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전자'로 본 한국 기업의 딜레마 [조일훈의 '6만전자' 탐색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 DEEP INSIGHT
현금만 움켜쥔 채 어쩔줄 몰라하는 한국 기업들,
미래 생존을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현금만 움켜쥔 채 어쩔줄 몰라하는 한국 기업들,
미래 생존을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6만전자’ 터널에 갇힌 삼성전자 주가가 좀처럼 오르지 못한다. 대장주가 힘을 못 쓰니 시장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새 500만 명으로 불어난 개인투자자의 원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대응은 회사 차원이 아닌, 임원들의 자발적 자사주 매입이다. 기간과 목표도 없이 각자 눈치껏 사는 매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0만전자’를 향한 담대한 스케줄 발표를 기대한 투자자 사이에선 “장난치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워낙 많은 개인이 주식시장에 진입한 터라 삼성전자 주가의 정체 원인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경영진이 왜 과거처럼 자사주 매입·소각과 같은 주가 부양 조치를 내놓지 못하는지도 궁금했다. 알고 보면 ‘6만전자’ 탈출은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풀이다. 고금리 고물가로 세계 경제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격돌이 냉전에서 열전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삼성전자의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 산업계가 당면한 내부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재와 기술이 아니라 설비 중심의 자산, 그 자산가치를 밑도는 주가, 연 1%짜리 예금에 묶여 있는 자기자본, 점증하는 경영권 방어 부담,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풍조 등이다. 현금만 잔뜩 움켜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미래 생존전략을 탐색해본다.
글로벌 시장을 뛰는 한국 대기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총자산과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은 낮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기자본과 ROE가 동시에 높으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론 두 가지 모두 충족하기가 어렵다.
한국 대기업들이 무역금융을 제외하고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언제든지 수십조원짜리 인수합병(M&A)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생산설비를 주축으로 한 자산 충실도는 한국을 따라올 기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가총액을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67조원(보통주 기준)이었다. 압도적 국내 1위지만 애플의 8분의 1, 마이크로소프트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만 TSMC는 자산과 자기자본이 삼성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시가총액은 1.6배에 달했다. 자기자본은 애플의 4배인데 시가총액은 13%에 불과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쪽 기업 다 정상은 아니다.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아무리 큰돈을 벌어도 ROE가 낮은 기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익금을 자신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그저 회사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무차입 경영에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경우든 자본운용의 효율성을 먼저 생각한다. 차입 이자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면 자기자본으로 배당을 주고 회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라고 요구한다. 삼성의 부채비율이 40% 아래인데 애플은 400%가 넘는 배경이다. 애플은 빚을 내서라도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
하지만 미래 투자를 위해 쌓아놓은 현금을 자사주 소각 방식으로 날려버리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너무 많은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투자를 촉구해야 할 것이고, 투자할 의지나 역량이 없다면 경영진을 문책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투자는 크든 작든,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원천기술은 대부분 미국에서 작동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자율주행 우주개발 블록체인 메타버스 바이오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좋은 사례다. 물론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전기차, 수소차를 넘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튼튼한 자기자본 없이는 어려운 과제다.
한국은 열강이 충돌하는 동북아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형에 있다. 그곳에 몸담은 기업들은 더 아슬아슬한 절벽에 서 있다. 기축통화국의 안전한 보호를 받으면서 온갖 종류의 원천기술로 무장한 기업들과 동일한 재무전략을 가동할 수는 없다. 그들이 자사주를 태우고 배당을 늘린다고 해서 무작정 따를 일이 아니다. 기업의 생존은 언제나 기술과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ROE를 끌어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조일훈 논설실장
코로나19 사태 이후 워낙 많은 개인이 주식시장에 진입한 터라 삼성전자 주가의 정체 원인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경영진이 왜 과거처럼 자사주 매입·소각과 같은 주가 부양 조치를 내놓지 못하는지도 궁금했다. 알고 보면 ‘6만전자’ 탈출은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풀이다. 고금리 고물가로 세계 경제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 격돌이 냉전에서 열전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삼성전자의 문제는 대한민국 전체 산업계가 당면한 내부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재와 기술이 아니라 설비 중심의 자산, 그 자산가치를 밑도는 주가, 연 1%짜리 예금에 묶여 있는 자기자본, 점증하는 경영권 방어 부담,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는 풍조 등이다. 현금만 잔뜩 움켜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미래 생존전략을 탐색해본다.
현금 움켜쥔 한국 기업들, 글로벌 인재·원천기술 투자에 올인해야
애플은 지난 10년간 총 640조원(이하 원·달러 환율 1200원 기준)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여기에서 배당(140조원)과 자사주 소각(560조원)을 통해 약 700조원을 주주에게 환원했다. 번 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주에게 돌려줬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누적 294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배당(68조원)과 자사주 소각(60조원)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에 투입한 금액은 128조원에 그쳤다. 애플이 극단적으로 주주환원율이 높은 기업이긴 하지만 삼성전자의 비율이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낮은 것 또한 사실이다.글로벌 시장을 뛰는 한국 대기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총자산과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은 낮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기자본과 ROE가 동시에 높으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론 두 가지 모두 충족하기가 어렵다.
엇갈린 자산·자본 vs 시가총액
다만 구조별 특성은 있다. 그것이 해당 기업의 강점 또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의 총자산은 427조원으로 애플(457조원), 구글(431조원), 마이크로소프트(408조원)와 비슷했다. 현대차·기아도 300조원에 달해 인텔(202조원)을 가볍게 넘어섰다. 자본총계(자기자본)는 우리 기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삼성전자는 304조원으로 어떤 글로벌 기업보다 많았다. 이익 창출과 주주 출자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인 애플의 자기자본은 719억달러(86조원)에 그쳤다. 구글(302조원)만 삼성전자에 필적할 뿐, 마이크로소프트(192조원) 아마존(166조원) 인텔(114조원) TSMC(93조원)는 100조~200조원 이상 낮았다. 현대차·기아의 자기자본도 117조원에 달했으며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텔 플래시사업부 인수대금으로 70억달러를 지출하고도 62조원의 자본을 남겨놨다.한국 대기업들이 무역금융을 제외하고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언제든지 수십조원짜리 인수합병(M&A)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생산설비를 주축으로 한 자산 충실도는 한국을 따라올 기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가총액을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67조원(보통주 기준)이었다. 압도적 국내 1위지만 애플의 8분의 1, 마이크로소프트의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만 TSMC는 자산과 자기자본이 삼성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시가총액은 1.6배에 달했다. 자기자본은 애플의 4배인데 시가총액은 13%에 불과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쪽 기업 다 정상은 아니다.
애플 부채비율이 400% 넘는 이유
이렇게 큰 격차가 난 요인은 한국 기업의 낮은 ROE 때문이다. ROE는 연간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로 자본운용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주주들은 이 수치를 통해 본인들의 투자가 옳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ROE는 15%였다. SK하이닉스는 17%, 기아도 15%에 그쳤다. 세계적 저금리, 무한경쟁 시대에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애플은 무려 150%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괴물 같은 기업은 순이익 전부를 자사주 소각과 배당에 쏟아부었다. 매년 그렇게 하더라도 새로운 수익을 내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에서다. 애플을 제쳐놓더라도 필자가 조사한 해외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보다 ROE가 낮은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49%, 구글 32%, TSMC 29%, 아마존 28%, 인텔 23% 등의 순이었다.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아무리 큰돈을 벌어도 ROE가 낮은 기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익금을 자신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그저 회사에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무차입 경영에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경우든 자본운용의 효율성을 먼저 생각한다. 차입 이자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면 자기자본으로 배당을 주고 회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라고 요구한다. 삼성의 부채비율이 40% 아래인데 애플은 400%가 넘는 배경이다. 애플은 빚을 내서라도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
현금이 필요한 여섯 가지 이유
한국 기업들이 자기자본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주력 제조업의 경기 부침이 심한 편이다. 반도체가 특히 그렇다. 중국의 도전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최근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고전은 부쩍 자라난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둘째, 지정학적 불안이다. 삼성전자, 현대차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지만 한국에 본사와 대부분의 핵심 사업장을 두고 있다. 한반도에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하면 국내외 자금줄이 당장 막힌다. 믿을 건 언제든 달러로 바꿀 수 있는 자기자본밖에 없다. 셋째, 낮은 내부 지분율과 상속 등의 변수로 경영권 방어 부담이 늘면서 공격적 사업 확장이 어려워졌다.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 추궁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넷째,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과정에서 대규모 장치산업에 안주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여의도 면적을 자랑하는 삼성전자 평택공장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자랑이지만, 한 발 삐끗하면 거대한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누가 경영을 해도 겁나는 구조다. 다섯째,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의 저임금을 활용해 가성비 좋은 제품들을 팔던 비즈니스 모델이 안 먹힌다는 얘기다. 20여 년 전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흥국으로 떠오르는 중국 시장 공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중국 농사’를 조금씩 접어야 할 상황이다. 인도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우리만 눈독을 들이는 곳이 아니다. 필시 레드오션으로 변해갈 것이다. 여섯째, 미·중 갈등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안보·경제 블록이 생겨나는 와중이다. 전 세계 시장을 상대하던 한국 기업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시장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기 시작한 기업들은 그 비용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주 정부의 인센티브가 파격적이라고는 하지만 원래 인센티브는 비용의 크기에 비례한다.원천기술 무엇으로 확보할 건가
다시 6만전자 얘기로 돌아간다. 당장 주가를 움직일 사업상 재료는 없다. 글로벌 시장 흐름도 좋지 않다. 유일한 해법은 ROE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분자인 순이익을 높이거나 분모가 되는 자기자본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단기간에 순이익을 높이는 방법은 없으므로 애플처럼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를 통해 자기자본을 감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배당을 늘리면 자기자본 항목 중에 이익잉여금을 줄이는 효과가 발생한다.하지만 미래 투자를 위해 쌓아놓은 현금을 자사주 소각 방식으로 날려버리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너무 많은 현금을 갖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투자를 촉구해야 할 것이고, 투자할 의지나 역량이 없다면 경영진을 문책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투자는 크든 작든,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원천기술은 대부분 미국에서 작동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자율주행 우주개발 블록체인 메타버스 바이오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좋은 사례다. 물론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전기차, 수소차를 넘어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튼튼한 자기자본 없이는 어려운 과제다.
생존을 위한 우선순위
기술력 못지않게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 경제와 산업이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에 성장했다는 것은 완전히 옛날얘기다. 앞서 언급했듯이 삼성전자 자산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비슷하지만 자산의 성격은 확연하게 다르다. 삼성 자산이 대부분 공장이나 설비 같은 유형자산 중심인 데 비해 애플 등은 연구개발(R&D) 소프트웨어 디자인 관련 무형 자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20여 년 전부터 강조한 소프트 경쟁력 확보는 여전히 미궁을 헤매고 있다. 이 문제는 두고두고 한국 기업들을 괴롭힐 것이다. 국내에선 글로벌 인재를 길러낼 제도적 기반과 인프라가 부족하고 해외 인재들은 성장성과 보상이 약한 한국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글로벌 인재를 키우고 영입하는 데 통 큰 투자를 해야 한다. 빅테크가 연봉 50만달러를 지불하면 우리 기업들은 100만달러, 200만달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한국은 열강이 충돌하는 동북아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형에 있다. 그곳에 몸담은 기업들은 더 아슬아슬한 절벽에 서 있다. 기축통화국의 안전한 보호를 받으면서 온갖 종류의 원천기술로 무장한 기업들과 동일한 재무전략을 가동할 수는 없다. 그들이 자사주를 태우고 배당을 늘린다고 해서 무작정 따를 일이 아니다. 기업의 생존은 언제나 기술과 인재 확보에 달려 있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ROE를 끌어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조일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