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80억 사장→일용직 전락…"대한민국에 사기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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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근로자로 전락한 유턴기업 사장들
8일 전북 군산시 A농기계업체 공장. 한때 매출 500억원의 중소기업 파워이앤지를 경영했던 장영문 전 사장이 1t급 오버헤드 크레인을 조작해 부품을 옮겼다. 그는 이 공장에서 191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최저임금이다.
파워이앤지는 해외 생산시설을 한국으로 옮긴 ‘유턴기업’ 1호 업체였다. 2002년부터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에서 굴착기에 들어가는 박판(얇은 철판)을 생산했다. 장 전 사장은 ‘유턴기업지원법(해외진출기업복귀법)’이 제정되는 등 국내 복귀 지원책이 늘 것이란 소식에 2012년 5월 한국행을 결정했다. 전북도와 ‘유턴기업 지원 양해각서(MOU)’를 맺고 전북 군산 임피농공단지에 65억원을 투자해 입주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정부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금 흐름이 꼬였다. 결국 장 전 사장은 개인 빚 40억원을 떠안았다. 회사는 2019년 5월 폐업했다. 2020년 6월부터 농기계업체 현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 전 사장은 “유턴기업 1호라고 홍보를 많이 하더니 그때뿐이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민덕현 전 거성콤프레샤 사장이 대표적이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통장을 만들지 못해 일당 12만~15만원을 받으며 건물 배관 공사를 하고 있다. 현재 전남 함평에서 공장 및 상가 건설을 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초에는 일거리를 찾아 경기 김포, 천안, 충북 청주의 공사 현장을 돌았다.
민 전 사장은 중국 칭다오에서 공기압축기(에어컴프레서) 제조 공장을 운영했다. 한때 직원 80명에 매출 80억원에 달했다. 2015년 6월 한국행을 결정해 세종시, 고용노동부 등과 유턴기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세종시 세종첨단산업단지에 총 70억원을 투자해 대지 6600㎡(2000평)에 건평 2966㎡(1200평) 공장 두 동을 세웠지만, 지원은 말뿐이었다. 자금난이 심해지며 공장은 작년 10월 41억원에 경매로 넘어갔다. 그는 “대한민국에 사기당했다. 몇 푼 지원해준다는 말에 속아 귀국한 내가 바보”라며 울먹였다.
매출 수백억원 대 중소기업을 이끌던 사장들을 최저임금을 받는 날품팔이로 전락시킨 ‘원흉’은 해외 진출기업의 유턴을 적극 추진했던 정부의 무대책이었다. 기업의 국내 복귀에 발맞춰 미리 준비했던 지원이 차곡차곡 집행됐어야 하지만 실상은 실무적인 지원책은 ‘백지상태’였다. 여전한 각종 기업규제에 행정기관의 늑장 대처,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이 큰마음을 먹고 고국에 돌아온 기업들의 숨통을 옥좼다.
2013년 ‘유턴기업지원법’ 제정 이후 지난 10년간 리쇼어링(국내 복귀)에 나선 기업은 올 5월 현재 총 113개에 불과하다. 복귀기업의 절대다수인 88개사가 중소기업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복귀 기업 규모만이 아니다. 어렵사리 복귀한 기업들에 준비 안 된 정부의 유턴 추진 정책이 ‘독’이 된 경우가 적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특히 각종 인허가 지연 등 고질적인 늑장 대처와 중복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국내로 뿌리내리려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 경우가 많았다.
최저임금 근로자로 연명하고 있는 장영문 전 파워이앤지 사장도 복귀 초기부터 정부의 부실·늑장 대처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2012년 12월 전북 군산에 공장을 완공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주문 물량을 생산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공장 부지 조성과 인허가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면서 2013년 9월에야 공장을 완공했다. 원청 업체의 주문 물량은 모두 경쟁사로 넘어간 뒤였다.
무의미한 서류작업은 기업인을 지치게 했다. KOTRA 사장 명의 고용추천서를 발급받은 중국인 전문인력을 데려오려고 하자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중국 외교부와 한국 영사관 서류 인증을 추가로 요구했다. 장 전 사장은 “인프라 하나 없는 땅에 산업시설을 조성할 시점에 중소기업진흥공단, 시중은행, 보증보험 기관에 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데 꼬박 6개월을 허비했다”고 털어놨다.
해외 사업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도 유턴 기업의 초기 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장 전 사장도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보증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중국 사업 내역을 인정받지 못해 거절당했다. 결국 공장 부지를 담보로 설정해 마련한 예치금 수억원을 납부한 뒤에야 보증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각종 규제로 인해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 점도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 복귀를 주저하는 이유다. 최근 5년 동안 41.6%나 오른 최저임금을 비롯해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유턴기업법 시행 후에도 해외로 나가는 중소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보다 훨씬 많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유턴기업 지원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민덕현 전 거성콤프레샤 사장도 서류상으로 제출한 투자 및 고용 규모를 맞추지 못한 탓에 약속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공장 두 동 중 한 동을 먼저 짓고 사업이 안정화되면 나머지를 지으려 했는데 지자체는 계획서상 공장 두 동을 모두 지어야 보조금을 줄 수 있다고 했다”며 “빈 공장을 한 동 더 짓고 임대라도 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금지됐다”고 돌아봤다.
민 전 사장은 약속한 고용보조금을 정부에 신청했으나 지급 신청 기한인 유턴기업 업무협약 이후 3개월을 넘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오히려 40명을 고용하기로 했지만, 기업 사정이 좋지 않아 직원을 23명으로 줄인 것을 빌미 삼아 정부와 지자체가 고용 규모를 유지 못했다며 보조금 15억6000만원을 반납하라는 압박까지 했다. 그는 “3개월이면 터파기 공사도 안됐을 땐데 무슨 수로 약속된 사람 40명을 고용하냐”며 혀를 찼다.
적잖은 유턴 기업인들이 리쇼어링 후 몇 년 안 돼 생때같은 기업을 포기했다. 대다수 복귀 기업은 정부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푸대접에 고전하고 있다. 이들에겐 고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에 불과한 모습이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제조기업이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 생기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분석한 결과다. 강원도 속초시 인구(8만2791명)보다 많은 8만6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재편 등으로 인해 해외에 마련한 생산설비를 국내로 돌리는 것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국내 환경·노동 규제 및 정부 지원 정책의 엇박자로 인해 한국으로의 ‘유턴’을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복귀기업(유턴기업)은 지난 5월 기준 113개사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이 90개사로 가장 많다. 업종별로는 전자 업종이 28개사로 가장 많고, 자동차 19개사, 금속 12개사 순이다.
기업인들은 중국 등 해외에서 경영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매출 1조2776억원을 기록한 황동봉제조기업 대창은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시 인근 카이핑에서 운영하던 4만9586㎡(1만5000평) 규모 공장을 매각했다. 황동괴(덩어리)와 황동봉을 월 1000t 이상 생산하던 곳이다. 대창 관계자는 “시장 자체가 비용을 증빙할 서류 없이 돌아가는데 공무원들은 툭하면 외국인 기업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창은 공장 매각 대금 9000만 위안(한화 170억원)을 한국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 사업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며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대창 관계자는 “중국에서 사업하기 갈수록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추가 투자를 늘리며 들어오기엔 환경·노동 규제가 너무 심하고 정책 지원면에서 부족해 망설여진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A사도 2010년 2월부터 운영하던 중국 생산 설비를 최근 매각했다. 중국 현지 매출이 전체 매출 대비 9.2%(2019년)에서 4.6%(2021년)으로 꾸준히 떨어지는 등 중국 상황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차량 구매 할부금 혜택을 자국 기업들에게만 주는 등 중국 시장은 이제 중국 회사들만 사업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A사 역시 한국에 생산설비를 늘리는 것보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나 미국 생산기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유턴기업 정책이 자리를 잡으려면 적극적인 규제 완화 및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필리핀 마닐라 인근 마리벨레스와 경기 김포에서 플라스틱 사출업체 및 가방봉제업체를 운영하는 B사 대표는 “최근 김포시청으로부터 배기가스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를 당한 뒤 2만6000㎡(8000평) 규모 국내 공장 부지를 매각하는 등 해외 설비 이전을 본격화 하고 있다”며 “획기적인 환경·노동규제 완화 정책 등이 없다면 국내로 유턴하려는 기업은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진원/민경진 기자
파워이앤지는 해외 생산시설을 한국으로 옮긴 ‘유턴기업’ 1호 업체였다. 2002년부터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에서 굴착기에 들어가는 박판(얇은 철판)을 생산했다. 장 전 사장은 ‘유턴기업지원법(해외진출기업복귀법)’이 제정되는 등 국내 복귀 지원책이 늘 것이란 소식에 2012년 5월 한국행을 결정했다. 전북도와 ‘유턴기업 지원 양해각서(MOU)’를 맺고 전북 군산 임피농공단지에 65억원을 투자해 입주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정부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금 흐름이 꼬였다. 결국 장 전 사장은 개인 빚 40억원을 떠안았다. 회사는 2019년 5월 폐업했다. 2020년 6월부터 농기계업체 현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장 전 사장은 “유턴기업 1호라고 홍보를 많이 하더니 그때뿐이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연매출 500억원 사장에서 월급 191만원 최저임금 받는 근로자로
2013년 ‘유턴기업지원법’ 제정 이후 10년간 추진된 정부의 해외 진출기업 유턴 정책이 ‘처참한’ 성적표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늑장 대처와 탁상행정 탓에 유턴 업체 상당수가 사업을 접었다. 장 전 사장처럼 최저임금 근로자나 날품팔이로 전락한 전직 대표도 적지 않다.민덕현 전 거성콤프레샤 사장이 대표적이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통장을 만들지 못해 일당 12만~15만원을 받으며 건물 배관 공사를 하고 있다. 현재 전남 함평에서 공장 및 상가 건설을 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초에는 일거리를 찾아 경기 김포, 천안, 충북 청주의 공사 현장을 돌았다.
민 전 사장은 중국 칭다오에서 공기압축기(에어컴프레서) 제조 공장을 운영했다. 한때 직원 80명에 매출 80억원에 달했다. 2015년 6월 한국행을 결정해 세종시, 고용노동부 등과 유턴기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세종시 세종첨단산업단지에 총 70억원을 투자해 대지 6600㎡(2000평)에 건평 2966㎡(1200평) 공장 두 동을 세웠지만, 지원은 말뿐이었다. 자금난이 심해지며 공장은 작년 10월 41억원에 경매로 넘어갔다. 그는 “대한민국에 사기당했다. 몇 푼 지원해준다는 말에 속아 귀국한 내가 바보”라며 울먹였다.
약속했던 자금지원 늦어지며 회사는 부도나고 공장은 경매로
“번지르르했던 국내 복귀 지원 약속 중 제때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자꾸 되뇌어 봅니다. 그때 돌아오지만 않았다면….”매출 수백억원 대 중소기업을 이끌던 사장들을 최저임금을 받는 날품팔이로 전락시킨 ‘원흉’은 해외 진출기업의 유턴을 적극 추진했던 정부의 무대책이었다. 기업의 국내 복귀에 발맞춰 미리 준비했던 지원이 차곡차곡 집행됐어야 하지만 실상은 실무적인 지원책은 ‘백지상태’였다. 여전한 각종 기업규제에 행정기관의 늑장 대처,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이 큰마음을 먹고 고국에 돌아온 기업들의 숨통을 옥좼다.
2013년 ‘유턴기업지원법’ 제정 이후 지난 10년간 리쇼어링(국내 복귀)에 나선 기업은 올 5월 현재 총 113개에 불과하다. 복귀기업의 절대다수인 88개사가 중소기업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복귀 기업 규모만이 아니다. 어렵사리 복귀한 기업들에 준비 안 된 정부의 유턴 추진 정책이 ‘독’이 된 경우가 적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특히 각종 인허가 지연 등 고질적인 늑장 대처와 중복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국내로 뿌리내리려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 경우가 많았다.
최저임금 근로자로 연명하고 있는 장영문 전 파워이앤지 사장도 복귀 초기부터 정부의 부실·늑장 대처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2012년 12월 전북 군산에 공장을 완공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주문 물량을 생산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공장 부지 조성과 인허가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면서 2013년 9월에야 공장을 완공했다. 원청 업체의 주문 물량은 모두 경쟁사로 넘어간 뒤였다.
무의미한 서류작업은 기업인을 지치게 했다. KOTRA 사장 명의 고용추천서를 발급받은 중국인 전문인력을 데려오려고 하자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중국 외교부와 한국 영사관 서류 인증을 추가로 요구했다. 장 전 사장은 “인프라 하나 없는 땅에 산업시설을 조성할 시점에 중소기업진흥공단, 시중은행, 보증보험 기관에 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데 꼬박 6개월을 허비했다”고 털어놨다.
해외 사업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도 유턴 기업의 초기 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장 전 사장도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보증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중국 사업 내역을 인정받지 못해 거절당했다. 결국 공장 부지를 담보로 설정해 마련한 예치금 수억원을 납부한 뒤에야 보증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각종 규제로 인해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 점도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 복귀를 주저하는 이유다. 최근 5년 동안 41.6%나 오른 최저임금을 비롯해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유턴기업법 시행 후에도 해외로 나가는 중소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보다 훨씬 많다”고 꼬집었다.
공장 부지 마련도 못했을때 “인력 채용 안 하면 지원금 없다” 탁상행정
유턴기업법이 시행된 직후인 2014년 20개였던 유턴기업 수는 이듬해부터 매년 10개 안팎으로 크게 줄었다. 정부는 2018년 11월 고용보조금 등 인센티브 강화를 핵심으로 한 유턴기업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2019년 12월 유턴법 개정과 2020년 2월 코로나 수출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제도를 보완했다. 같은 해 중순에는 해외사업장을 25% 이상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고 생산량 감축에 비례해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속해서 제도를 손질했다.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유턴기업 지원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민덕현 전 거성콤프레샤 사장도 서류상으로 제출한 투자 및 고용 규모를 맞추지 못한 탓에 약속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공장 두 동 중 한 동을 먼저 짓고 사업이 안정화되면 나머지를 지으려 했는데 지자체는 계획서상 공장 두 동을 모두 지어야 보조금을 줄 수 있다고 했다”며 “빈 공장을 한 동 더 짓고 임대라도 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금지됐다”고 돌아봤다.
민 전 사장은 약속한 고용보조금을 정부에 신청했으나 지급 신청 기한인 유턴기업 업무협약 이후 3개월을 넘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오히려 40명을 고용하기로 했지만, 기업 사정이 좋지 않아 직원을 23명으로 줄인 것을 빌미 삼아 정부와 지자체가 고용 규모를 유지 못했다며 보조금 15억6000만원을 반납하라는 압박까지 했다. 그는 “3개월이면 터파기 공사도 안됐을 땐데 무슨 수로 약속된 사람 40명을 고용하냐”며 혀를 찼다.
적잖은 유턴 기업인들이 리쇼어링 후 몇 년 안 돼 생때같은 기업을 포기했다. 대다수 복귀 기업은 정부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푸대접에 고전하고 있다. 이들에겐 고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에 불과한 모습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유턴 필요성 커지지만…
국내총생산(GDP) 11조4000억원 증가.해외에 진출한 국내 제조기업이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 생기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분석한 결과다. 강원도 속초시 인구(8만2791명)보다 많은 8만6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재편 등으로 인해 해외에 마련한 생산설비를 국내로 돌리는 것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국내 환경·노동 규제 및 정부 지원 정책의 엇박자로 인해 한국으로의 ‘유턴’을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복귀기업(유턴기업)은 지난 5월 기준 113개사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이 90개사로 가장 많다. 업종별로는 전자 업종이 28개사로 가장 많고, 자동차 19개사, 금속 12개사 순이다.
기업인들은 중국 등 해외에서 경영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 매출 1조2776억원을 기록한 황동봉제조기업 대창은 지난 4월 중국 광저우시 인근 카이핑에서 운영하던 4만9586㎡(1만5000평) 규모 공장을 매각했다. 황동괴(덩어리)와 황동봉을 월 1000t 이상 생산하던 곳이다. 대창 관계자는 “시장 자체가 비용을 증빙할 서류 없이 돌아가는데 공무원들은 툭하면 외국인 기업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창은 공장 매각 대금 9000만 위안(한화 170억원)을 한국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 사업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며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다. 대창 관계자는 “중국에서 사업하기 갈수록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추가 투자를 늘리며 들어오기엔 환경·노동 규제가 너무 심하고 정책 지원면에서 부족해 망설여진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A사도 2010년 2월부터 운영하던 중국 생산 설비를 최근 매각했다. 중국 현지 매출이 전체 매출 대비 9.2%(2019년)에서 4.6%(2021년)으로 꾸준히 떨어지는 등 중국 상황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차량 구매 할부금 혜택을 자국 기업들에게만 주는 등 중국 시장은 이제 중국 회사들만 사업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A사 역시 한국에 생산설비를 늘리는 것보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나 미국 생산기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에 유턴기업 정책이 자리를 잡으려면 적극적인 규제 완화 및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필리핀 마닐라 인근 마리벨레스와 경기 김포에서 플라스틱 사출업체 및 가방봉제업체를 운영하는 B사 대표는 “최근 김포시청으로부터 배기가스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소를 당한 뒤 2만6000㎡(8000평) 규모 국내 공장 부지를 매각하는 등 해외 설비 이전을 본격화 하고 있다”며 “획기적인 환경·노동규제 완화 정책 등이 없다면 국내로 유턴하려는 기업은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진원/민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