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엄마' 주식 투자 130배 대박…그 돈으로 뭐했나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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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람이 간다 > 혁신가의 어머니 (2)
아이들 교육 위해…안정된 삶 버리고 캐나다 이주
"벤처 창업 머스크 믿었다"…쌈짓돈 1만달러 내줘
"워킹맘 죄인 아니야…일하는 모습이 최고의 교육"
아이들 교육 위해…안정된 삶 버리고 캐나다 이주
"벤처 창업 머스크 믿었다"…쌈짓돈 1만달러 내줘
"워킹맘 죄인 아니야…일하는 모습이 최고의 교육"
대학 3학년 때 한 친구가 나를 미인대회에 추천했다.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덜컥 수락해 버렸다. 다른 참가자들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듯 매우 화려했다. 평소 입던 수영복에 머리와 화장도 직접 했다. 무대 뒤에 순서가 배정됐다. 첫 순서로 나가게 된 여자가 “첫 번째는 싫다”고 했다. “그럼 내가 할게요” 나는 두렵지 않았다.메이 머스크는 40대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에 정착합니다. 영양사 사업이 번창하면서 집도 구입했습니다. 서른한 살 이혼 후 불안했던 삶이 드디어 안정을 찾은 겁니다. 첫째 아들 일론은 프리토리아 남자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학교 학생은 영국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더 큰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 메이 머스크《여자는 계획을 세운다》중
아이들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떠나다
“일론은 캐나다로 이주하고 싶어 했어요. 컴퓨터 관련 일을 하려면 북미(北美)가 낫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나더러 시민권 복구 신청을 해달라고 조르더군요. 그러면 세 남매 모두 캐나다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면서요” 메이는 일론의 청을 이기지 못하고 시민권 복구 신청을 합니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인종차별 정책)로 인한 흑백 갈등이 유혈사태로 번지며 사회가 극도로 불안했습니다. 일론은 남아공 남자의 의무였던 입대가 마뜩잖았습니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흑인을 억압하는 정권의 군대에 들어가는 게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고 밝힙니다(찰스 모리스《테슬라 모터스》).17세 일론은 캐나다 여권을 손에 쥐자 지체 없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메이는 아들에게 여행자수표 2000달러를 들려 보냅니다. 이 돈의 출처가 드라마틱합니다. 20년 전 메이는 ‘발의 여왕’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상금 100랜드(당시 미화 150달러 가치)로 주식을 샀습니다. 친구의 권유였습니다. 초보 개미의 운명인가요. 증시가 폭락하면서 주식가격은 10분의 1로 쪼그라듭니다. 1971년 일론이 태어난 해, 메이는 아이 명의로 주식계좌를 엽니다. 그리고 18년 뒤, 15달러 투자금은 무려 130배 넘게 불어있었습니다. 첫째가 캐나다로 떠나자 둘째 킴벌과 셋째 토스카도 가고 싶다고 나섰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메이는 본인까지 남아공을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생활이 안정된 데다 케이프타운에 박사과정 입학 허가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들끼리만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일단 일론도 볼 겸 캐나다에 한 번 가보게 됩니다.
메이는 캐나다 최고 명문 토론토대학에서 영양사 연구원 제의를 받습니다. 교직원이 되면 아이들이 수업료를 면제받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토론토는 대도시답게 모델 일이 제법 많았습니다. 메이는 3주간 캐나다에 머물면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당장 이주 결심을 하진 못했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집으로 돌아오자 막내 토스카가 이미 사고를 쳤습니다. 15세 아이가 엄마의 집과 가구, 자동차까지 몽땅 팔아버린 것입니다.
메이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서류에 서명하는 일만 남았더군요. 그렇게 했습니다. 아이의 행동에 화를 내지 않았어요. 일리가 있었고, 계획을 앞당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미국에서 미래를 봤고 캐나다에서 시작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매서웠던 토론토의 겨울
캐나다의 새 삶은 예상대로 힘들었습니다. 12월의 토론토는 매우 추웠습니다. 평생을 따뜻한 남아공에서 살다 오니 옷차림부터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작은 아파트에 입주했습니다. 침실 침대는 메이와 토스카가 쓰고 일론은 거실 소파에서 잤습니다. 영양사 면허를 따기 위해 토론토대에서 5개 학부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마흔 넘어 다시 시작하는 공부가 만만치 않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야간에 어린이 영양 강의를 맡았고, 지역에서 조그마한 모델 일을 시작했습니다. 강연을 나가기 시작했고,《기분 최고》라는 영양학책을 썼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자 토론토에서의 사업도 궤도에 올랐습니다.아이들은 모두 토론토를 떠나 타지의 대학으로 갔습니다. 일론은 킹스턴의 퀸스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합니다. 토론토대에서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모두 자신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장학금, 학자금 대출도 아이들이 직접 챙겼습니다. 일론은 대학 졸업 후 캘리포니아 팰로 알토로 건너갑니다. 둘째 킴벌도 형을 따라 실리콘밸리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실리콘밸리는 인터넷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였습니다. 똑똑한 젊은이들은 대학 기숙사 방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짜내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머스크 형제는 1995년 ‘집2(Zip2)’라는 인터넷 회사를 창업합니다. 이 회사는 일종의 온라인 도시 안내 사이트였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사업체 목록을 만들고 여기에 지도를 결합했습니다. 집2는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등 언론사와 협력해 180개 이상의 도시 사이트를 운영합니다. 지금 보면 평범한 지도 서비스지만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쌈짓돈 꺼낸 ‘혁신가의 어머니’
벤처 창업가들이 그렇듯, 머스크 형제도 초창기엔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창업자금으로 지원해준 2만8000달러는 순식간에 말랐습니다. 아주 싼 사무실을 임대했고 거기서 숙식을 해결합니다. 샤워는 YMCA 시설을 이용했습니다. 일론은 밤새 코딩에 매달렸고 킴벌은 사업체를 방문하는 영업을 맡았습니다.아들들이 타지에서 고생하는데 엄마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메이는 6주에 한 번씩 팰로 알토를 찾았고, 식료품과 옷, 가구 등을 사줬습니다. 아들들이 사업 자금이 떨어졌고 급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자 주저하지 않고 쌈짓돈을 꺼냅니다. 토론토에 집을 사려고 또박또박 모아뒀던 1만달러였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일을 믿었어요. 힘닿는 한 돕고 싶었습니다” 메이는 결국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또 한 번 이주합니다. 창업 이듬해 벤처투자 회사 ‘무어 데이비도우 벤처스’에서 머스크 형제의 사업에 관심을 보입니다. 일론은 발표 기술은 미숙했지만, 회사를 잘 선전했고 투자가들은 그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집2에 300만달러(약 39억원)를 베팅하기로 결정합니다(애슐리 반스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기쁨에 들뜬 그날 저녁, 메이는 아들들을 데리고 근사한 식당에 갔습니다. 식비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내 신용카드 볼 일 없을 거야”
머지않아 메이의 말은 현실이 됐습니다. 1999년 컴퓨터 기업 컴팩이 집2를 3억700만달러(약 3990억원)에 사들입니다. 지분 7%를 보유한 스물여덟 살 머스크는 단숨에 2200만달러(약 286억원)를 거머쥐게 됩니다. ‘혁신가’ 머스크의 첫 성공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의 의미
메이는 칠십 평생을 영양사와 모델로 일했습니다. 서른한 살에 싱글맘이 된 후엔 홀로 돈을 벌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내 어머니 역시 일하는 여성이었고, 결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어요” 아이들 하교는 이웃 부모에게 부탁했습니다. 패션쇼에 나가면 무대 바로 앞줄에 아이들이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일론은 편지를 워드로 치는 등 엄마의 일을 도왔습니다. “자립적이고,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근면하게 기르고 싶었습니다. 보호해주려 들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덕을 봤습니다”(메이 머스크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메이의 교육관은 손주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뒤 일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곤 했습니다. 메이는 일론의 다섯 아들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게임을 하고, 예의 바른 식사법을 알려줬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너희들 식기는 물론이고, 네 아빠의 식기도 주방에 갖다 놓거라. 너희의 하루가 어땠는지 아빠에게 말하지만 말고, 아빠의 하루도 여쭤보고” 머스크 가(家)의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