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유통 부문에 인수합병(M&A)보다 기초체력 강화에 주력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첫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은 영역 확장 대신에 유통사 자체 상품인 PL(프라이빗라벨, PB)을 강화하는 등 ‘유통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개점휴업’ 롯데쇼핑 사업전략부문

"롯데쇼핑, M&A보다 유통 본질에 집중하라"
16일 투자은행(IB)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최근 M&A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쇼핑의 M&A를 총괄하는 유통HQ사업전략부문이 사실상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며 “주요 유통계열사 간 업무 조정과 시너지 창출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 2월 취임 때 “당장 수익이 나지 않을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IB 및 유통업계에선 이베이코리아(현 G마켓글로벌)를 3조4404억원에 인수한 이마트처럼 e커머스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였다.

쿠팡 잡자고 가랑이 찢어질 투자는 하지 않되, 패션 등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버티컬 플랫폼 투자는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부회장의 최근 움직임은 당분간 버티컬 플랫폼 등에 대한 소규모 투자마저도 없을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롯데 관계자는 “P&G 등 해외 유수 소비재기업 대표를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유통업체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PL 경쟁력 갖춰야”

김 부회장은 ‘품질 좋은 물건을 가장 싸게’라는 유통업의 본질을 롯데쇼핑 임직원에게 불어넣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임직원에게 코스트코홀세일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PL인 커클랜드에서 전체 매출의 30%를 만들어낸다.

롯데마트는 경쟁사인 이마트에 비해 PL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마트는 지난해 노브랜드(약 1조1800억원) 피코크(약 4100억원) 등을 합쳐 PL로만 전체의 20% 수준인 약 2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롯데마트 PL의 매출 비중은 15%에 머물렀다.

김 부회장은 PL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제조사 다변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롯데푸드 등 계열사가 도맡던 방식에서 탈피해 외부에도 적극 문을 열겠다는 얘기다.

○‘거품’ 붕괴 이후 대비?

그룹 내 유통계열사 간 유기적 결합도 김 부회장이 방점을 찍고 있는 과제다. 그룹 차원에서 최근 투자한 한샘과 롯데하이마트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니스톱을 인수한 코리아세븐과 다른 유통계열사 간 협업도 강조하고 있다.

롯데의 이런 행보와 관련해 일각에선 ‘e커머스 거품 붕괴’ 이후를 내다 본 장기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M&A 시장에선 상장 유망주로 꼽히는 e커머스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자들이 구주를 매각하기 위해 시장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유통업계에서 유일하게 조 단위 투자를 할 수 있는 롯데가 M&A에 나서지 않는다면 e커머스 스타트업들로선 악재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