받은 공장도 가동률이 50%를 밑돌고 있다. 트럭 운임은 평소의 5배 이상으로 뛰었고, 상하이항도 ‘정상가동 중’이라는 중국 정부 설명과 달리 여전히 개점 휴업상태다.
자동차 업계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자동차의 ‘신경망’으로 불리는 핵심 부품 와이어링하네스 조달에 ‘빨간불’이 들어와서다. 현대차와 기아에 와이어링하네스를 공급하는 유라코퍼레이션(전체 물량의 50%)과 경신(40%), THN(10%)의 중국 현지 공장 42개 중 18개가 길게는 한 달 넘게 문을 닫았다. 그 결과,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달부터 감산에 들어갔다.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도 공급이 막히면서 18일부터 현대차는 제네시스 생산 라인을 공피치(빈 컨베이어벨트)로 헛돌리고 있다.
반도체에도 부품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평균 4주가량 걸렸던 반도체용 PCB(인쇄회로기판) 수입 기간이 최근엔 12주까지 늘었다. 상하이 인근 우시에 반도체공장을 둔 SK하이닉스는 사태가 더 장기화하면 원부자재를 우회해 입고할 방안을 살피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도미노식으로 피해가 커질 수 있어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에 통관 절차 간소화를 요구하는 한편 중국을 대체할 동남아·오세아니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부품 하나만 없어도 컨베이어 벨트는 멈춰선다” 중국발 부품대란 쓰나미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자동차 부품업체 유라코퍼레이션 중국 내 공장 7개 중 2개가 있는 이곳은 한 달 넘게 봉쇄가 지속됐다. 최근 들어 이동 제한이 다소 풀렸다지만 정상 조업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와이어링 하네스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웨이하이항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선박에 5일째 발이 묶인 탓이다. 선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게 빌미를 잡혔다.때마침 중국 수도 베이징까지 봉쇄가 확대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현장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유라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컨테이너가 공장에 도착하더라도 별도 창고에서 10일간 추가로 격리돼 있어야 해 당장 쓸 수가 없다”며 발을 굴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밀어붙이는 중국 정부의 완강한 태도 탓에 봉쇄 지역이 상하이 등 연안 지역에서 베이징까지 확대되면서 한국 제조업 전반으로 부품 수급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부품·소재 수입의 29.3%, 중간재 수입의 27.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전 공정 단계까지 중국 업체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아 대중(對中) 수입액이 179억3000만달러(약 22조4017억원)에 이르는 반도체 분야(대중 수입의존도 39.5%)를 비롯해 배터리(수입의존도 93.3%), 의약품·의약원료품(수입의존도 52.7%), 희토류(수입의존도 52.4%) 등 국내 주력 산업이 중국산 소재·부품에 기대는 비중이 높아 우려가 크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완제품의 경우, 부품 하나만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전체 생산라인이 멈춰설 수밖에 없어 부품 수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동차 산업부터 중국발(發) ‘부품대란 쓰나미’가 먼저 덮쳤다. 그간 중국에서 공급하던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캐스퍼 생산라인이 멈춰선데 이어 현대차와 기아에는 자동차의 ‘신경망’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 와이어링 하네스 조달난으로 연쇄 감산이 현실화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K8, 모하비, 쏘렌토, 레이, 스포티지는 물론 팰리세이드, 아반떼, 포터 등이 줄줄이 감산됐다.
가전업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수 백개 또는 수 천개의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는 가전은 단 한 개의 부품만 없어도 제품을 만들 수 없다. 가전용 부품 재고 수급이 난항을 겪으면서 재고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한국 중견기업의 중국 법인장은 “분기, 월 단위는커녕 2~3일 단위로 경영계획을 쪼개서 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며 “봉쇄 강도가 전보단 약해지는 느낌이지만 내일 다시 고삐를 조여 당장 공장을 멈춰 세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단계별로 부품 생태계가 촘촘하게 구성된 디스플레이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부품 수급이 원활치 않아지면서 완성 제품의 불량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디퓨저(특수 용액을 균일하게 뿌리는 부품)의 경우, 6개월 단위로 떼어내 한국으로 보낸 뒤 세정 작업을 해야 하는데 상하이항 물류가 막히면서 디퓨저 세정 작업이 미뤄진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업체의 경우, 디퓨저의 사용 기간이 1년에 육박하면서 과거에 없던 불량품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본사와 중국법인이 중국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 현지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황 변화를 주시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큰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와 상하이시는 지난 18일 당국이 요구하는 방역 기준을 맞추면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기업 666개를 담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발표했다. 자동차와 의약, 반도체 기업들이 주로 포함됐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실제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직원 수가 워낙 적은데다 물류가 마비돼 원재료와 부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실제로 조업을 재개한 화이트 리스트 기업은 대상의 70%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조업 재개 기업의 가동률은 50%를 크게 밑돌고 있다.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도 공장 내 직원들을 외부와 차단하는 ‘폐쇄루프’ 시스템을 구비하면 조업을 할 수 있지만 하루 2회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하는 등 다른 까다로운 방역 조건이 부과된 탓에 한국 기업들이 주로 거래하는 대다수 현지 중소기업에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언제 주요 도시의 봉쇄가 풀릴지 불확실한 점도 기업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봉쇄된 도시는 원칙적으로 14일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 다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면 다시 봉쇄된다. 상하이 봉쇄 해제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내 생산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상하이항의 기능 마비로 제품을 옮길 발이 여전히 꽁꽁 묶인 점도 ‘부품 공급’에 관한 공포를 키우고 있다.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19일 기준 중국 상하이항을 비롯한 중국 내 항만 부두에 접안을 기다리는 선박은 506척에 달한다. 봉쇄 전인 2월(260척)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상하이항에 하역된 수입품 컨테이너가 트럭에 실려 중국 내 목적지로 수송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지난 18일 기준 평균 12.1일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봉쇄가 시작된 지난달 28일 평균 4.6일에 비해 거의 3배로 늘었다.
항구까지 제품을 나를 운송 수단도 턱없이 부족하다. 19일 현재 상하이를 통과하는 일일 트럭 물동량은 봉쇄가 시작된 전달 28일보다 79.5%나 급감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국내 환경·노동 규제를 피해 진출한 부분이 있는 만큼 이들을 다시 한국으로 불러오기 위한 획기적인 규제개혁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제품 공급에 차질
중국발(發) 부품·소재 대란이 생활용품 전반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소비재 대부분이 중국산 원부자재를 사용하거나, 중국 수입 비중이 높은 영향이다.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수입 품목 1만2586개 중 중국 의존도가 80% 이상인 품목은 1850개로 미국(503개)과 일본(438개)보다 많았다.
수도권의 한 대형 문구제조업체는 최근 문구용 풀 등 접착제의 핵심 원료로 쓰이는 폴리바이닐피롤리돈(PVP) 공급이 끊겨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PVP 가격은 이미 40% 이상 올랐지만, PVP를 합성하는 데 쓰이는 원료 공장이 상하이 주변에 대거 몰린 탓에 이제는 수급 자체가 막혔다는 하소연이다.
또 다른 문구제조업체 역시 확보된 PVP 물량이 3개월 치에 그쳐 고심하고 있다. 이 업체 사장은 “당장 신규 물량을 구하려면 반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전했다. 접착제는 또 다른 주요 원료인 옥수수 가격이 폭등한 점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유아용품, 화장품, 치과용 인상재, 건자재, 전자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는 실리콘도 공급이 부족해지는 형편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실리콘 제조업체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수입업체들이 국내 제조사에 구매 문의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물량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리콘 고무를 생산하는 수도권의 한 업체 사장은 “중국 현지 업체들은 5월만 지나면 봉쇄가 풀릴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봉쇄 이후 주문한 실리콘 원료 선적은 한없이 지연될 전망”이라고 귀띔했다.
자전거 회사인 삼천리자전거와 알톤스포츠도 중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자전거 부품 및 완제품의 90% 이상을 중국 생산기지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공급받고 있다.
삼천리자전거 관계자는 “판매량이 집중된 상반기 물량은 작년 말 이미 확보했으나 봉쇄령이 길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알톤스포츠는 “봉쇄령이 지속 유지될 경우 물류 등에 있어 일부 수급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현지 시장에 진출한 소비재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장품 전문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상하이 공장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달 초부터 가동을 멈춘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 협력 업체 및 현지 소비자의 안전을 보장하며 조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함께 가동을 멈춘 코스맥스의 상하이 공장은 지난 13일부터 재가동됐다. 하지만 지역·건물별로 소규모 봉쇄가 이뤄지는 탓에 가동률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김진원/김병근/정지은/안대규/민경진 기자/베이징=강현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