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대한민국 ESG 클럽 월례포럼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임부회장.사진=김기남 기자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임부회장.사진=김기남 기자
중소기업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당장 직면한 과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ESG 정보 의무 공시, 공급망 실사 모두 대기업부터 차례대로 요구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이 ESG를 왜 ‘지금’해야 하는가.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지난 4월 27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ESG 클럽’ 월례포럼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생산성본부와 지난해 12월 실시한 ‘ESG 확산 및 정착을 위한 기업 설문조사’에 따르면 ESG가 중요하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71.6%에 달했지만, 준비 수준이 미흡하다고 답한 중소기업이 48.1%로 절반에 가까웠다.

우 부회장은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중소기업이 ESG를 해야 하는 이유로 4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소비자의 변화다. MZ세대 10명 중 6명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ESG 실천 기업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평균적으로는 2.5~5% 가격을 추가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는 국내외 거래처의 요구다. 글로벌 공급망 실사 대응을 비롯해 ESG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거래 배제 같은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글로벌 공급망 내에 있다면 중소기업 역시 규제 대응의 의무 여부와 무관하게 ESG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ESG가 금융권의 요구사항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투자, 대출 등 금융거래 시 대상 기업에 ESG 사항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SG 활동과 성과를 투자 및 대출 기준에 포함해 금리를 조정하는 지속가능성연계대출(SLL), 금융기업의 투자 결정 시 그린워싱 등 지속 가능성 저해 요소를 방지하는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SFDR) 등이 그 연장선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공시 및 환경규제의 강화다. 국내에서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작성 및 공시 의무화 등 다양한 논의와 규제가 시작됐다. 우 부회장은 “21대 국회 출범 이후 ESG 관련 법안은 총 115건 통과됐다. 그중에서도 환경 법안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납품업체 ESG 요구사항 파악해야

그러면 ESG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 부회장이 소개한 사례는 스타벅스에 납품하던 한 국내 중소기업이다. 스타벅스 본사에 플라스틱 빨대를 납품하던 국내 기업이 ESG 경영에 발 맞춰 종이 빨대를 납품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높은 품질임에도 계속 납품을 거절당했다. 스타벅스 본사와 직접 소통한 결과, 거절 사유는 ‘안전 분야 평가 미흡’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재해 발생 시 안전과 구조 시 출입의 용이함을 위해 공장 출입문이 180도로 완전히 열리도록 소방법으로 정해놓았다. 하지만 국내 공장 출입문은 90도까지 열린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후 미흡한 부분을 개선해 3차수 만에 납품에 성공했다. 공급망의 상위에 있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행동 규범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정확히 대응하는 것이 포인트다.

애플, 디즈니 등 해외 기업 역시 협력사가 충족해야 할 내부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애플은 2030년까지 제품을 납품하는 모든 협력사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디즈니는 신규 및 재계약 시 ESG 진단 결과를 반영한다. 이때 노동, 인권 분야 점수를 높은 비율로 반영한다.

우 부회장은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관련 법규나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은 인원과 자금이 한정된 상태이기에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효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사례로는 SK에코플랜트가 소개됐다. SK에코플랜트는 2020년 4월 신용평가사와 함께 협력사 ESG 평가 모형을 개발, ESG 전 분야에서 전 산업 공통지표와 건설업 특화지표를 종합해 총 50가지 평가 항목을 마련했다. 이후 99개 협력사와 공정거래 협약을 맺고, 400억원 규모의 동반성장 대여금을 마련하는 등 여러가지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새 정부 정책 ‘중소기업 ESG 확산’

새 정부의 ESG 정책 방향도 중소·벤처 기업을 위한 지원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힘 대선공약에는 크게 ESG 관련 민관합동 컨트롤 타워 설치, 공시 표준화 추진, 중소·벤처기업 ESG 역량 확산 등 3가지가 포함된다. 일각에서는 공약집 내 ESG 분량이 적다는 점과 러·우 전쟁 같은 경제위기 등을 들어 ESG 정책 축소를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대한상의 대선후보 초청 특별 강연에서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ESG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는 곳은 몇 안 되는 대기업뿐”이라며 “중소기업의 ESG 경영이 더욱 어려운 만큼 세제 인센티브 등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 역시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책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새 정부 정책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큰 정책 방향은 환경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을 포함한 탄소중립이 가장 큰 변화다. 2030년까지 8년가량 남은 시점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727톤에서 2020년 649톤까지 줄었으나 2022년 기준 다시 685만 톤으로 증가했다. 현재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40%로 발표한 상태다. 이 중 산업계가 감축해야 할 양은 14.5%로 크게 늘어났다. 우 부회장은 “제조업,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은 나라는 산업계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일정 수준 이상 해내기 어렵다. NDC 목표는 유지하되, 기업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U 택소노미에 따르면, 원전을 녹색기술로 활용하려면 2050년까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할 수 있는 계획·자금·부지를 모두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영구 처분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기준연도에 부지 선정 절차를 끝내더라도 약 37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적극 활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 부회장은 “원전은 일부 기저전력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며,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원전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소 배터리 사업 역시 불안정한 상황이다. 리튬이온 전지 분야는 한국이 앞선 것이 사실이지만, 수소 배터리는 아직 기술 개발 단계에 머물러 상용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투자를 지원할 수 있는 공적·정책적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회 분야에서는 플랫폼 거래 규제가 관심사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급성장해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규제상 사각지대와 불공정행위 등을 규제하는 정부안, 의원안이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하지만 기업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플랫폼 업종 특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아 역동성과 혁신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으며, 과징금 수준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물적 분할 후 상장 등을 막는 소액주주 보호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우 부회장은 “새 정부가 중소기업의 ESG 확산을 위한 여러 가지 혁신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은 동반성장 관점에서 중소기업 ESG를 끌어주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협력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대한민국 ESG클럽 1기 마지막 포럼으로, 다음 포럼은 2기 모집 이후 6월에 진행할 예정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