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법⑨
김한영 국가철도공단 이사장(가운데)이 충북 청주 오송의 국가철도공단 시설장비사무소를 찾아 철도건설과 시설 개량사업에 사용되는 장비 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국가철도공단 제공
김한영 국가철도공단 이사장(가운데)이 충북 청주 오송의 국가철도공단 시설장비사무소를 찾아 철도건설과 시설 개량사업에 사용되는 장비 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국가철도공단 제공
공기업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고 있다. 공기업들이 ESG 경영을 선포하고 ESG 위원회 등 전담 조직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친환경·친사회적 사업 전환을 위해 녹색채권이나 사회적 채권 같은 ESG 채권을 발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공기업 성과 평가의 기준이 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은 개정을 통해 윤리경영 지표의 비중을 높이고, 중대 사고 발생 시 재난 및 안전관리 지표를 0점 처리하는 등 ESG 요소의 비중을 늘렸다. 지난 2월에는 공공기관의 에너지 사용량, 폐기물 발생량, 환경 법규 위반 현황 등 ESG 경영 관련 공시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공기관 통합공시에 관한 기준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ESG 논의가 지나친 주주우선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만큼, 기존의 ESG 논의를 공기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공기업은 사기업과 달리 애당초 일정한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근거 법령에 공기업이 추구해야 할 공익적 목적이 규정되어 있다. ESG 논의가 과도한 이익 추구에 경도된 사기업들이 환경·사회문제 같은 공익도 고려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보면, 이미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기업 입장에서 ESG에 따라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ESG 경영이 기존의 공기업 활동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된다.

공기업의 ESG 경영이 필요할까

그렇다고 공기업의 ESG 경영이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사기업의 ESG 경영만으로는 기후변화 등 환경·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이를 위한 공기업의 동참은 반드시 필요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각국의 연기금이나 국부펀드, 대형 자산운용사는 대부분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통한 기후변화 완화를 포트폴리오 운용에 고려하고 있다. 이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회사에 대한 지분을 매각(exit)하거나, 행동주의펀드인 엔진넘버원의 엑손모빌 이사 선임 사례처럼 의결권 행사(voice)를 통해 에너지나 자원 회사의 친환경적 운영을 유도한다.

그런데 석유업계에는 엑손모빌·로열더치셸·BP 같은 사기업도 있지만, 페트로차이나·가즈프롬·사우디 아람코·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처럼 정부가 주요 주주인 공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관투자자의 자본시장을 통한 영향력 행사는 사기업에 주로 미치고, 공기업에 대해서는 별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공기업을 제외한 사기업에 대한 ESG 경영 압박만으로는 기후변화라는 시스템 리스크에 대비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공기업은 사기업에 비해 실적 압박이 덜하다는 점에서도 공기업의 ESG 경영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주주들이 이익 극대화를 선호하고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사회문제 해결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 이사가 주주들의 의사에 반해 ESG 경영을 수행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공기업의 경우 정부가 지배주주로서 지배권을 보유하기에,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ESG 경영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 우리나라 공기업에 부는 ESG 열풍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공기업의 이중적 지위

그런데 공기업의 ESG 경영은 많은 법률적 문제를 안고 있다. 공기업은 일정한 공익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했지만, 영리성을 주된 성질로 하는 상법상 주식회사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공기업은 설립 근거 법령에서 요구하는 공익적 활동을 수행해야 하지만, 주식회사로서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공익과 영리를 함께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의 이러한 이중적 지위는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살피는 ESG 경영을 어느 범위에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공기업이 이처럼 이중적 지위를 갖다 보니, 공기업 이사들이 어떠한 기준에 따라 회사의 의사를 결정하고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지도 복잡해진다. 공공기관운영법은 공기업 이사에 대해 이사의 충실 의무,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같은 상법 규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결과 공기업 이사들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업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공기업의 공익적 활동에는 이익의 감소가 수반될 수 있는데, 이때 공기업 이사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면책되지 못하고, 공익적 활동이 회사 이미지 제고 등 간접적·장기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뒷받침해야 한다.

ESG 경영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또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발전사가 온실가스 배출 및 미세먼지 절감을 위해 석탄 화력발전소를 조기에 폐쇄하는 경우 이로 인한 발전사의 손실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지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주주가 손해를 입을 수도, 발전소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ESG 경영은 기업이 야기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감축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이를 내재화하게 하는 데 목표가 있지만, ESG 경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부정적 외부효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공기업들이 ESG 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도 숙제다.

공기업 ESG 경영의 방향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공기업 ESG 경영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기본으로 돌아가 공기업의 설립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금 검토하는 데 정답이 있다고 본다. ESG 논의에서는 회사의 목적(corporate purpose)이 무엇인지 정립하는 것을 중시한다. 회사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찾는 데 있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이익도 함께 따라온다는 주장도 있다.

공기업이야말로 각 설립 근거 법령에 따른 핵심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금 살피고, 이에 부합하는 ESG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평가 등 관련 법제도가 이를 중심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SG 열풍 속에서도 각 공기업이 목적에 맞는 ESG 경영 전략을 다시금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